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제사회로서의 고려는 실제로의 다양하고도 통일성을 갖춘 동시에 역동적이면서도 탄력적인 모습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우리는 여기서 고려를 단순한 민족의식 고취의 매개체로 삼는 상태를 벗어나 고려사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고려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토대로 이해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고려사가 현대에 주는 시사점을 고찰해보려 한다. 자주와 사대, 혹은 침략과 저항으로 이분화된 고려시대에 대한 제한적인 이해를 극
고려가요를 대표하는 시가이며 그 형태적 특질이 속요과 상통하는 점이 많으므로 속요과 경기체가를 총칭하여 별곡이라는 하나의 장르로 설정하자는 주장도 있다. 정병욱, 「별곡의 역사적 형태고」, (국문학산고) pp.149-159그러나 비록 양자간에 형태면의 공통성이 있다손 치더라고 그 수사상의 표현이 너무나 이질적으로 판이할 뿐만 아니라 후렴구의 구성도 다르며 또 그것이 조선시대로 넘어와서는 송축가류로 변모하는 등 그 시가적 성격의 차도
귀족의 지위를 세습하여 문벌을 이루어 나갔다. 이들 고려 전기의 지배계층을 문벌귀족이라 칭하며 이 시대를 문벌귀족사회 또는 귀족제사회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문벌귀족사회설을 부정하는 입장의 연구도 있다. 그에 의하면 고려는 관료제사회라는 주장인데 이는 세습제를 부정하고 과거시험에 의해 능력있는 자가 관료가 되는 사회라는 것이다. 또 이 두 주장에 대한 절충설로 귀족제사회를 부정하면서도 관료제사회를
귀족제 사회론은 이후 고려의 지배세력을 귀족적 존재로 볼 것인가 아니면 관료적 존재로 볼 것인가 하는 이른바 귀족제와 관료제 논쟁으로 발전했다. 2. 귀족사회론-1930년대와 1940년대 안확과 손진태가 제기. 학계의 정설로 간주됨.-1970년대 관료 사회론이 제기되면서 확고한 체계 -서양의 귀족 개념을 원용하여 고려시대의 지배세력을 귀족으로 규정 작위의 세습, 토지의 무기영대적 소유, 폐쇄적 통혼권의 형성 박종기, 「고려사회 성격론」, 『한
귀족출신 지방세력가가 아닌 이들 신흥 세력가들에게 투신했던 것은 장차 신라를 대신할 새로운 왕국을 일으켜 정치ㆍ사회적 모순을 근본적으로 시정하여 새로운 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 최규성, 1987「궁예정권의 성격과 국호의 변천」『상명여대논문집』19이를 보아 궁예정권의 투쟁의 목표는 쇠미한 신라를 완전히 정복하는 것과, 후백제마저 토평하여 통일의 대단원을 이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궁예가 고려라는 신 국가를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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