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인들의 행동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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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르네상스인들의 행동변화-
1930년대 로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는 16세기 이후에 초점을 맞추어 주제를 역사연구의 대상으로 올려놓았다. 절대주의 하 궁정에서의 배타적인 궁정예법이보다 사회적인 의사소통의 행동양식인 매너(manners)로 전파되는 과정을 통해 문명화를 추적하는 <문명화 과정: 매너의 역사(The Civilizing Process: The History of Manners>가 그것이다. 이 연구는 1970년대에 들어서서 문화사가들로 부터 본격적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엘리아스는 에라스무스(Erasmus)의 저작을 독특한 예절 개념과 성격의 출발점으로 보는 시각을 갖고, 16세기는 예법을 통해 사회관계를 통제하려는 강력한 노력이 일어난 때였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이런 변화를 초래한 에라스무스의 저작이란 1530년에 초판된 <소년들의 예절론(De civilitate morum puerilium)>으로, 예절의 개념을 새로 정립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후 3세기동안의 예법서의 성격 자체를 세운것이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16세기를 새로운 매너의 탄생기로 규정하는 엘리아스의 연구는 문명화과정의 한 메커니즘인 예법의 보급에 따른 통제와 예법의 보편화를 둘러싼 행동양식을 통하여 사회적 변화를 추적하는 업적을 이루었다. 따라서, 이들의 연구는 육체에 가해지는 다양한 규범 자체 가 갖는 의미와는 별도로, 육체에 대한 인식이 어떠하였고, 이러한 예법이 어떤 경로로 육체에 침투하게 되었는지를 다루고 있지 않다는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소위 문명화하는 과정에서 매너라는 것을 행하는 육체 자체에 대한 인식이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과연 어떻게 변화하였는가 하는 문제 또한 다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에라스무스 저술이 호응 받게된 행동 변화의 움직임은 16세기 이전부터 축적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엘리아스는 이 시기를 사회집단의 재편기로서, 중세사회의 위계체계가 느슨해지고 난 후 근대사회의 위계체계가 수립되기 이전까지의 풍요로운 과도기로 지칭한다. 그러나, 엘리아스가 르네상스라고 부른 이 시기는 최근 학자들이 르네상스의 시대라고 구별하여 부르는 시기로 보는 것이 타당한데, 이는 중세적인 특성들과의 긴장을 포함하여 르네상스라는 문화적 움직임을 목격할 수 있는 시기의 일부분을 지칭하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는 전환기에 있었다. 이 시기는 중세 카톨릭의 통합성이 무너지고, 기사계급의 권위가 흔들리며 중세사회의 단단한 위계질서가 흔들리는 시기이다. 이 같은 변화는 지방분권적인 봉건적인 요소가 붕괴하는 과정이며, 동시에 중앙집권적 기구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엘리아스는 문명화 과정이라는 관점에서 이러한 변화의 한 중심에 국가의 사회적 발생과정을 두고 있으며, 폭력의 독점화 자체가 사회적 요구와 행동양식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고 본다. 그러나, 주목하여야 하는 부분은 중세의 견고한 신분과 제한적인 중세의 인간관계가 이 변화의 시기에 사회적 유동성을 획득하고, 인간관계의 범위 자체가 확대되어갔다는 점이다. 중세라는 사회에서 개인의 위치는 공동체나 신분제와 같은, 고도로 섬세하게 조직된 경계(boundaries)에 의해 구분 지워지고,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14세기 이후 이러한 사회의 고정성이 무너지기 시작하여, 이미 16세기에 이르면, 기존의 사회적 유대는 전적으로 느슨해져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었다. 사회적 배경이 다른 개인들이 함께 뒤섞였다. 집단적, 개인적 상승과 하강의 사회적 순환이 가속화되었다. 이런 변화는 개인이 세상과의 관계, 혹은 자신과의 관계를 보는 관점에 있어서의 혼란을 초래하였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맺고 있는 제반 관계들에 대한 규정 자체의 변모를 불러오게 된다. 이는 또한 사회적 관계를 매개하고 규정하는 언어에 있어서도 변화를 불러오는데, 한 예로 이제 귀족(nobility)과 같은 신분적 개념이 과거에 비하여 훨씬 더 융통성 있는 개념으로 전환되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에라스무스의 저술의 성공을 가져오게 한 사회적 변화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개인이 경험하는 사회적 관계가 양적으로 엄청나게 팽창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과거 독립적으로 운용되었던 사회적 단위들이 이제 거대한 사회구조 안에 마구 뒤섞이게 되고,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새로운 틀의 의사소통양식을 요구하게 된다. 여기서 사회적 관계의 증폭에 따른 인간의 사회적 행동양식의 변화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새로이 형성되는 사회적 틀에 부합되는 사회적 개인이 중요해 갔다는 점이다. 여기서 사회적 개인이란 과거 고정적인 사회적 위치가 그 절대성을 상실해 감에 따라 그 위치에 있어 유동성을 띨 수 있게 된 것으로, 얼마나 사회적 적용성이 있는가 하는 것이 세속적 성공의 관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문명화 과정에 관하여
서양 중세사회 사람들의 행동양식은 현재 서양인들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사람들은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고, 맨손으로 코를 풀었다. 심지어 식탁보에 코를 풀기도 했다. 다 뜯어먹은 고기의 뼈는 공동 접시에 도로 갖다 놓았다. 만약 오늘날 어떤 사람이 식탁에서 그와 같은 행동을 한다면,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식탁에서 일어나 나가버릴 것이다. 이런 사람과 같이 식사를 한다는 것은 너무도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16세기나 17세기의 예법서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혹은 계단이나 복도, 심지어 궁정의 방에서 소변을 보는 사람들에 대해 주의를 주는 구절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상류층에서조차 용변에 대한 행위규범이 약했다는 것을 나타내준다. 이와 같은 일련의 예들은 근대로 올수록 사람들이 수치심과 불쾌감을 느끼는 한계점이 점점 낮아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엘리아스는 우리에게 이러한 행동양식과 정서의 차이가 중세시대 사람들이 결코 야만적 혹은 원시적이라서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즉, 덜 문명화된 것은 나쁜 것이며 문명화된 것은 좋다라는 가치판단은 전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중세의 행동양식은 그 사회의 특정한 사회경제적 구조와 기술 수준에 상응하며, 그 당시 사람들의 욕구에 부합된 것이었다. 손으로 코를 풀거나 음식을 집어먹는 것은 포크나 손수건이 귀하기 때문이며, 또 포크를 사용하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아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16세기가 되어 시빌리트(civilit)라는 행위규범이 도입되면서 차츰 행동양식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고, 르네상스의 예법서 에서는 이전의 행동양식을 미개한것으로 규정하기에 이른다. 당시 이러한 예법서 들이 상류층을 주로 겨냥한 것이었기 때문에, 문명화된 행동양식은 상류층이 자신들의 명예와 품위를 지키고 다른 계층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이들은 전보다 훨씬 더 많이 상대방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비문명적인 행위에 대해 상호간 압력을 행사한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이 나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점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고, 스스로의 행동을 관찰하고 통제하는 자기통제의 압박 또한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타인에 의한 외부적 통제에서 스스로에 대한 내면적 통제로 행동에 대한 규제양식 또한 변화하게 된다. 초기에 궁정사회나 상류층에 적용되던 행위규범들은 차츰 시민계급의 세력이 강화되면서 이들에게 확산되기에 이르고, 근대 사회로 발전하면서 모든 계층을 망라하는 일반적인 행위규범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간의 정서구조와 인성구조에 변화를 일으키는 기제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자발적인 욕구를 억제하고 서로간 행위에 대한 감시를 하고, 자기 스스로를 통제하게 되는 것은 왜일까? 엘리아스는 이러한 행동양식의 변화를 인간의 이성이나 합리성에 근거한 것으로 설명하는 데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즉, 문명화된 행동양식의 등장은 이를 필요로 하는 사회적 문명화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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