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문] 부산국제영화제 - 소녀, 반사되지 않는 거울, 파스카, 쿠치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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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4.24 / 2015.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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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문
1. <소녀> 감상문
* 줄거리 - 사소한 말실수에서 비롯된 소문 탓에 친구가 자살한 상처를 지닌 윤수. 시골 마을로 이사하던 날, 얼어붙은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소녀 해원에게 빠져든다. 머지않아 마을 사람 모두가 함부로 말하며 대하는 그녀에 대해 알게 되고… 소문 때문에 힘들었던 자신의 과거와 꼭 닮은 상처를 지닌 소녀를 그냥 두고만 볼 수가 없게 되는데…
* 여기 한명의 소녀가 있다. 긴 머리를 찰랑찰랑 휘날리며, 겨울바람에 나부끼듯 흔들리며 스케이트를 타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녀.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스케이트를 타는 소녀의 모습에선 어딘지 사연 많은 여자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리고 예상대로 소녀에게는 수많은 말들이 끈덕지게 따라붙는다. 혹자는 이 아이가 무당이라고 하기도 하고, 혹자는 이 아이가 그래서 불결하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소녀는 침묵한다. 그 어떤 말도 입에 올리지 않는다. 소녀는 그저 담아두는 존재일 뿐이다. 자신을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말들을, 자신 안에 담아 뚜껑을 덮어 막아놓는다. 그 어떤 말도 소녀에게서 빠져나가지 못한다.
여기 한명의 소년이 있다. 잘생긴 얼굴에 어딘지 모르게 신경질적인 성격. 주위에 대해 냉담한 시선은 물론, 가끔 버르장머리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무신경한 소년이다. 그리고 자꾸만 귀에 이상한 소리를 듣는 소년. 그런 소년은 지금 시골이 낯설기만 하다. 그런데 하필, 낯선 공간에서 가뜩이나 심란한 마음에 처음 본 것이 스케이트를 타는 소녀다. 자신의 또래 정도로 보이는, 교복을 입은 소녀. 빙판을 가르며 스케이트를 타는 소녀의 모습을 소년은 아주 오랫동안 바라본다.
그리고 시작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영화의 시작은 얼어붙은 빙상 위를 소녀가 스케이트 화를 신고 가로지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각사각, 얼음 갈리는 소리는 조도를 낮춘 화면과 더불어 조금은 섬뜩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소녀가 지나간 자리에 떠오르는 타이틀, <소녀>.
도입부에서 암시하듯 이 영화는 시종일관 날카로운 날로 빙판을 가로지르는 듯한, 일종의 서늘한 기분을 끝까지 간직한 영화다. 중간 중간 스릴러와 서스펜스, 멜로가 깃들어 있긴 하지만, 영화 전체를 가로지르는 음향들은 그러한 종류의 장르들을 계속 불안한 요소로 만들어놓는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들었던 생각은 영화가 생각보다 촘촘한 구성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데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때때로 화면 전체를 장악하는 그림(샷)이 될 때도 있고, 자꾸만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인물들일 때도 있고, 시종일관 불안하게 들려오는 사운드일 때도 있다. 기승전결을 매끄럽게 따르는 구조는 아니지만, 넋을 놓고 보게 되는 영화라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이 영화가 가진 나름대로의 매력이 아닐까, 싶었다. 무엇이라 콕 집어서 이거다, 라고 말할 순 없지만, 영화 전체를 이루는 무언가, <소녀>라는 영화가 가진 매력이 있다. 나는 한참 만에 그 매력이 무엇인지 정의내릴 수 있었다. 바로 비밀스러움이었다. <소녀>는 시종일관 관객들로 하여금 관음증 환자처럼 보이게 한다. 자꾸만 무언가를 감추려고 하고, 관객이 그것을 훔쳐보게 한다. 화면 배열, 연출, 그리고 영화 전체 스토리까지. 비밀스러움이 매력적인 것은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제일 마지막에 어찌되었든 비밀스러운 무언가가 베일을 벗긴 하지만, 그 전까지는 그것이 진실인지, 그것이 정답인지 알 수 없게 한다. <소녀>는 그런 비밀스러움을 한껏 발휘한 영화다.
<소녀>는 그 영화 자체가 가진 매력만큼이나 수많은 비밀스런 사건들을 다룬다. 구제역 사건, 친구의 죽음, 마을 사람들의 이상한 사고, 이장, 정신병자 아버지, 실종,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살인 등. 이것들은 아무리 봐도 비밀스럽지 않은 것들이 아니다. 철저히 비밀에 가려진, 그래서 꺼려지는 그런 종류의 것들이다. 하나만 해도 벅찬 이런 사건들이 <소녀>에서는 시종일관 터져 나오고, 또 어떨 때는 반복되어 등장한다. 처음과 끝이 이어지기도 하고, 중간이 사라진 채 결말만 나올 때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관객들은 영화가 진행되가는 순간, 그런 사건을 기다린다. 나는 안전하다, 라는 사고 때문일지, 아니면 그들의 비밀을 파헤쳐보고 싶단 생각에서일진, 잘 모르겠지만 그것은 자꾸만 이 영화의 결말을 보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GV를 통해 알았지만 내가 생각했던, 사람들의 넋을 뺏는 것들에는 나름대로의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한 마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비밀스런 사건들. 그것은 어른들의 세계로 소년과 소녀가 감당하기엔 조금은 벅찬 그 무엇이었다. 하지만 소녀는 이미 그 세계에 두 발을 담그고 있었고, 소년은 소녀로 하여금 그 세계에 한쪽 발을 담그려 하고 있다. 그러한 것들은 영화 전체를 두고 보았을 때 커다란 앙상블을 이룬다. 매끄럽게 잘 빠진 영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모든 장르를 혼합해 결국 한 소년과 소녀의 성장기를 이 정도로 만들어냈다는 것에 대해서는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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