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개론] 나의 학창 시절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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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대하여
내게 있어 학창시절은 그다지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꽤나 보수적인 집안 환경 탓에 학교가 끝 난 후에는 곧바로 집으로 와야 했고, 가끔 어디 나갈 일이 있어도 거의 항상 5시쯤이 통금시간으로 정해져 있어 다른 친구들이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하고 밥을 먹으러 가도 잘 함께 어울리지 못했다. 만약 통금 시간 이후로도 집에 돌아오지 않을 때에는 오 분 간격으로 전화가 왔고, 집에 돌아와서는 심한 꾸중을 들었기에(그리고 외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아주 ‘건전한 이유: 서점에 간다거나’를 보고해야 했기에) 아예 애초부터 집 밖을 벗어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 같다. 부모님은 그것이 다 나를 위한 것이라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환경에서 사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에 비하면 나는 정말 편하게 지내는 것이라고 하셨지만 집과 학교 외에는 가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으니 귀에 못이 박히도록 그 말을 들어도 내게는 모두 잔소리요, 나를 더욱 감옥에 갇힌 듯한 느낌을 줄 뿐이었다. 오직 학교와 집만이 내게는 온 세상이었고,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한계였다. 따라서 내가 접할 수 있는 외부의 소식도 굉장히 제한적이었고, 학교와 집에서는 ‘공부 외의 다른 일‘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부모님이 생각하신 가장 이상적인 환경에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어서 빨리 이러한 숨 막히는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학창시절은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꿈과 포부를 키워야 하는 시기라는데 내게는 별다른 꿈이랄 것이 없었다. 학교에서의 선생님들도, 집에서의 부모님도 그저 학교시험과 모의고사에서 고득점을 받는 것에만 관심을 두셨지(그리고 오직 그것에만 신경 쓰라고 하셨다) 누구도 내가 진정 이뤄보고 싶은 ‘꿈’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으셨다. 따라서 나 또한 인생은 점수만 잘 받으면 성공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그 목표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직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수능 전 영역 1등급. 거기에 한 가지 더하자면, 부모님을 떠나고 싶다는 것, 다시 말 해 어떻게 해서든 ‘부산’을 떠나서 지금 내게 있어 학교와 집이 전부인 답답한 생활을 벗어나 더 큰 세상을 한 번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매일 똑같은 범위 내에서 똑같은 일상을 6년 동안 계속하다보니 어린 나이였지만 ‘인생에 대한 회의감’까지 들 지경이었다. 그렇게 한 때는 영원히 지날 것 같지 않던 시간이었지만 어느덧 나도 대한민국에서 최상위 계급이라는 ‘고3’이 되었고, 입시 원서를 쓰게 되었다.
대학도 지금까지처럼,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하듯 그저 공부만 하면 가는 곳인 줄 알았는데 막상 원서기간이 되고 나니 정말 처음으로 그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지난 세월동안 내가 무얼 했나- 또, 왜 선생님들도, 부모님도 나에게 말 해주지 않았나- 원망이 컸지만, 일단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서 접수기간은 다가왔고 결정은 내려야 하니 대강- 이름 괜찮고 과 괜찮은 곳으로(나의 기준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기준으로!) 점수 맞춰서 쓰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음 해에 오게 된 곳이 지금 공주대 영어교육과다.
일단 대학 신입생이 된 나에게 전공이나 대학 수준 등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처음으로 접해보는 모든 것- 책을 빌릴 수 있는 도서관, 거의 처음 직접 사 먹어 보는 분식에서부터 겨울이면 내리는 새하얀 함박눈까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너무너무 신기하고 경이로워 보일 따름이라, 신입생으로서의 1년은 지난 6년의 유배생활에 대한 보상으로 생각하고 지낸 것 같다. 사범대가 무얼 하는 곳인지, 전공 수업은 뭘 듣는지도 관심이 없었고 지금까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적당히 점수만 잘 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내게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1학년 2학기 말 즈음이었다. 이 때 부터 대학생 보조교사로 중학교에 멘토링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처음 들어보는 ‘선생님’이라는 호칭과, 선생님으로서 맡게 된 막중한 책임에 ‘정말 내가 4년 뒤에 졸업을 하고 나면 이 일을 업으로 삼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학창시절,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도 없었던 내게(오히려 학창시절동안 선생님들은 사회의 ’최고 베테랑 위선자들‘이라는 생각을 다져왔었기에, 커서 다른 건 다 괜찮아도 절대 선생님은 되지 말아야 겠다는 다짐을 했던 나였다.) 이 질문은 매우 심각한 불안감을 가져왔고, 정말 진지하게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내가 잘 하는 것은 무엇이고, 또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지금 나의 삶의 ’목표와 이유‘가 없고, 가까이로는 바로 졸업 후의 ’계획‘이 없다고 생각하자 지금 당장 더 늦기 전에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은데 무얼 해야 할지는 모르겠고- 너무나도 불안하고 신경이 쓰여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었다.
내가 내린 결정은- 지금 내가 해보고 싶은 것, 무엇이든 기회가 있는 것은 한 번 경험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처음 실행에 옮긴 것이 ’생물교육과 복수전공‘이었다. 고등학교 때 과학을 좋아해 한 때 과학도를 꿈꾸던 이과생 이었지만, 차마 편입이나 재수까지는 용기가 나질 않고- 지금이라도 ’생물교육과‘ 복수전공을 하면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공부도 할 수 있으니 나름 윈윈전략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일단 사범대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아이들을 가르쳐 보는 것도 손 놓고 있을 수 없을 것 같아 멘토링도 매 학기와 방학마다 꾸준히 신청했다. 평소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데 서툴고, 특히 학창시절동안 ’일상적인 대화‘를 해볼 기회도 많지 않았기에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힘들고- ’모든 것‘이 어려웠지만 꾸준히 실습을 하면서 크게 나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직 이때까지만 해도 진정한 ’사도의 길‘에 대한 목표는 생기지 않았지만, 덕분에 조금씩, 아주 조금씩- 진정한 선생님의 역할은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2학년 2학기 때 부터는 이명박 대통령이 영어교육발전을 위해 야심차게 내놓은 TaLK프로그램도 1기 장학생으로 참가하여 3학년 2학기때 까지- 1년 6개월동안 정말 밀도 있게 ’교생실습‘을 하기도 했다.
이 모든 선생님역할을 해 보면서 얻게 된 것은 진정한 선생님은 어떠한 모습인지,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굉장히 소심하고 모험을 두려워하는 성격이었던 나로서는 주위에 함께 동참해 줄 친구도 없고, ‘선례’도 없어서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선택들이었지만 그만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배우는 것이 많았던 경험이 된 것 같다. 가장 우선적으로는 실제 학교에서 아이들을 직접 가르쳐보고, 또한 열정이 넘치는 현직 선생님들을 많이 만나면서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학교교육이 진짜 교육의 전부가 아님을, 선생님이라는 것에 사명감을 가지고 임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알게 된 것이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시험성적보다 소중한 수많은 가치들을 알지 못한 채 아름다운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을 아이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나부터라도 좋은 선생님이 되어 어린 학생들의 어쩌면 한평생을 결정할 수도 있을 중요한 시기를 알차게 보낼 수 있게 도와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영어교육과 관련하여 내가 부담 없이 즐겁게 영어를 공부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교수매체나 교과서, 커리큘럼 등을 개발하고, 특히 사교육에의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공교육에서의 영어교육 발전에 힘써보고 싶다.
이러한 나의 꿈은 지금 졸업 전까지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때로는 지치고 어려운 공부이지만 마음이 해이해질 때 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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