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낭만과 현실 그 미묘한 관계 춘향전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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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29 / 2015.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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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과 현실, 그 미묘한 관계
-춘향전을 읽고
1. 누구나 한번쯤 꿈꿔볼 낭만적 사랑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봤을 고전 춘향전, 어릴 때 이해하기 쉬운 만화의 형식을 빌린 춘향전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주인공인 성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이 너무나 아름답고 멋져보여서 나도 꼭 저런 사랑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좀 더 나이가 들어 다시 한 번 춘향전을 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흔하디흔한, 신데렐라 스토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 눈에 그 둘의 사랑은 특별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예쁘고 멋진 주인공, 그들이 겪는 고난, 그리고 그 장애를 극복하고 이루어낸 그들의 사랑까지, 춘향전은 항상 꿈꾸게 되는 이상적인 러브스토리였다.
2. 현실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낭만적 사랑
맨 처음 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사랑에 의심을 품게 된 계기는 KBS 드라마, ‘쾌걸 춘향’을 보면서부터였다. 그 때까지 내가 읽었던, 기억하던 춘향전속의 인물과는 많이 다른 등장인물들의 모습, 공부를 열심히 하기보다는 말썽쟁이에, 여주인공 성춘향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이몽룡, 예쁘고 똑똑하지만 돈에 매우 집착이 강하고 억척스러운 성춘향, 춘향전 속에서와는 다르게 탐관오리가 아닌, 능력 있고 여자를 위할 줄 아는 변학도..이런 식으로 인물들의 성격을 그동안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르게 설정한 것을 보고 처음에는 매우 당황스러운 느낌이었다. 더군다나 부패한 탐관오리가 아닌 변학도에 여주인공의 마음도 몰라주는 말썽꾸러기 이몽룡이라는 등장인물들은 기존의 춘향전과는 달리 오히려 변학도가 더 멋져보이게 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렇게 드라마를 보면서 재미에 빠지기도 했지만 이전과는 다른 생각을 조금씩 하게 됐다. 지금 내 관점에서 봐도 주인공인 이몽룡보다는 오히려 변학도가 멋져 보이는데, 만약 춘향전이 이 드라마 같은 설정이었다면 결말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보는 내내 자꾸 들었다. 물론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원작처럼 이몽룡과 성춘향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결말로 끝이 났지만 만약 내가 드라마에서 성춘향의 입장이었다면 현실적으로 이몽룡보다는 변학도를 선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라마가 모두 끝난 후에도 들었다.
이전과는 다르게 생각하게 된 것이 그것만은 아니었다. 원작 소설에서는 주인공 성춘향이 이몽룡이 한양으로 떠나버리고 변학도가 끊임없이 회유할 때도 흔들림 없이 꿋꿋이 이몽룡만을 기다렸는데 드라마에서는 변학도의 접근에 흔들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 보다 현실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어떤 여자가 자신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을 기다리며 곁에 있는 능력도 있고 멋진 남자의 접근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또한 지금 기다리고 있는 그 사람은 현재 오히려 더 능력이 없다면? 흔들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돈에 매우 집착이 강하고 억척스러웠던 드라마 속의 성춘향이란 캐릭터 역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사실 드라마에서의 성춘향은 생존을 위해 돈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고, 돈을 위해 이몽룡이나 변학도에게 접근한 것이 아니었지만 나에게 다른 관점으로 원작소설을 바라보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혹시 소설 속에서의 성춘향은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 모든 고난을 감수하고 기다린 것이 아니라 그 기다림 뒤에 따라올, 예를 들자면 열녀라는 명예나 신분의 상승 같은, 어떤 다른 것을 바라보고 그리 독하게 기다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애초에 춘향전이라는 소설의 결말은 춘향이 이몽룡의 정실부인이 되어 자식을 낳고 행복하게 산다는 것인데, 낭만적으로만 바라봤던 어린 시절과는 다른 관점에서 보니 그것은 결국 수절했다는 명예를 얻고 신분 상승이 되어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인 것이다. 만약 소설에서 춘향이 이몽룡을 끝까지 기다리지 않고 변학도의 접근에 넘어갔다면? 뭐 그런 결말이었더라도 나름 행복하게 살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 길은 명예도 얻을 수 없고, 신분 상승 또한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자 성춘향의 일편단심 사랑이라는 것에 조금씩 의심하는 마음이 생겼다.
또한 이몽룡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성춘향을 보고 한눈에 반해 그렇게 쉽게 사랑에 빠졌던 사람이, 성춘향을 혼자 두고 한양으로 떠나서 과연 여자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성춘향을 다시 만날 날만 기다리며 열심히 공부만 했을까? 아마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나 있지만 우유부단하고 철없는 성격의 이몽룡은 아마 한양에서도 다른 여자들에게 집적거리곤 했을 것이라는 조금은 비뚤어진 듯한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혹시 내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가 하는 의구심도 함께 들었다.
변학도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소설에서는 여자를 매우 밝히고 아랫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탐관오리로 묘사되었지만 그것이 성춘향과 이몽룡의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사랑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변학도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기생의 딸인, 다시 말해 천민인 성춘향에게 사또의 수청을 들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을 거라는 생각 또한 그때부터 들기 시작했다. 현대적인 관점이 아닌 그 시대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변학도가 못된 탐관오리라기보다는 오히려 성춘향이 건방진 천민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변학도가 성춘향을 못살게 괴롭히는 것도 이해가 가는 것이다.
자꾸 이런 예전과는 다른 관점으로 춘향전을 바라보다 보니 이런 종류의 일종의 신데렐라 스토리들이 죄다 비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그냥 재미로 봤던 드라마나 이야기들이 모두 이런 식으로 생각되면서 더 이상 그 모든 이야기들이 낭만적인 사랑으로 보이지 않고 현실적인 계산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야기로 느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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