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열전에 나타난 영웅사관의 한계 - 온고지신의 자세에서 본 삼국사기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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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열전’에 나타난 영웅사관의 한계
- 온고지신의 자세에서 본 ‘삼국사기 열전’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옛 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라는 뜻의 이 성어는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학창시절 역사 선생님들께서 역사공부를 하는 이유 중 가장 많이 말씀하시고, 강조하시는 부분이다. 어린 시절부터 역사를 정말 좋았고, 이와 관련된 많은 책도 읽었다.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들은 대부분 역사책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지나친 편독을 걱정한 나머지 문학이나 과학 등, 내가 관심을 적게 두는 분야의 책을 일부러 빌려오실 정도였다. 현재 역사는 나의 유용한 지적 자산이다. 대입수능시험에서 역사군의 탐구 과목을 선택하여 좋은 점수를 획득했다. 한국사 능력시험에도 응시해 자격증을 획득했다. 기타 여러 가지 방면에서 역사 지식은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지적 범주를 넘어서 온고지신의 자세를 살아가는지에 대하여는 아직 의문부호를 남긴다. 오히려 급변하는 21세기 정보화 사회에서 역사는 고리타분한 것, 쓸 데 없는 지식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도 된다. 이번 국문학개설 에세이 숙제를 통해 삼국사기 열전에 반영된 역사의식을 살펴보고,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열전(列傳). 기전체 역사서술 방식에서 제왕도 제후도 아닌 개인에 대한 서술이다. 기전체라 함은 왕가의 이야기를 다룬 ‘본기’의 기와 ‘열전’의 전을 합쳐서 부르는 말로 사마천의 사기가 그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손병목,『동양고전강의』, 한겨레출판, 2006, p.23.
후세에 전하여 교훈으로 삼고자 하는 충신, 열녀와 효녀 등은 물론이고 그 모습을 경계로 하고자 하는 반역자, 역신 등의 이야기도 서술한다. 일반 민중들의 삶이다.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마천은 사기를 편찬 하면서 이 부분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인다. 사기의 130편 중 70편이 열전에 해당한다. 이에 반해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편찬하면서 열전부분을 총 50권 중 10권으로 서술하였다. 본기가 28권이고 신라본기만 해도 12권인 것에 비하면 그 비중이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마천과 김부식. 두 사람은 온고지신의 자세로 그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하는 사서 편찬이라는 대업을 이루었다. 사마천은 죽는 것보다도 더 치욕스러운 궁형이라는 형별에 의해 환관이 되었다. 사기편찬을 필생의 과업으로 생각하고, 이릉의 화를 겪으면서까지 혼신의 힘을 다했던 역사가로서의 사명. 그는 ‘비록 어질고 어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시세에 부합하지 않은 까닭에 캄캄한 동굴 속에 파묻혀 영원히 이름이 잊혀진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내가 남기지 않으면 영원히 잊혀져버릴 사람들을 역사에 남기려 합니다.’라고 말한다. 손병목,『동양고전강의』, 한겨레출판, 2006, p.26.
김부식의 자세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삼국사기의 머리말에 해당되는 ‘진삼국사기표’에서 김부식은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역사가 오래되어 기록할 것이 많으나 (중략), 마땅히 훌륭한 역사서를 완성하여 이를 만세에 남기어 해와 별처럼 환하게 하고 싶다.’
두 사람은 역사적 사실을 후대에 알려 이를 통해 교훈을 얻기를 바라고 있다. 이러한 온고지신의 자세와 역사가로서의 사명감은 김부식과 사마천의 공통점이다. 이 부분에서 두 사람에 대한 존경심과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삼국사를 서술한 최고의 정사(正史)인 삼국사기도 이번에 ‘열전’부분을 읽으면서 전에 없던 아쉬움과 부족함을 느낄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 입시공부를 하며 읽어볼 때는 잘 느낄 수 없었다. 위인전을 읽듯, 할머니께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쉽게 쉽게만 읽어 넘겼다. 불과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것 이지만 그 사이에 스무 살이 넘은 성인이 되었고, 더 이상 입시를 걱정하지 않는 대학생이 되었다. 책이 편하게 읽어졌다. 그리고 그 시간에 생각과 가치관이 자라고 바뀌었나 보다. 배경지식도 더욱 늘었다. 그래서 9월 독서 시험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에세이 작성을 위해 다시 읽어본 ‘삼국사기 열전’은 전혀 새로운 책으로 다가왔다. 어린왕자라는 책을 읽어 보면 10대, 20대, 30대 때 느끼는 감정과 생각이 매번 다르다고 한 평론이 생각났다.
위의 두 역사가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사서를 편찬하였다. 사마천은 벼슬을 잃고 형벌에 처해져 환관이 되었다. 얼굴을 제대로 들기 힘들 정도의 치욕적인 나날을 보낸다. 그러한 상황에서 자료를 모으고 죽간에 한자, 한자를 새겨나간 것이다. 원래 역사 편찬은 국가의 고유한 권한이다. 재야 사학자가 많고, 책 편찬이 비교적 자유로운 오늘날에도 역사의 기준은 국사편찬위원회가 서술한 책이 근간이다. 역설적이게도 나라에 예속되지 않은 사마천의 상황은 자유자재로 붓을 휘둘러 거리낌 없이 역사를 편찬할 수 있는 상황을 제공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사마천이 민중사관, 미시사를 근간으로 ‘열전’을 서술하고, 일반 백성을 옹호하고 평가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반면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할 당시 그는 문하시중이라는 최고의 벼슬을 하고 있었다. 사서를 쓰게 된 이유도 왕의 명령 때문이었다. 그는 영웅사관, 거시사의 관점에서 삼국사기를 편찬했고 이러한 그의 사관은 민중을 서술하고 대변해야 할 ‘열전’에도 깊게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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