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근대사]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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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2.18 / 2019.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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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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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본주의 발전
1)빈회의(1814- 1815) 1.프랑스, 스페인, 나폴리, 포르투갈 등에는 혁명전의 왕실로 되돌아간다.
2.오스트리아는 네덜란드를 포기하는 대신 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와 베네치아를 얻는다.
3.프러시아는 작센의 북부와 라인지방을 얻고, 러시아는 폴란드의 대부분을 얻어 폴란드왕국을 세우고 러시아황제가 그 왕위를 겸한다.
4.영국은 마르타섬, 케이프식민지, 세이론 등을 얻는다.
5.네덜란드는 오스트리아領 네덜란드를 얻고(네덜란드왕국이 성립됨) 스웨덴은 덴마크로부터 노르웨이를 얻는다.
6.스위스는 영세중립국이 된다.
7.독일은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등 35개국과 4개의 자유도시를 얻는다(독일 연방 구성).
8.프랑스와 인접국가와의 국경선은 1792년 즉 혁명전쟁 시작 전의 상태로 고정된다.
: ‘신성한 전통성 원리’의 지배 정신에 근간한 유럽의 구질서 회복
가.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가 주도
나.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 복귀(루이 18세)
다. 4국 동맹(오스트리아, 영국, 러시아, 프로이센)
⇒평가 : 빈체제는 그 자체 내로서 ‘유럽의 協調’와 같은 국제조약적 성격을 강조하는 것보 다 4국 동맹 자체내의 모순이나 혁명의 불길 등으로 보아 역사발전을 저지하고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려는 보수, 복구적인 성격이 강하다.
※메테르니히와 보수주의
→ 철저한 보수주의자로서 그가 세운 정통주의는 단순히 구왕조의 복위, 영토문제에 그치는 것 이 아니라, 구질서의 회복과 유지 즉 프랑스 혁명에서 싹튼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를 억압하려 는 것.
2)빈체제에 대한 반항
가. 1815년 독일 대학생들이 학생조합 (부르센샤프트) 결성
나. 1820년 에스파냐, 포르투갈, 시칠리아에서 자유주의 혁명
① 에스파냐 : 보통선거, 제한군주제 규정. 1812년 헌법채택 (포르투갈 역시 유사)
② 나폴리 : 카르보나리(Carbonari 숯굽는 사람)의 비밀결사
→ 메테르니히의 4국동맹을 이용한 무력간섭, 에스파냐의 혁명-프랑스군 진압(1823)
나폴리의 혁명정부-오스트리아군(1821)
다. 중남미의 에스파냐 식민지의 독립운동
① 사회적 배경 : 본국정부의 지나친 착취와 가혹한 식민지 정책, 계몽사상과 미국의 독립, 프랑스혁명, 나폴레옹 시대의 독립운동
② 시몬 볼리바르(Simon Bolivar 1783-1830)의 의한 독립쟁취
: 콜롬비아 공화국(1819) 볼리비아 공화국 (1825)...
③ 영국의 원조, 미국의 먼로주의
: 영국- 새로운 시장 개척, 미국- 유럽국가의 아메리카대륙 간섭 배제
※ 카르보나리 두산동아백과사전
: 19세기 초 남이탈리아에서 프랑스의 지배에 항거하여 조직되었으며, 빈회의 후의 부르봉가(家)의 전제정치에 항거하여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고, 남이탈리아에서 북이탈리아로 세력을 확대하였다. 전제정치에 대한 항거라는 주장 외에는, 정치적 ·사회적 강령은 막연하였다. 1820년 나폴리 혁명, 1821년 피에몬테 혁명, 1831년 중부 이탈리아의 혁명에서 지도적 역할을 했으나, 혁명운동이 탄압되어 와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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