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인 조사] 박재삼(朴在森)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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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박재삼(朴在森)
1.작가의 생애
박재삼은 1933년 일본 동경에서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다. 그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자갈을 채취하는 노동자였다. 일본에서의 생활도 힘들어지자 박재삼이 5살일 때 그의 가족들은 삼천포로 이주했다. 그의 유년 시절은 몹시 가난했다. 아버지는 일자무식으로 짐을 나르는 지게꾼이었고, 어머니는 광주리에 생선을 담아 팔러 다니는 행상이었다. 그는 겨울에도 얇은 바지를 입고, 방파제에서 미역 줄기로 허기를 채우곤 했다. 이런 가난 때문에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신문팔이를 했던 그는 삼천포 중학교의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삼천포 중학 병설 야간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거기에서 국어 교사로 있던 김상옥 선생님을 만난 것이 시인의 길을 걷게 된 인연의 시작이었다. 지게꾼 아버지를 지켜보는 아픔으로 시를 포기할까 갈등도 했지만 생활을 위해 돈을 버는 것보다 시를 쓰는 일이 더 값진 삶이라고 생각하며 결심을 굳힌 그는 삼천포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부산으로 옮겨간다. 교장선생님 댁에 얹혀 살며 시를 쓰던 중 등단을 하게 된다. 서울로 상경한 그는 『현대문학』에 취직해 낮엔 일을 하고 밤엔 시를 썼다. 1955년 시조 「섭리」와 시 「정적」을 추천받아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고, 고려대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학업과 직장생활을 병행할 수 없었던 그는 학교를 자퇴한다.
박재삼이 일하던『현대문학』은 그 당시 하나뿐인 문학지였다. 출입하는 많은 문인 중 서정주도 있었는데 그의 영향으로 박재삼은 자신의 설움, 울음, 정한 등을 시로서 표출할 수 있게 된다. 1962년 서른 살에 김정립과 결혼을 했고, 이듬해엔 처녀 시집 『춘향이 마음』을 출간해 당시 관념적이고 낯선 정취의 모더니즘 시와 서구문학이론이 주류를 이루던 문단을 깜짝 놀라게 했다.
생계를 위해 신문, 잡지, 출판사 등 여러 직장을 옮겨 다니다 1967년 2월 서른 다섯의 젊은 나이에 그는 고혈압으로 반신불수가 된다. 극도의 신경쇠약, 과로, 과음이 원인이었다. 1972년 그는 결국 모든 직장을 그만두고 위궤양, 고혈압 등의 투병 생활과 함께 시 창작에만 몰두하게 되었다. 이후 30년을 투병하며 살아온 박재삼은 15권의 시집과 8권의 시선집, 9권의 수필집과 3권의 수필선집, 바둑에 관한 글들을 남겨 놓고 1997년 6월에 생을 마감한다.
2.작가의 시 세계
(1) 1950년대 당시 시적 양상
1950년대는 식민지에서의 광복, 미군정과 6.25라는 비극의 시간을 지나 진정한 민중의 힘을 보여준 4.19 이전의 소용돌이치는 역사적 공간에 있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한 이 시기의 한국 시는 변화무쌍했던 사회상을 반영하듯 다양한 형태를 띈다. 그것은 대체로 두 가지 방향으로 가닥을 잡을 수 있는데 첫째는 미당을 비롯한 청록파와 박재삼, 신석초, 박성룡 등의 전통주의적 방향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모더니즘을 표방하며 등장한 박인환, 김경린, 김수영 등의 후반기 동인이 지향한 탈 전통주의 경향이다.
이 중 박재삼이 속한 전통주의 시 계열은 민족의식을 확립하여 우리 서정시의 맥을 잇는다는 일차적의미를 갖고 출현한다.
또한 전쟁으로 입었던 국민들의 정서적 상흔은 치유하기 힘든 아픔으로 남았는데, 그것을 구어체의 어법을 통해 전래의 정조인 한의 정서로 재창조한 박재삼의 출현은 당대의 신인 중에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2) 박재삼의 시적 세계 변모
박재삼은 1955년 등단하여 줄곧 전통적인 서정시를 써 왔다. 그의 시는 50년대 모더니즘의 대립적인 위치에 서서 우리 전통서정의 계보를 이어 간다는 의미 뿐 아니라 전래의 감수성을 회복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산만한 시대적 조류를 더욱 냉정히 바라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관심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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