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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팔공산의 문화유적
목차
서론
본론
팔공산의 유래
팔공산 문화유적
( 국보, 보물, 유형문화재, 문화재자료, 사적, 사찰)
팔공산의 전설이나 설화
팔공산의 명소
결론
서론
대구에서 으뜸가는 산이라 하면 단연 팔공산이다. 팔공산은 화산의 폭팔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6천만~7천만년 전에 화강암이 치솟아 융기작용으로 호수바닥이 육지가 되고 산이 되었다. 그때부터 팔공산은 시간과 함께 흘러왔으며 삼국시대부터 명산이라 불리며 산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팔공산을 숭배하고 받들었다. 지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시대시대마다 중심지적 역할을 다 하였다. 신라 오악에 중심부역할을 한 산이 팔공산이며 또한신라 호국성신인 오악의 하나로서 신라의 상징적인 존재로 국가차원에서 숭배되어 온 영산이며 신령스러운 땅에 불교가 수용되면서부터는 자연히 신라불교의 성지로서 자리매김 되었다. 그만큼 오랜시간동안 우두커니 자리를 지켜온 팔공산에는 그 당시에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문화재들이 존재하고 있다. 석탑 및 석상, 사적, 사찰 등을 비롯한 유형, 무형 문화재까지 다양하게 존재하며 현재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다. 그러나 팔공산의 문화유적에 대한 홍보와 사람들의 관심부족으로 인해 산으로는 명산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실지 팔공산의 문화유적에 대해서는 인식이 열악한 실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문화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팔공산의 문화유적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며 팔공산의 문화유적이란 주제를 가지고 팔공산의 문화재에 대해 알아보았다.
팔공산의 유래
팔공산은 삼국시대부터 공산(公山). 중악(中岳).부악(父岳) 등으로 불려져 온 영남 지역의 명산(名山)이다. 중악이나 공산의 명칭은 「삼국유사(三國遺事)」.「삼국사기(三國史記)」등의 기록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공산은 현재의 팔공산을칭하는 것이고, 중악이라는 것은 신라 오악(五岳)의 하나로 ?恬?던 명칭이었다.「삼국사기」권32. <제사지(祭祀志)>에 기록된 삼산(三山)과 오악(五岳)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신라는 산악을 신격화하여 호국신군으로 받드는 산악숭배사상으로서 삼산 오악을 두었는데, 이를 대사와 중사로 표현하여 국가 최상의 제전으로 삼았다. 곧 신라의 대사삼산(大祀三山)과 중사오악(中祀五岳)은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동시에 확장되는 신라세력을 상징하는 신라 최고의 호국성신(護國聖神)이었던 것이다. 신라 오악이라는 것은 동쪽 토함산(동악), 서쪽 계룡산(서악), 남쪽 지리산(남악), 북쪽 태백산(북악) 그리고 중앙의 공산(중악)을 지칭한다. 이는 곧 팔공산이 통일신라의 중심지적 위치에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듯 팔공산은 신라 호국성신인 오악의 하나로서 신라의 상징적인 존재로 국가차원에서 숭배되어 온 영산(靈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신령스러운 땅에 불교가 수용되면서부터는 자연히 신라불교의 성지로서 자리매김 되었으며, 신라 하대에 이르러서는 왕실의 원찰지(圓刹地)로서 원찰 조성과 원탑(願塔)조성 등 융성한 불교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이 흐름은 고려시대에서도 계속되어 고려의 초조대장경(初彫大裝經)이 부인사(符仁寺)에 봉안되고, 유가종(瑜伽宗)의 거봉인 홍진국사 혜영(弘眞國師 惠永). 자정국사 자안(慈靜國師 子安)은 동화사(桐華寺) 주지로서 전국의 불교를 관장하는 오교도승통(五敎都僧統)이 되어 이 땅의 불교를 호령하였다. 불교가 탄압받던 조선시대에도 은해사(銀海寺)가 인종태실수보사찰(仁宗胎室守譜寺刹)로, 파계사(把溪寺)가 영조(英祖)의 장수를 비는 원찰로서 조선 왕실의 보호를 받는 등 팔공산의 법등은 계속 밝혀져 왔다. 이같은 전통으로 이곳에는 현재도 수십개소의 사찰이 자리잡고 있으면서 불교문화의 꽃을 피우고 있다. 팔공산의 불국(佛國)은 영산으로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강력한 지방 세력의 거점지였기 때문에 신라. 고려. 조선 등 왕조를 달리하면서도 계속 왕실의 호위를 받을 수 있었고, 그러한 배경 속에서 각 왕조의 중심적 불교문화가 지속되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듯 지방 호족적이면서도 중앙왕실적 불국으로서의 팔공산의 불교사(佛敎史)는 군위 삼존석불을 비롯, 동화사 .은해사 등 도처에 남겨진 불적과 현존하는 사찰들에서 그 일면을 살펴 볼 수 있다.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맥을 이어온 불교의 역사와 함께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남겨져 있는 이같은 불적들을 보노라면, 마치 이 곳에 불교의 모든 사상 형태들이 포함된 듯이 보인다. 아미타신앙, 미륵신앙, 밀교신앙 등이 시대의 정치상황과 맞물려 전개되었으며, 그러한 사상에 따른 불교예술도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그래서 시간성을 배제하고 본다면 팔공산은 모든 불교신앙이 집약된 듯한 느낌을 갖는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우는 팔공산에 대한 명칭이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대한 많은 이설(異說)이 있다. 이를 살펴보면
1) 사대사상에서 비롯되었다는 설
중국 안휘성의 팔공산에서 전진(前秦)왕 부견이 진군(晉軍)과의 싸움에서 대패한 것을
왕건과 견훤의 싸움에 빗대어 팔공산이라 했다는 설
2) 여덟 장군이 순절한 산이라는 설
후삼국시대 왕건과 견훤의 공산싸움에서 고려 장군 신숭겸, 김락, 전이갑, 전의갑 등의
여덟 장군이 왕건을 구하기 위해 순절한 것을 기려서 팔공산이라 했다는 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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