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극사조를 어떤 틀로 바라보는가 공간 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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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극사조를 어떤 틀로 바라보는가’
공간(space)
특정한 키워드를 통해 연극을 바라보는 것이 새로운 자극이 되었다. 아직도 연극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배우이며 연기이며 연극에서 궁극적으로 남게 되는 것도 배우라고 생각하지만, 또 한편 연극이 이루어지는 공간(space)이 그것을 극대화시켜줄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이 때, 공간이라는 의미는 연극이 이루어지는 물리적인 공간 뿐만 아니라 연극을 관람하는 집단 혹은 공연이 이루어지는 장소의 사회적 의미, 정치적 의미까지를 포함한다.
고대 연극이 제의적 성격을 통해 집단의식을 강화할 수 있었던 것은 정치적인 필요를 위해서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의견에 십분 동의하지 않더라도, 제의가 공동체의 필요, 즉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절실한 바램들을 담아냈기 때문에 그것이 지속적으로 공동체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에 이르러 집단의 공동체성을 강화하기에는 집단의 요구가 다양화되고, 집단의 성격 역시도 다변화되었다. 하여, 연극이 제의성을 통해 관객에게 그 순간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은 공동의 문화를 공유하는 세부 집단들에게 직접 찾아가 그들의 신화를 현현하는 것일 게다. 그렇다면 그 집단이 처해있는 공간적 의미들을 찾는 것이 연극을 만드는 데에 필수적인 일이 된다.
아동청소년극전공(이하 ‘아청’)에서 하고 있는 작업들 중에는 참여자들이 과정을 체험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는 연극놀이와 참여자들을 관객으로 하는 공연 작업이 함께 있다. 특이할만한 것은 두 가지 모두 참여자들의 공간으로 찾아가는 것에 매우 호의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 일상에서 연극을 만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참여자들이 극장에서 긴장을 한 채로 연극을 바라보는 한계를 넘어 좀 더 자기 공간 속에서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공연을 ‘체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데에 첫 번째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편, 일상 속에서 연극을 만나는 경험은 이후에 참여자들이 연극이나 DRAMA를 스스로 행할 수 있는 주체자가 된다는 점에서 더욱 더 큰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이 때, 연극놀이나 공연은 그 행위가 이루어지는 공간의 제약을 받기도 하고 그것을 십분 활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교실에 쌓여진 책상들은 아이들이 넘어야 할 산으로 둔갑하기도 하고, 모든 구석이란 구석은 아이들이 동물로 변신했을 때 아주 요긴하게 쓰이는 동굴이되기도 한다. 이러한 일상적 공간 변형은 연극놀이에서 매우 유용하게 사용된다. 찾아가는 공연 역시 공간을 유연하게 이용하는 것을 즐기는데, 예를 들면 어두컴컴한 시청각실을 비밀스러운 의식이 행해지는 동굴로 활용할 때 참여자들은 좀 더 실감나게 드라마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는 그 전시 내용과 성격에 맞는 내용을 고름과 동시에 그 공간의 구조를 적극 활용할 수 있다. 구조가 복잡한 전시관에서는 뭔가 음모를 꾸미는 수상한 자의 뒤를 밟는 드라마가 이루어질 수도 있고, 단순한 계단을 이용하여 한국에서 간도로 넘어가면서 일본인들에게 한국인임을 위장하는 긴장감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이러한 공간 활용은 모두 상상과 변형이라는 놀이적 성격을 십분 활용한 것인데, 이 때 참여자들은 이것이 연극이며 허구임을 알기에 더욱 재미있게 극 상황을 믿게 된다. 만일 이 공간에 사실적인 세팅이 들어왔다면, 아이들은 분명 “에이~ 가짜다,”라는 반응을 하는 등 더더욱 연극적 상황에 빠져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극장주의가 연극이 이루어지는 이 곳에 극장임으로 오픈하고, 지금 이루어지는 것이 공연임을 관객들에게 인지시켰던 것은 오히려 관객들이 극을 믿는 데에 도움을 주었던 획기적인 시도가 아니었나 한다. 물론 그 때 극장주의가 이전의 사조들에 반발하여 “이것은 연극이다”를 관객들에게 “일깨우기 위해서” 관객들에게 다가간 면이 없지 않고, 당시 관객들에게 그러한 연극이 생소하게 느껴졌을지 모른다고 본다면 아청에서 시도하는 연극들에는 관객들이나 공간에 대해서 좀 더 유연해진 면이 있는 듯 하다. 그 이면에는 참여자들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참여에 익숙하며, 놀이성이 강한 참여자들에 대한 고려가 극장주의나 제의의 연극이 시도해왔던 연극성들을 유연하게 결합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연기 스타일에 있어서도 자유자재로 역할 속에 들어갔다가 이끔이로 빠져나온다는 약속이 서사극이나 극장주의에서 시도하고 있는 연기 스타일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러나 연극놀이에서도 계속적으로 참여자들이 드라마 안에서 행동하는 것만으로는 드라마가 진행되는 것이 쉽지 않다. 때로 참여자들은 장면 속 배우의 연기를 보며 드라마 속에 더욱 몰입하고 다음 상황에서 좀 더 깊숙하게 드라마를 체험하게 된다. 이 때 배우의 드라마는 사실주의나 자연주의에서 추구하였던 인간의 리얼리티를 드러내는 방식을 기본으로 하게 된다. 어차피 극장주의나 사실주의에서 추구하는 이화효과도 얼마나 그 역할에 인물로써 충실하느냐,가 중요한 열쇠이기 때문이다. 이때 참여자들은 관객이 되어 그 장면을 지켜본다. 그러고보면, 연극의 여러 요소들 중에서 아무리 제의적 연극이 ‘doing’을 강조한다하더라도 ‘seeing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라는 점에서 ‘무대’에 대한 계속적인 고민이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한편, 찾아가는 공연을 다니다보면, 더욱더 환경에 민감해지는데, 예를 들면 주로 공연을 하게 되는 학교 강당의 경우에는 공간이 넓고 높아서 굉장히 차갑고 추운 인상을 받는다. 그래서 무대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히려 공간을 활용하는 방안으로 교실이나 강당의 커텐을 무대막처럼 활용하고 그 앞에 천을 주렁주렁 매달아 떠돌이 천장사의 이야기보따리를 풀게 되면, 일단 시각적으로 재미있는 상상이 가능한 공간으로 변형된다. 특히 연령이 낮은 유아들의 경우 시각적인 것에 매우 민감하여 이러한 시각적인 공간에 굉장히 큰 영향을 받고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더불어 소리를 찾아내어 그 속에서 상상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또 하나의 과제로 남는데 이러한 시청각적인 소재들이 그 공간과 잘 어우러지려면 공연자 측에서 준비해 간 소품과 무대 장치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그 공간의 크기, 색채들과 어떻게 어울려지는지도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표현주의나 상징주의가 이미지나 시청각적인 감각에 호소하였던 것들은 이러한 맥락에서 아동이나 유아 관객들에게 큰 의미가 된다. 동료 중의 한 명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연 형식에 있어 학교의 화장실과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연극적으로 변형시켰을 때 참여자들에게 그 의미가 극대화될 수 있을 거란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화장실이나 도서관은 아이들이 이야기를 항시 접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아이들과 만나고 있는 공부방에 작은 차고가 있는데, 나에게는 자동차 차고의 그 셔터가 항상 무대의 막처럼 나를 유혹한다. 무대로서의 의미가 충분한 곳이기에 작은 ‘차고 인형극장’ 쯤으로 둔갑시켜볼 생각이다.
몇 년 전부터 아청 뿐만 아니라 한국예술종합학교 차원에서 찾아가는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예산의 문제 등으로 인해 자주 이루어질 수 있는 성격의 공연이 아니며 그 맥락을 살펴보더라도, 주로 문화소외지역에 공연 기회를 주기 위함인 경우가 많다. 하여, 초기에는 찾아가는 공연에 맞추어 공연이 만들어지기보다는 기존에 만들어져있는 공연을 현장에서도 할 수 있도록 조정하여 공연을 하곤 하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찾아가는 공연 형식에 맞게 미리 간단한 무대세팅과 조명, 의상 등을 고려하여 공연이 제작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특정 그룹을 대상으로 한다거나 특정 장소를 컨택하여 공연이 제작되는 단계에 이르기는 힘이 든 듯하다. 이러한 점에서 영국의 한 극단에서 버려진 방앗간을 컨택하여 그 동네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만든 공연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관객들을 여러 공간으로 이동시키면서 각 공간에 따라 각기 다른, 하지만 전체적으로 관련을 맺는 에피소딕한 장면들을 연출하였다. 밀의 수확에서부터, 밀 반죽, 그리고 빵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마치 하나의 의식처럼 성스럽게 구현해놓았으며 중간에 밀을 반죽하는 섹션에서는 아이들과 엄마들이 함께 밀반죽을 하며 찰흙처럼 변형놀이하도록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 때 배우의 연기력 때문에 theatre의 성격을 잃지 않으면서 관객들을 자연스레 참여에 이끄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이 극을 보고나면 하나의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고 난 듯한 느낌이 들면서 우리가 평상시에 먹는 빵에 대해 완전히 다른 느낌을 가지게 될 것 같았다. 마치 어딘가에서 빵의 정령들이 이렇게 매순간 밀을 수확하고 노래를 부르며 밀가루 반죽을 하고 빵을 만들고 있을 법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 공연은 연극놀이와는 달리, 전문 배우들, 전문 production의 공연으로써 theatre가 어떻게 공간을 활용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 공연이었다. 공간과 연극이 결합하였을 때 참여자들에게 줄 수 있는 강렬한 시청각적 이미지, 현존성의 체험, drama의 안과 밖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유연한 연기스타일 등이 매우 훌륭하게 결합된 연극이었다.
중요한 것은 연극이 이루어질 때, 특히 특정 집단의 공간을 찾아가거나 특정 장소를 컨택하여 공연을 만들 때 그 공간의 물리적 특성에 대한 탐구, 그 공간에 대한 참여자들의 인식, 경험 등에 대해서 오랜 기간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찾아낼 때 공연 제작팀들이 관객들을 훨씬 더 가깝게 만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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