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쿠스와 지동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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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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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쿠스는 어떤 사람인가?
지동설을 발표할 당시의 시대상황
지동설
지동설 발표후의 사회적 과학적 변화
-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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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쿠스는 어떤 사람인가?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1473년 2월 19일 폴란드 땅인 토룬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니콜라스 코페르닌은 상인이었고 어머니 바르바라 바챈로데는 교양 있고 잘사는 집안 태생이었다. 열 살 때 아버지를 여윈 뒤로 그는 외삼촌 손에서 자랐다. 외삼촌은 학자이자 성직자로 1479년에 에르미란트의 주교가 된 사람이었다. 니콜라우스는 전형적인 교육을 받았다. 1491년 당시 자연 철학의 중심지로 이름난 크라코프 대학에 다니기 시작했다. 1496년에는 볼로나 대학으로 옮겨 그리스어, 수학, 철학, 천문학 등을 계속 공부했다. 이 시절 그는 도메니코 마리아 다 노바라의 영향을 받는다. 다 노바라는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를 비관한 초기 인물로 천문학 교수였다. 두 사람은 1497년 3월 9일 함께 월식을 관찰했다. 1501년에 코페르니쿠스는 파도바 대학에서 공부했고, 1503년 페라다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파도바로 돌아와 의학부 과정을 밟았다.
1506년 무렵 코페르니쿠스는 공부를 마치고 언어학자이자 수학자, 의사로서 폴란드로 돌아와 죽기까지 그곳에 머문다. 해외에서 공부하는 학생 신분이었지만 1497년 성당 참사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몇 년 뒤 외삼촌의 의학 고문 일을 맡았고, 외삼촌이 죽자 동프로이센에 새로이 세워진 프라우엔부르크 대성당의 참사 회원 일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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