자발적 주체로 산다는 것의 의미는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5.04.24 / 2015.04.24
- 2페이지 /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800원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1
2
추천 연관자료
- 본문내용
-
자발적 주체로 산다는 것의 의미
일단 자발적 주체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자기결정”과 연관 지어 생각해보았다. “자기결정”은 외적보상이나 억압보다도 개인이 행동을 결정하고자 하며 개인이 원하는 것을 갖고자 하는 바람이기 때문에 자발적 주체로 산다는 것은 결국 자기결정에 이른 상태로 보았다. 이에 자발적 주체로서의 삶에 대한 갈망이 자기 결정권의 행사로 표출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삶과 관련된 문제들에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권리를 갖는다. 물론 모든 자기 결정권이 존중받아 마땅하다고는 볼 수 없다. 인류 보편 가치를 포함한 사회적 판단 기준에 따라 자기 결정권에 대한 제한 범위가 상이할 것이다.
자발적 주체로 살기 위해선 혹은 자기결정에 이르기 위해선 “자아”와 “페르소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단 “자아”란 겉으로 드러난 의식의 영역을 통해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으면서 내면세계와 소통하는 주체를 뜻한다.
“페르소나”는 일종의 가면이다. 구스타프 융은 사람의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이루어지며 여기서 그림자와 같은 페르소나는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며 자아의 어두운 면이라고 말했다.
자아와 페르소나의 연관성을 통해 “자발적 주체로 산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고민하던 중 영화 “블랙스완”이 떠올랐다. 일단 영화의 줄거리를 간략히 설명하겠다.
주인공은 발레리나로 “백조의 호수” 주인공을 맡게 된다. 백조와 흑조를 동시에 연기해야하지만 섬뜩할 정도로 어둡고 위험해 보이는 흑조를 연기하기엔 너무도 여리고 순수한 백조 그 자체였다. 그녀는 어머니의 과잉보호로 인해 강박증으로 보일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며 자기결정권을 빼앗긴 듯한 삶을 살아왔다. 이런 그녀가 흑조를 완벽히 연기해낼 리가 만무했고 결국 그녀는 자질 논란과 더러운 루머에 휩싸이게 되고 설상가상 그녀의 자리를 위협하는 라이벌까지 등장한다. 그녀는 그 전과는 완전히 다른 페르소나를 받아들여 갔고 기괴한 망상과 계속적인 환각을 보는 등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며 심각한 자학을 멈추지 않는다. 결국 그녀는 완벽한 흑조를 연기해내었고 공연이 끝남과 동시에 죽는다.
무용수로서 최고의 자리에서 완벽히 역할을 해낸 그녀의 삶을 “자발적 주체로 산다는 것”과의 연관성을 통해 살펴보겠다. 백조와 흑조, 이 두 개의 페르소나는 그녀의 삶을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눌 만큼 중요한 기준이 된다. 백조의 호수에서 백조가 된 여자의 저주를 풀기 위해선 왕자의 사랑이 필요하다. 하지만 왕자가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지자 자살하고 만다. 그녀의 삶 전반기의 페르소나인 백조는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이 다른 이의 손에 놓인 것처럼 보일 만큼 어머니의 과잉보호 안에서 만들어진 인형과 같다. 반면 흑조는 왕자의 사랑을 백조에게서 빼앗을 정도로 치명적이고 위험한 매력을 지녔다. 그녀가 연기해내려던 흑조가 결국 그녀를 삼켜버릴 정도로 위험해졌다. 그녀의 삶 후반기의 흑조는 삶을 파괴 할 만큼 위험성이 다분한 페르소나이다. 하지만 적어도 흑조는 객체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나는 그녀의 죽음이 그녀의 파멸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통해 그녀는 페르소나로부터 자유를 얻은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페르소나에 사로잡힌다. 페르소나는 삶의 파멸을 야기할 만큼 극단적인 위험성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페르소나에 휘둘리는 삶을 경계해야 한다. 페르소나와 자아의 능동적인 소통을 통해 자기결정에 이른 자발적 주체로의 삶, 건강한 삶을 살기위해 노력해야 한다.
자료평가
-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