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어학 전봉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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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들어가며
전봉건의 생애
전봉건은 1928년 평안남도 안주군 동면 명확리에서 전정순(全亭淳)과 최성준(崔成俊)의 일곱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식민지 관리였기 때문에 도내의 여러 군을 전전하며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낸 그는, 잦은 이동으로 친구 사귀기가 어려워 내성적인 아이로 자라게 된다. 전봉건의 이러한 성격은 그를 혼자만의 꿈과 상상 속으로 유도하였으며, 문학에 대한 눈을 뜨게 하였다 전봉건에게 결정적인 문학적 충격과 영향을 준 시인은 릴케와 보들레르라고 한다. 릴케의 여성적 측면에 강한 인상을 받았으며, 보들레르의 〈여행에의 초대〉를 감명 깊게 읽은 그는 릴케와 보들레르의 여성주의적 풍요로운 삶과 어둠보다는 밝음, 그리고 현실적 상황보다는 환상의 세계에 대한 시적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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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건의 문학에 대한 관심은 당시 심상소학교를 졸업할 무렵 소년소설 등을 탐독하다 중학교 입학 시험에 낙방하기도 하였다는 그의 이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평앙 숭인 중학교에 입학 한 전봉건은 그의 형 전봉래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심하게 앓아서 학교를 쉬지 않을 수 없었던 중학교 졸업반 때이다. 그때 쓰여진 작품으로 발표된 것이 〈노래〉이다.
1945년 중학교를 졸업하고 1946년 38선을 넘어 월남한 전봉건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준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잠시 경기도 여주군 갈매 국민학교에서 준교사로 지낸다.
1950년 《문예(文藝)》지에 첫작품 〈원(願)〉과 〈사월(四月)〉 두 작품이 서정주의 추천을 받아 등단하고, 〈축도(祝禱)〉는 김영랑의 추천으로 발표한다. 625 발발로 12월에 징집영장을 받고 그의 시 〈0157584〉의 제목 그대로 0157584의 군번으로 징집되어 군에 입대한다. 하지만 이듬해 이른 봄 중동부 전선에서 부상을 입어 제대한다.
이후 대구 피난민 수용소에서 김종삼, 이철범, 최계락 등과 사귀게 된다. 그 무렵 부산 스타 다방에서 형 전봉래가 자살한다. 1952년 대구 수용소 판자집에서 가족을 만나 후송 된 전봉건은 53년 서울에 올라와 55년 출판사 희망사에 취직한다. 이 무렵 〈시의 비평에 대하여〉, 〈음악의 의미〉, 〈현대시의 의미〉 등을 발표하는 등 활발히 문학활동을 전개한다. 그러던 중 1957년 한국시인협회 창립에 참여하고 그 해 10월 《현대시》 창간호 편집실무를 담당한다. 전봉건은 한국시인협회의 일을 하면서 보다 본격적인 시작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김광림김종삼과 더불어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라는 삼인시집(三人詩集)을 발간하는데 김광림이 〈전쟁과〉를 김종삼이 〈음악과〉를 전봉건이 〈희망과〉를 각각 소시집 제목으로 나누어 전쟁 후 폐허가 된 현실 속에서 희망을 노래한다. 1959년에는 제 3회 한국시인협회상을 받았다.
1961년 시론집 《시를 찾아서》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시론적 근거를 마련하였으며, 64년 《문학춘추》지가 창간되면서 편집 책임을 맡게 되는데 이때 박재삼과 함께 일하기도 했다. 이 무렵 라디오 방송을 위한 시극(詩劇)을 써 볼 계기가 생겨 KBS를 비롯하여 동아방송국의 의뢰에 의해 〈역(驛)〉, 〈비〉, 〈꽃소라〉를 쓰게 된다. 이것은 방송 된 뒤 《세대》에 활자화되기도 하였으며 《현대문학》엔 〈모래와 산소(酸素)〉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1965년 2월 전봉건은 김구용의 시를 해설하게 되는데 김수영이 그의 글을 공격하면서 두 시인은 공개적으로 《세대》지에서 논쟁을 벌인다. 그의 논쟁의 주제는 기교였다. 69년 《현대시학》지가 창간되면서 주간직을 맡게 되었으며, 70년대에 이르러 그의 의욕적인 창작태도는 내면 의식 속으로 침잠되어 말에 대한 탐구와 고향상실에 대한 끊임없는 그리움으로 이어져 나타난다. 1974년 시집 《피리》와 1980년 시선집 《꿈 속의 뼈》, 1982년 시집 《북의 고향》 모두 분단으로 인한 상실의식과 실향의식의 결과물이라 하겠다. 전봉건은 80년대 후반에 들어 다시 625 체험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시적 형상화한다. 그리고 1988년 6월 13일 지병인 당뇨로 고생하다 타계하였다.
전봉건의 1950년대 시연구-전쟁체험의 시적 개입
전봉건 시의 원체험을 이루는 것은 물론 6.25이다. 그에게 전쟁은 끔직한 경험이었다.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조건들의 완벽한 절멸, 그 안에서 시인이 체험한 것은 인륜성과 짐승스러움의 경계이다. 이 원체험은 너무도 강력한 것이어서 전봉건의 일생의 시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상처로 자리한다. 그의 6.25 체험의 편린들을 1980년대에 쓰여진 작품에서조차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일생을 두고 6.25 체험과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런 전쟁체험은 분단이라는 민족사적 불행의 핵심에 관한 체험이다. 여기에서 전봉건의 시는 개인사적 원체험에 대한 미학적 변용의 의미를 넘어서 민족적 질곡에 대한 시적 대응이라는 역사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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