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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오디세이 3권 독서 감상문
미학오디세이 3편은 이탈리아의 건축가이자 판화가인 피라네시와 함께 현대예술을 설명한다.
인상주의 화가인 모네는 현대인의 눈으로 복제의 복제를 통해서 사물 존재의 뚜렷함을 제거하였다. 그의 작품 수련에서 연꽃과 또 다른 작품 루앙성당은 현대인의 시각을 그리려 한 것이다. 반면, 절대주의의 말레비치는 검은 사각형과 검은 동그라미 같은 작품을 통해 검고 무거운 침묵으로 대상이 침몰해 가면서 모든 형의 차이를 지우며 근원적인 무의 상태를 나타냄으로써 우리는 미적 금욕주의를 볼 수 있다.
현대에 들어와 매체미학이 발달하였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복제되는 기술적인 영상들이 나타났다. 우리는 이런 매체를 이용하여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작품의 진리는 존재자의 재현이 아니라 존재의 현시에 있다. 고흐의 작품 속에 있는 구두는 그저 사물로써 구두가 아니다. 구두를 통해서 그 안에 존재하는 역경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가시적인 것은 재현하는 게 아니라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한다. 근대의 예술 문화는 한갓 미적 감상만을 목적으로 취하는 존재로 전락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작품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어 작품을 감상함으로써 존재의 진리가 일어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자연에서 정신만을 보고 법칙을 찾아내려는 헤겔을 비판한다. 자연은 정신이 아니고 신비함을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비인간성에 항의하기 위해 예술은 침묵으로 일관하여 자본주의 사회속의 개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자신만의 코드로 고유성을 지킨다. 그래서 현대 예술은 사회를 재현하지 않고 파편화된 표현으로 사회의 질병과 어둠을 미메시스한다. 저자는 전체를 위해 개별자를 희생하지 않고 개별자의 고유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마그리트는 칼리 그램으로 칼리 그램을 파괴함으로써 근대적인 예술의 종언을 말한다. 마그리트 작품속의 형상은 유사를 지향하지 않는다. 유사의 수직적 의무에서 벗어나 동일한 모티브의 등장으로 인한 ‘상사’의 수평적 놀이를 즐긴다. 그럼으로써 상투적인 작품에서 해방시켜 일상 사물들 속에서 우리가 미쳐보지 못했던 것을 비로소 보게 하는데 이게 바로 마그리트가 추구하는 ‘상사’의 진리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으로 전통적인 장르가 변화하였다. 벤 야민은 새로운 미디어가 대중의 지각을 훈련시키고 그들의 비판적인 의식을 일깨우며 그들을 예술적 수용과 예술적 연출의 주체로 세울 것이라 보았다. 자본주의의 거대한 틀 속에서 미디어는 거대한 매트릭스를 이용하여 권력을 꿈꾼다. 즉, 미디어도 예술을 닮아서 더 이상 현실을 재현하지 않고 없는 현실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해 전자는 창조의 미학을 존재의 윤리로 견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2년마다 개최하는 광주 비엔날레의 전시관에 가보면 난해한 작품이 한둘이 아니다. 작품에 대한 약간의 설명이 따로 마련되어 있고 큐레이터들은 특유의 사무적이고 빠른 말투로 작품에 대해 설명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전시관이 더욱 낯설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래서 혼란한 머릿속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바깥으로 다시 나가야 했다. 그렇게 작품과 소통하려고 했던 나의 시도는 빈번히 실패했다. 기괴하고 정체모를 작품들은 무서운 공포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것이 현대 예술의 특징이 아닌가 싶다. 이 책엔 인상주의 화가인 모네도 있었지만 뒷장으로 갈수록 그림이 극단적으로 추상화되어 점점 어려워진다. 현대 예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하학적인 요소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인지 이 책을 읽는 내내 어려웠다. 나는 평소 예술을 관찰자와의 소통이라고 생각했는데 작품의 설명 없이는 감상할 수가 없다면 감상과 해석의 순서가 뒤바뀔 소지가 있을 지도 모른다. 현대사회는 미디어가 지배한다. 이곳에서의 현실과 허상의 구분은 모호하다. 권력집단들은 그들의 권력으로 미디어를 그들의 입맛에 맞게 이용한다. 보통사람들은 각본대로 구성된 영상이나 사진을 원본으로 착각하여 그들의 삶에 침투시킨다. 이것은 저자의 말대로 창조가 아니라 조작의 힘이다. 저자는 이런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과거를 장밋빛으로만 보는 사람들은 대체로 현재의 가치를 더욱 낮추어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예술작품도 시간이 지나면 고전이 될 것이다. 어쩌면 예술은 예셔의 그림처럼 시간의 구분 없이 돌고 도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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