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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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2008년 2월 이 책을 서점에서 구입해 두고 1/3쯤 읽다가 책장에 얌전히 모셔두었던, 그래서 지금은 뽀얗게 먼지가 앉아 있을 책이 눈앞에 그려졌다. 책을 구입하면 앉은 자리에서 다 읽는 편인데 2008년 2월에 구입한 책들은 하나 같이 끝까지 완독하지 못했다는 공통점들이 있었다. 마침 대학생 필독서 목록에도 있거니와 레포트를 제출하기 위해서라도 읽어야 하니, 이번기회에 완독하자고 마음을 먹고 청주 집에 내려갔는데, 내려가자마자 밤부터 열이 끓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서는 열이 내리고! 신종플루를 의심하지도 않고, 밖에 나가 몸이 허한 탓이려니 하고 삼계탕을 사먹었다. 그리고 그날 밤 또 열이 끓었다. 안되겠다 싶어 집근처 대학병원에 갔는데 아는 지인에게 진료를 보게 되었다. 많이 피곤해 보인다는 말에, 실은 마음이 더 피곤해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넘어오려는 것을 애써 참았다. 타미플루 처방을 받고 한 알 먹자마자 열과 몸살기운이 싹 가라앉았다. 이번 기회에, 보고 싶었는데 미뤄두었던 책이나 잔뜩 보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으면서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만들자고 생각하며 나를 달랬다. 독후감을 쓸 책을 먼저 읽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평소 좋아하던 작가의 신간(역시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는)에 먼저 손이 갔다. 이 작가의 글을 보노라면 잠자고 있던 열정에 힘이 실리곤 했는데, 이번 작품은 왠지 나와는 거리가 먼 세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거 같아 읽는 내내 약간의 이질감과 함께 마음이 자꾸만 더 쳐짐을 느꼈다. 그리고 가장 아끼는 책인, 젊은이의 세계여행기를 시와 사진으로 담아 놓은 책도 열어보았지만 웬일인지 풀죽은 마음은 일어설 기미조차 보이질 않았다. 마음을 달래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두 작가의 글이 좀처럼 마음에 들어오지 않자,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쉬어갈 수 있는 요 일주일을 잘 이용해서 길을 잃은 마음을 달래 어서 현실생활에 충실한 나로 돌아가야 하는데 라는 조급한 생각. 이런저런 책을 들척이다 마지막으로 손에 쥔 책이 무소유였다. 1/3까지 읽었던 책이긴 하지만 2008년 2월의 나와 2009년 11월을 살고 있는 내 사고의 세계는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첫 장부터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교과서에서도 본 적이 있는 무소유라는 제목의 수필을 읽으며, 지난해 이 책을 읽을 때의 생각들이 떠올랐다. 법정스님의 이 수필 덕분에 물건에 집착하는 내면의 모습을 나 또한 공감할 수 있었고 물건이 망가지거나 잃어버린데 대해서 속상해 하지 않을 수 있는 내면의 큰 교훈과 힘을 얻어 그것이 일상생활에 지금까지 적잖은 도움을 주고 있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내가 이 책의 가치를 그동안 너무 오래 외면해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 때마다 오늘의 나에게 꼭 필요한 말씀들이 한가득 담겨 있는 이 책을 1년이 훌쩍 넘은 오늘에 읽게 된 데에 한편으로는 감사한 마음이 일었다. 실은 얼마 전에 학교 선배들과 트러블이 있었는데 그 일이 오늘에까지 나의 마음에 영향을 주고 있는 중에 병마가 찾아온 것이었다. 역시 몸의 병은 마음에서 기인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책을 찾기를 간절히 바랬는데, 1년여를 모른 척 하고 지내오던 이 책속에 해답이 들어있을 줄이야!
어렵게 어렵게 공부해 뒤늦게 들어온 학교생활이 1학기 때는 힘든 줄도 모르고 지나더니, 어느새 나태해진 것인지 좀처럼 2학기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았다. 종종 지각도 하고 수업을 빠지기도 하고, 학교생활 충실히 하고 주말에 학원일 까지 하면서 장학금을 타내던 그 악바리 근성은 다 어디로 가 버린 것인지, 그런 나에 대한 작은 불만들이 점점 쌓여 커져가면서 결국에는 선배들과의 트러블로 그것이 드러나 버렸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고개 숙이고 내 잘못부터 먼저 뒤돌아보고 사과했을 나인데, 그만 뿔난 마음을 여과 없이 드러내 버린 것이었다. 그것은 결국 나를 가장 괴롭히는 일이었음에도 화를 내는 그 순간은 그것이 나를 위한 것처럼 착각을 해버린 나의 실수로 결국은 마음에 큰 상처만 남기고 일이 마무리 되었던 것이다. 그런 일과 함께 좀 쉬고 싶다고 생각하는 중에 찾아온 병마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고삐 풀린 말망아지 같은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2학기 중 마지막 기회.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어 내려가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결 같이 이어지는 자기 성찰적 자세에 응어리 진 마음이 하나하나 풀려갔다. 무엇을 해도 풀리지 않던 마음들이, 법정스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들에 스르륵 스르륵 눈 녹듯이 마음이 풀어지고 그동안 용기가 없어 들여다보지 못했던 내 마음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책에 있는 내용들이 하나같이 다 마음에 닿는 좋은 글귀들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사람에 나오는 수연스님에 대한 이야기가 내 눈시울을 적셨다. 타인을 아끼고 사랑하는 섬김의 자세에서, 나는 수연스님에 비해 좀 유난스런 사람은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수연스님이 행한 일과 과묵한 인품을 좀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동안 지표 없이 허공을 둥둥 떠다니던 마음이 지표를 찾아낸 반가움을 무엇으로 다 말할 수 있을까. 너무도 오랜만에, 마음에 흡족하게 단비를 내려주는 양서를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그리고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통해 물건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났듯이, 이 책의 또 다른 좋은 말씀들을 체화해, 내 마음의 집착에서 벗어나는 데에 마음공부를 게을리 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고 다짐하며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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