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 묘지명(墓誌銘)의 변화와 문학의 관계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1.12.05 / 2019.12.24
  • 16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1,4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목차
목 차

1. 묘지명(墓誌銘)에 대하여
1.1. 묘지명이란 무엇인가?
1.2. 묘지명의 구성 부분
1.3. 묘지명의 종류
1.4. 묘지명의 기원
1.5. 묘지명의 특징
1.6. 묘지는 어떻게 만드는가?

2. 전형적인 묘지명
2.1. 전형적 남성 묘지명
2.2. 전형적 여성 묘지명

3. 묘지명의 변화
3.1. 박지원의 <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백자증정부인박씨묘지명)>
3.2. 조선 후기의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

4. 결론
본문내용
「부인이씨묘표」에서는 가난 속에서도 50여년을 원망하지 않고 산 부인의 행적이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으며, 「자부이씨묘표」에서는 ‘恭謙’(공겸) ‘儉勤’(검근) 등과 같은 말을 통해 여성의 성품과 행실을 요약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강혜선, 앞의 논문.
이러한 묘지명에서 드러나는 여성의 삶은, 남성 사대부의 묘지명에서 모범적인 삶의 모습이 기술된 것처럼, 한결같이 유교적 가치에 따라 살아가는 이상적인 여성상만을 충실하게 재연하고 있다. 성천적인 성품과 후천적인 학습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안팎으로 모두 아름다운 경지를 이른 모습이 바로 당시 여성에게 요구된 전형적인 이상이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전형적인 여성의 묘지명은 남성의 묘지명처럼 획일화된 형식과 내용만을 서술하고 있었다.

3. 묘지명의 변화

3.1. 박지원의 <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백자증정부인박씨묘지명)>

<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백자증정부인박씨묘지명)>은 연암 박지원이 누님을 위해 쓴 묘지명으로, 연암 스스로 이를 득의의 작품으로 여겼다고 전해진다. 세 차례의 개작을 거치면서 작품의 내용에 변화가 있었고, 수록되어있는 책에 따라 제목이 다르게 표기되기도 하였다. 먼저, 그 중 가장 많이 통용되는 본으로 알려진 ‘박영철본’을 다섯 단락으로 제시해본다.

유인의 이름은 아무개이고, 반남 박씨이다. 그 동생 지원이 묘지명을 쓴다.
孺人諱某 潘南朴氏 其弟趾源仲美誌之曰。

유인은 열여섯에 덕수 이씨 택모 백규에게 시집가서 딸 하나 아들 둘을 두었다. 신묘년(1771) 9월 1일에 세상을 뜨니 나이가 마흔셋이다. 지아비의 선산이 鵶谷인지라, 장차 그곳 庚坐의 묏자리에 장사지내려 한다. 백규가 어진 아내를 잃고 나서 가난하여 살 길이 막막하여, 어린 자식들과 계집종을 이끌고 솥과 그릇, 옷상자 따위를 챙겨 강물에 배를 띄워 산골로 들어가려고 상여와 더불어 떠나니, 내가 새벽에 두포에서 그를 전송하고 통곡하다 돌아왔다.
孺人 十六歸德水李宅模伯揆 有一女二男 辛卯九月一日歿 得年四十三 夫之先山曰鵶谷 將葬于庚坐之兆 伯揆旣喪其賢室 貧無以爲生 挈其穉弱婢指十 鼎鎗箱簏 浮江入峽 與喪俱發 仲美曉送之斗浦舟中 慟哭而返。

아아, 누님이 시집가던 날 새벽 화장하던 것이 어제 일만 같구나. 나는 그때 갓 여덟 살이었는데 말처럼 발랑 드러누워 발버둥을 치며 새 신랑의 말투를 흉내 내어 말을 더듬거리며 점잔을 빼니, 누님은 그만 부끄러워 빗을 떨어뜨리어 내 이마에 맞았다. 나는 성을 내고 울면
참고문헌
<참고문헌>

강혜선, 「조선후기 여성 묘주 묘지명의 문학성에 대한 연구」, 『한국한문학연구』제30집,
2002.
김혈조, 「연암 박지원의 「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연구」, 『한문학보』22권, 2010.
심경호, 『내면기행』, 이가서, 2009.
안대회, 『고전산문산책』, 휴머니스트, 2008
______, 「조선후기 자찬묘지명 연구」, 『한국한문학연구』, 2003.
진필상, 『한문문체론』, 이회문화사, 1995.
정형지 · 김경미 역주, 『17세기 여성생활사 자료집 1』, 서울시: 보고사, 2006.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국문학] 한문학의 범위와 성격
  • 문학은 이중구조 속에서 발달해 왔다. 즉, 선비층은 한문을 구사했고 서민층은 한글을 구사했던 것이다. 그런데 민족문학이라 한다면 양자를 다 지칭해야 하고, 연구자들도 양자를 균형 있게 살펴야 함은 물론이다. 만일 한문학 유산을 우리 문자로 기술되지 않았으니 우리 문학이 아니라는 형식논리에 집착하여 특수한 역사상황을 무시한 채 국문학의 영역에서 배제하려 한다면, 결과적으로 국문학의 기형화를 초래하여 우리 문학은 그 양과 질에서 빈

  • [국문학] 고전 수필의 이해와 현대적 양상
  • 국문학 연구에서 소외된 장르였다. 그 배경에는 서구적 문학 장르론과 수필의 자의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전통적 문학관습에 대한 이해부족이 내재해있다. △ 방향그동안의 연구에 대해서 진지하게 반성하고, 우리의 전통적인 문학관습에 대한 긍정적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 고전작품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수필의 정통성을 확립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체계적인 수필문학 연구를 이루어 고수필이 우리 문학사에서 정당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도

  • [고전문학] 고전수필
  • 문학으로서의 수필적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따라서 고수필은 “글쓰는 이의 삶을 중심으로 한 신변잡기에서부터 우주에 대한 思辨에 이르는 광범위한 隨想을 假飾이 없는 성실한 자세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비교적 짤막한 분량의 갑오경장 이전의 산문문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김광순 외 15人 공저, 국문학 개론, 새문사, 2003, pp. 377~379.하지만 이러한 정의는 단순히 서구문학의 개념과 어우러진 현대수필의 개념과 정반대인 이분법적인 정의라고

  • 천주교의 수용과 발전에 관한 연구
  • 변화를 가져온 사회사적 사건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그의 연구는 구조적으로 교안을 파악함으로써 교안의 의미는 물론 그 연구 작업 자체를 일보 진전시켜 놓았으며, 이와 연관지어 향촌 사회의 분화까지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이 밖에도 개화기의 천주교회사 연구에서는 영남의 유학자 李沂와 경상도 선교사 로베르(Robert, 金保錄)와의 논쟁 문제(38, 90, 213), 개신교와 천주교의 관계(12, 119), 西學과 東學과의 관계도 연구되었다. 이

  • 동서양고전의이해2공통형) 박지원 연암집0k
  • 국문학 박사, 299.박지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 연암집(燕巖集), 한국학중앙연구원(1998년)-「정조의 문예사상과 규장각」, 연암집 문체책(文體策), 정옥자 저, 효형출판(2001년, 129~144p)-「연암 박지원의 경제사상」(송주영,『아세아연구』 10∼11,고려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소,1967)-「북학파의 실학사상-홍대용의 과학정신과 박지원의 실용정신-」(금장태,『정신문화』 10,한국정신문화연구원,1981)-「북학사상의 형성과 그 성격-담헌 홍대용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 최근 판매 자료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