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렉, 패러디로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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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렉, 패러디로 말하다
이 시대의 문화를 대표하는 몇 가지 키워드 가운데에는 단연 패러디도 당당히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본래 패러디라 함은 문학작품의 한 형식으로 기존의 유명한 작품을 모방·변형하여 작품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유명작품의 글귀나 장면을 변경하거나 과장하여 문학적 효과를 노리는 것을 말했었다. 그러나 이제 패러디는 문학작품은 물론이거니와 영화, CF, 음악, 시트콤, 미술에까지 그 영역을 확대시켜 나가고 있다. 부패한 정치계와 잘못된 세상사를 비판하기 위해 패러디를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하다못해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전단지나 인터넷 유머 게시판에서도 패러디가 만연하고 있다. 패러디 만화를 그리는 정식 만화가와 잘 패러디한 작품들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까지 생겨났으니, 이미 패러디가 우리의 생활 속에 제대로 자리 잡았다는 것은 더 이상 두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드림웍스사의 「슈렉」은 이러한 패러디의 기법을 최대한 잘 활용한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신데렐라, 백설 공주, 라푼젤,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빨간 망토, 아기 돼지 삼형제, 피노키오, 엄지공주, 개구리 왕자, 미녀와 야수, 장화신은 고양이, 인어공주, 헨젤과 그레텔 등의 고전 동화들과 스파이더 맨, 미션 임파서블, 터미네이터, 사랑의 행로, 반지의 제왕, 마스크 오브 조로 등의 영화들을 쉽게 찾아낼 수 없을 만한 아주 작은 장면에까지 집어넣는 센스를 보여준다. 관객들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속속들이 등장하는 이 작은 패러디들로 인해 놀라고, 기뻐하고, 신기해하다가 자신도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아하!’하면서 무릎을 치게 된다. 슈렉에 등장하는 패러디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먼저 슈렉을 만든 드림웍스사와 라이벌 관계에 있는 디즈니사에 대한 은근한 비판을 들 수 있겠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고전 동화들을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으로 승화시켰던 디즈니의 작품들은 최근 들어 몇 가지 비판의 대상이 되곤 했다. 여성을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주체로 나타내고 있는 가하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벗어난 여성들은 벌을 받게 되고, 지나치게 외모 지상주의를 표현하고 있다거나, 일부 작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백인 우월주의를 나타내고 있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에 드림웍스사는 외모지상주의에 완전히 반대되는 괴물 슈렉을 내세웠고, 슈렉을 따라 괴물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한 피오나 공주는 기존의 여성상과는 반대되는 능동성과 쾌활함을 영화 속에서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들은 흉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행복해 했고,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았다.
영화 슈렉 속에서는 유명 브랜드들도 대거 등장한다. 패스트푸드 브랜드나 패밀리 레스토랑, 커피 전문점에서부터 명품 의류 브랜드까지. 대모 요정은 다이어트에 실패했다고 하면서 패스트푸드점에서 중독된 듯이 먹을 것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여자들은 명품 의류 브랜드 상점 앞에 우글우글 몰려 있다. 물론 이러한 모습들을 브랜드의 우상화나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겠지만 현대인들의 상품에 대한 집착과 물질주의를 살짝 꼬집었다고 본다면 크게 넘겨짚은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 가지 동화들을 통해 적당히 교훈을 재구성한 패러디들도 있다. 피오나를 위해 자신이 완벽한 남자로 변하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슈렉은 결국 본래의 자신들이 더욱 행복했음을 깨닫고 미녀와 야수에서처럼 화려하게(?) 원상태로 돌아간다. 미녀와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추악했던 모습에서 아름다운 왕자로 돌아온 야수와는 달리, 이들은 진실한 사랑을 통해 솔직한 자신들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 공주의 입맞춤으로 역시 왕자로 돌아갈 수 있었던 개구리 왕자는 피오나의 아버지로 등장했고 자신과 같은 절차를 밟지 않게 하기 위해 슈렉과 피오나의 결혼을 반대했다. 그러나 개구리로 다시 변한 자신을 변함없이 사랑해 주는 왕비를 보며 슈렉과 피오나의 사랑에 동감하게 된다.
영화 슈렉에서 사용된 패러디들을 보며 즐거워하는 관객들이 있는가 하면, 너무 짜 맞추기 식의 영화가 아니냐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관객들도 있다. 물론 슈렉에 셀 수 없이 많은 패러디들이 등장하면서 영화 자체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감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미 이 영화의 배경이 모든 동화의 근원지인 ‘겁나 먼 왕국(Far far away kingdom)’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패러디들이 오락성 뿐 만 아닌 나름의 타당성을 가지고 존재하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이것저것을 끼워 맞춘 표절작이나 아류작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그 패러디들이 모두 원작에서 하고자 했던 의도와는 다른, 새로운 교훈과 의미를 가지고 등장하고 있으므로 단순한 리메이크와도 확연히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 있어서 패러디는 더 이상 ‘웃기기 위한 가벼운 소구’가 아니다. 때로는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기도 하고, 때로는 원작을 되돌아보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며, 또 딱딱하거나 무거운 주제를 부드럽게 풀어나가는 윤활유 역할을 하기도 한다. 패러디가 우리 생활 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이러한 역할들은 수용자의 입장에서 우리가 어떻게 패러디를 대하고 접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 줄 것이다.
영화 슈렉의 제작팀은 지속적인 시리즈를 더 계획하고 있다. 이미 1편과 2편에서 많은 패러디로 우리들을 웃기기도 생각하게 하기도 했던 슈렉이 새롭게 제작되는 속편들에서도 특유의 모습과 교훈을 잃지 않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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