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움을 가슴에 담고 간 여인 신사임당 신사임당 생애 신사임당 출생 신사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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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움을 가슴에 담고 간 여인 - 신사임당』
1. 들어가는 말
어린 시절 읽었던 위인전에서의 신사임당의 모습은 높은 덕과 인격을 쌓은 어진 부인으로 남편에게는 항상 올바른 길을 가도록 내조하였으며, 또 훌륭한 어머니로서 7남매를 모두 훌륭하게 키웠고, 시부모와 친정어머니를 잘 모신 효녀로 우리나라 여성의 모범이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여성상이라 함은 단연코 신사임당이라 말을 해도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사임당이 더욱 높게 평가되고 있는 것은 그의 효성과 높은 덕, 그리고 인격에 어우러진 예술적문학적 재질이 뛰어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여류 예술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신사임당은 완전한 예술인으로서의 생활 속에서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을 성숙시켰으며 그런 면에서 볼 때 그녀는 조선왕조가 요구하는 유교적 여성상에 만족하지 않고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스스로 개척한 여성이라는 점에서 더욱 높이 평가될 수 있는 것이다.
2. 신사임당의 생애
(1). 출생과 성장
아버지는 명화(命和)이며, 어머니는 용인이씨(龍仁李氏)로 사온(思溫)의 딸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학자이며 경세가인 이이(李珥)의 어머니이다. 사임당은 당호이며, 그밖에 시임당(媤任堂)임사재(妊思齋)라고도 하였다. 당호의 뜻은 중국 고대 주나라의 문왕의 어머니인 태임(太任)을 본받는다는 것으로서, 태임을 최고의 여성상으로 꼽았음을 알 수 있다. 외가인 강릉 북평촌(北坪村)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 명화는 사임당이 13세 때인 1516년(중종 11)에 진사가 되었으나 벼슬에는 나가지 않았다. 기묘명현(己卯名賢)의 한 사람이었으나 1519년의 기묘사화의 참화는 면하였다. 외할아버지 사온이 어머니를 아들잡이로 여겨 출가 후에도 계속 친정에 머물러 살도록 하였으므로, 사임당도 외가에서 생활하면서 어머니에게 여범(女範)과 더불어 학문을 배워 부덕(婦德)과 교양을 갖춘 현부로 자라났다.
서울에서 주로 생활하는 아버지와는 16년 간 떨어져 살았고, 그가 가끔 강릉에 들를 때만 만날 수 있었다.
(2). 출가후의 생활
19세에 덕수이씨 (德水李氏) 원수(元秀)와 결혼하였다. 사임당은 그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아들 없는 친정의 아들잡이였으므로 남편의 동의를 얻어 시집에 가지 않고 친정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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