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석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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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제이 와이다-<대리석의 사나이>
감독: 안제이 와이다
각본: 알렉산드르 시볼리스크
출연: 옐지 라지비로비츠, 크리스티나 얀다
영화내용에 대해서
영화 아카데미 소속의 한 젊은 여성 감독인 아네쉬카는 졸업 작품으로 마테우즈 빌쿠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고 한다. 마테우즈 빌쿠트는 평범한 벽돌공에 지나지 않았지만 한때 폴란드의 “노동 영웅”으로 뽑혀서 국가적으로 대대적인 선전의 대상이 되어 그의 공적이 영화로 만들어져 상영되기도 하고 폴란드 곳곳에 그의 대리석 조각이 세워지기도 한 인물이다.
빌쿠트는 벽돌 쌓기에서 5인 1조의 작업 방법으로 하루에 3만 장의 벽돌을 쌓는 “노동 영웅”이 되고, 이때부터 당국의 계획에 따라 여기저기 끌려다니며 벽돌 쌓기 시범을 보인다. 어느 날 벽돌 쌓기 시범 도중 누군가가 빌쿠트에게 불에 달군 뜨거운 벽돌을 건네준다. 손을 데어 그날 시범이 엉망이 되자 당국은 그 범인으로 그의 친구를 체포한다. 빌쿠트는 체포된 친구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믿고 그의 구명 운동을 벌인다. 그러나 누군가 희생양이 필요했던 당국은 그의 호소를 묵살해버린다. 이때부터 빌쿠트는 모략과 허위로 가득 찬 권력을 향해 분노하게 되고 항거하다가 마침내 자신도 체포된다. 형기를 마치고 나온 빌쿠트는 아내마저도 자신을 공개 비판하고 떠난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영화에서 원래 빌쿠트라는 인물은 1970년 그단스크 조선소의 반정부 반란 과정에서 죽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폴란드 검열 당국이 이를 삭제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그단스크 조선소의 노동자로 있는 그의 아들의 입을 통해 알게 되는 것으로 만들어졌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가를 밝히지는 않지만 정부에 의해 학살당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안제이 와이다
그를 가리켜 흔히들 폴란드 영화의 대부라고 부른다. 황무지와 같았던 폴란드 영화계를 제2차대전 이후에 세계적 수준으로 올려놓은 영화감독이 바로 안제이 와이다이기 때문이다. 1950년대에 <지하수도>, <재와 다이아먼드> 같은 영화로 국제적 각광을 받기 시작한 그는 <대리석 사나이>로 영화사상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안제이 와이다는 <대리석 사나이>를 만드는 데 무려 14년이 걸렸다고 한다. 처음 <대리석 사나이>의 시나리오를 입수한 후 이 시나리오에 매혹되어 14년간 꾸준히 영화 제작 허가를 얻어내려고 했지만 폴란드 당국은 번번이 이를 묵살했다. 영화 제작을 국가가 관장하고 있던 공산 폴란드 정부로서는 스탈린 치하의 그 암울했던 시대를 고발하는 <대리석 사나이> 같은 영화의 제작은 허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감독은 <대리석 사나이>의 속편으로 <철의 사나이>를 감독해 그의 역사 발굴 작업을 계속했다. 그단스크 조선소의 노조 운동을 배경으로 아네쉬카와 빌쿠트의 아들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역사의 소용돌이를 다시 영화로 증언한 것이다. 이 영화는 그해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1983년 프랑스에서 <당통>을 만들고 1989년 사회의 분위기가 바뀌자 폴란드로 돌아가서 바웬사와 함께 정치에 뛰어들기도 하였다.
영화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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