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열전 서평 사기열전과 사마천에 대한 평가와 그 책만의 가치와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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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사기열전 서평
(사기열전과 사마천에 대한 평가와 그 책만의 가치와 문제점)
과거 모방송사의 ‘책을 읽읍시다.’ 라는 프로그램에서 사기라는 책을 봤다. “만약 무인도에 간다면 다른 무엇보다도 사기를 가지고 가겠다.”는 어느 유명인의 말처럼 사기는 아주 오래된 고전이지만 지금까지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비록 읽은 부분은 열전이지만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많고 내용적인 면에서도 더 의미 있을 거 같다. 사마천은 전한시대 무제 때 사람이다. 사마천의 아버지도 역사를 집필하는 사관이었다. 하지만 과거의 역사를 정리하다가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리고 아들인 사마천에게 그 일을 하도록 당부하였다. 어쩌면 이 책을 쓰게 된 시작 요인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본다. 그렇지만 본격적으로 사마천이 역사서를 집필하는데 많은 요인들이 뒤따랐다.
첫 번째 요인은 자신의 처지이다. 알려진 것과 같이 사마천은 궁형을 당하였다. 어쩔 수 없이 흉노에게 항복한 이릉을 감싸다가 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대부분 벌을 받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마천 역시 그럴 처지에 놓였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궁형을 선택하였다. 남자인 입장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죽기 보다 더 창피한 벌이다. 앞으로 치욕스럽게 살아가야 하는데 끝내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아버지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사마천 나름대로 역사의식과 사상적인 부분이 확립되어 있었다. 사마천은 사관으로서 소명의식이 있었다. 태사의 직무를 담당하면서 밝고 거룩한 천자의 성덕을 기록하지 않으며 공신, 세가, 현대부의 업적을 버려두고 기술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 하였다.
처음 목차 부분에 “궁형을 당한 사마천이 그 부끄러움을 이기고 살아남은 까닭은 이 문장을 후세에 만기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다. 왜 후세에 글을 남기려고 했을까? 사마천이 옛 친구 임안에게 보낸 편지에서 [주역은 갇힌 몸이 되어 ‘주역’을 완성 하였고 공자는 곤란한 처지에서 ‘춘추’를 지었고 굴원은 쫓겨 가서 ‘이소’를 썼으며...등]의 내용을 말하였다. 자신 역시 궁형을 당했지만 그가 역사를 기록한 이유는 후세의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알아 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마천에게는 역사가 반복한다는 사상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사마천은 전한시대 사람이기 때문에 은주 혁명 때 백이부터 시작해서 무제 때까지 인물을 기록 하였다. 과거 기록을 살펴보면서 춘추세대를 비롯한 많은 국가들의 흥망성쇠를 확인 하였다. 역사의 유형도 국가마다 변하였고 도덕적인 가치, 제도나 예 역시 바뀌었다. 마치 공자시대의 가치관과 한비자 시대의 가치관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물론 각 역사가 가지는 독자성도 부정한 것은 아니지만 계절이 순환하고 생물이 태어나서 죽는 것 같이 역사도 반복한다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한 나라가 망하면 다른 나라가 생겨나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덕성이나 도덕적 가치, 옛 선조의 지혜 등이 필요 했다. 그래서 사마천은 역사적 진실과 덕을 쉽게 알 수 있도록 자신의 역사관을 가지고 역사를 재해석 했다.
그렇다면 사마천의 가치관은 무엇일까? 사기열전은 개인이 집필하였다. 아무리 객관적이기 위해 노력했다하더라도 작자의 사상이나 가치관이 녹아난다. 소진 장의 열전에서 소진은 역사적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었지만 사마천은 그의 지혜를 높이 샀다. 그리고 몽염 열전에서 몽염이 억울하게 죽을 때 자신이 만리장성을 쌓아서 지맥을 끊었으니 이것이 죄가 되어 죽어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에 사마천은 전쟁에서 상처입어 아직 낮지 않은 사람을 공사에 동원하였고 궁핍한 백성들을 구하지 못한 죄를 들며 몽씨의 죽음을 당연시 하였다. 특히 이 부분에서 사마천의 인간적인 부분은 나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마천은 중국은 물론이고 자신이 알 수 있었던 과거의 모든 역사를 썼다. 조선열전이나 흉노열전과 같이 외국 민족이라고 해서 기록에 남기지 않지는 않았다. 민족의 차별 없이 가치가 있다면 기록에 남겼다.
사기열전은 (하 은 주 진 한)등 5대 왕주와 많은 봉건제국을 포함한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기전체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아주 유용하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역사가 끊임없이 생장하는 과정이고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새로운 역사가 탄생한다는 역사관 때문에 이러한 구성을 갖춘 듯하다. 목차 부분을 살펴보면 백이 열전부터 화식열전까지 시대 순으로 역사를 기록 하였다.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다루어지는 인물들의 모습도 달라진다. 처음부분은 나라의 흥망, 전쟁, 영웅적인 면을 주로 다뤘지만 후반부는 점치는 내용이나 골계열전과 같이 해학적인 이야기도 다루었다. 아무래도 후세 사람들이 역사의 흐름을 판단해서 필요한 부분을 채우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앞서 보았으면 하는 사마천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기열전은 다른 역사서 보다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어떻게 이정도로 자세히 기록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생길정도이다. 인물들의 고뇌와 방황까지도 표현되어 있다. 이는 사마천이 자세히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부분이지만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자객열전같이 전개가 빠른 부분은 재미있었지만 내용이 지루한 부분이 많았다.
즉 쓸데없는 내용도 간혹 보였다. 그래도 사마천의 이러한 노력이 없었다면 전한시대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높이 평가 받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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