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서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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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서동수, 한국전쟁기 문학담론 연구-반공텍스트의 기원과 고백의 정치학- 요약정리 및 비판적 읽기
1. 서론
본 연구의 목적은 한국전쟁기 당시 생산된 반공텍스트와 문학담론의 영향관계를 밝히는 데 있다. 반공텍스트는 북한 공산주의에 대한 체험기, 수난기, 피난기, 종군기 등 주로 ‘증언’의 방식으로 이뤄져있으며, 문학작품이나 르포르타주 형식의 비문학적 유형으로 세분화된다. 이러한 텍스트는 단지 ‘감상적’ 차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남한 사회의 이념적 지형도와 문학담론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대한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반공텍스트는 선전이라는 본질적인 목적 외에 문인들의 내밀한 고백적 글쓰기의 공간이기도 했다. 문인들에게 반공텍스트란 스스로 반공주의자임을 천명하고 증명할 수 있는 이른바 이념의 보증수표였던 것이다. 따라서 반공텍스트는 그것이 갖는 공리적 성격과 이데올로기 표출방식 등 역사적 장르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이후 한국문단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결정짓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에 본고는 고백적 글쓰기의 발생 배경을 밝히고, 반공텍스트의 양가적인 성격 및 문인들의 내면풍경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반공텍스트가 단순한 이념의 선전도구의 장뿐만 아니라, 문인들의 내밀한 고백적 글쓰기 혹은 문학행위의 공간이었음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2. 반공텍스트의 기원과 고백의 탄생
한국 전쟁기는 공산주의에 대한 억압이 강했던 시기이면서도 동시에 공산주의에 대한 담론이 가장 활발히 발현되었던 시기이다. 반공을 보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반공의 대상인 ‘공산주의’에 관한 담론이 가장 왕성하고도 활발하게 생산된다. 당시 생산된 반공텍스트는 증언이자 고백이다. 고해성사가 내면의 진실을 고백하듯이 문인들의 증언이란 반공의 선전적 기능과 함께 스스로 반공주의자임을 고백하는 행위였다. 한국 전쟁기의 이러한 고백적 글쓰기는 한강을 두고 일어난 피난이라는 하나의 사건에 기원을 둔다. 피난은 ‘국민의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징표이자, 북한의 침략성을 만천하에 알리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입증해준 성스러운 ‘엑소더스(Exodus)’의 체험으로 자리 잡는다. 또한 피난의 여부는 ‘도강파’와 ‘잔류파’라는 새로운 명명을 낳았고, 이는 이념을 분류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 즉 도강파는 반공주의자요 애국자로, 잔류파는 좌익, 좌익동조 혹은 기회주의라는 등식이 성립되었다. 잔류했던 문인들 중 공산주의에 부역한 자들은 ‘마마와 역병’같은 질병에 노출접촉감염된 자로 인식되었으며 동시에 이념적 불륜의 증거가 되었다.
928 서울 수복 직후 잔류파들을 향한 대대적인 부역자 처벌이 시작되었고, 군검경으로 구성된 합동수사본부는 <문총구국대>에 적색부역자를 색출하는 작업을 단행한다. 이 사건은 전쟁이나 이념보다도 ‘도강’과 ‘잔류’라는 행위 자체만으로 생과 사가 결정될 수 있음을 보여준 단적인 근거였다. 고해성사가 마련된 장에서 문인들에게는 자기반성의 시간이 강제되었고, 그들은 반공주의자로 다시 태어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결국 문인들이 선택한 방법은 글쓰기를 통해 반공주의자임을 고백하는 것이었으며, 이런 글쓰기를 통해 과거의 죄에 대한 고해성사와 함께 반공과 멸공을 다짐하게 된다.
3. 고백적 글쓰기의 양상과 정치성
3-1. 잔류파와 고해성사로서의 글쓰기
피난을 계기로 형성된 이념적 분파주의는 크게 잔류파, 도강파, 지하작가로 나뉘며 이러한 이념적 분파주의의 본질은 ‘반공의 증명’이었다. 잔류파의 경우는 이른바 공산주의에 협력한 ‘부역자’로 낙인찍히게 되고, ‘치료’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잔류파에게는 오로지 이념의 고해성사를 통해 새로이 부활하는 것이 그들의 생존전략이 된다. 일종의 ‘씻김의 의식’을 치름으로써 치료를 자청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모습이 오제도 검사의 지휘로 국제보도연맹에서 간행한 『赤禍三朔九人集』이다. 이것은 이념의 불순물을 제거하여 남한 사회의 주체로 호출하기 위한 일종의 제도적 장치였다. 그런데 부역 작가들의 고백 안에는 단지 고해성사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부역에 대한 합리화 작업 및 반공주의자로서의 천명을 알리는, 문인으로서는 필연이자 운명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적 고백’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백적 글쓰기는 ‘생의 맹목적 의지’를 향한 정치적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준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백철의 경우는 ‘어린 아이 되기’라는 전략으로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식의 글쓰기를 시도한다. 그는 자신의 불안이 어버이의 부재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하고, 부역행위와 기간에 대해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진술로 일관한다. 그에게 있어서 아비의 부재는 “남쪽의 자유의 하늘”로 표상된 국가의 부재였으며, 그의 진정한 아비는 이승만 정부가 이끄는 남한이 아닌 UN으로 표상된 미국이었다. 이러한 정치적 기술은 이승만 정부에 대한 실망을 표현하고, 자신이 투철한 반공주의자임을 강조하려는 두 가지 목적을 포함하고 있다. 그의 고해성사가 일종의 정치적 감각이었다는 것은 1953년 11월 『신천지』에 발표된 나의 처세와 그 모랄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백철은 이 글에서 위기의 순간마다 자신이 펼쳤던 처세술이 “이면작전의 방법론”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는 반공텍스트 속에서 스스로를 어린 아이로 전환시키는 것과 같은 문학의 상징을 잘 활용하였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결국 백철의 어린 아이 되기란 정치적 강요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문학적 상징행위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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