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예술] 한국의 가면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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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며

1. 가면극의 기원

2. 가면극의 연혁

3. 가면극의 공연방식

4. 가면극 속의 탈

5. 가면극 속의 춤

6. 가면극의 종류와 내용

7. 가면극에 담긴 의미

8. 현대의 가면극

나가며 - 가면극 계승의 의의

본문내용

2. 가면극의 연혁

가면극이라 하면 탈놀이(가면을 쓰고 연희를 행하는 가면극의 일종)와 함께 산대놀이, 오광대, 야유, 사자놀이, 별신굿 놀이 등이 이에 해당된다. 우리나라의 가면극은 문헌상으로는 삼국사기에 전하는 최치원의 향악잡영(鄕樂雜詠) 5수에 나타나 있는 오기(五伎)(金丸·月顚·大面·束毒· 猊)가 처음이다. 5기, 즉 월전·대면·금환·속독·산예에서는 확실히 가면을 사용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다만 유감인 것은 그 시가 너무나 간단하여 내용이 자세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가면극으로서는 이것이 한국에 있어서의 최초의 기록인 셈이다.
이 5기 이전에도 신라에는 분명하지 않으나 극적 요소를 다분히 지니고 있는 무검무(無劍 )·처용무(處龍舞)·無 舞 등 가면희가 존재하였으므로 이미 신라시대의 가면극은 상당히 발달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와 함께 고구려의 무악(舞樂), 백제의 기악(伎樂)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륙 전래의 산악백희(散樂百戱_가 향악화(鄕樂化)되었다. 이는 고려의 산대잡극으로 이어지며, 조선전기에는 각종 가면희가 선행예능으로 참여하면서 조선 후기, 17세기 중엽에 이르러 현전하는 것과 같은 산대도감극 산대도감극은 조선 전기에 산대나례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했던 나례도감이나 산대도감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이러한 산대도감극 계통의 탈춤은 외국 사신을 맞을 때나 여타 국가적 행사에서 공연된 탈춤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의 드라마가 정립되었다. 이 산대도감극 계통의 놀이로서 현전하는 것에는 중부지방의 양주별산대놀이와 송파산대놀이, 서북지방의 봉산탈춤과 강령탈춤, 영남지방의 통영오광대와 고성오광대, 그리고 수영야유와 동래야유가 있다. 이 밖에 하회별신굿탈놀이와 북청사자놀음은 계통을 달리하는 탈놀이이다. 산대도감극과는 계통을 달리하는 마을굿으로 하회별신굿놀이, 강릉단오제의 관노탈놀이, 동해안별신굿의 탈놀음굿이 있다. 이를 서낭제 탈놀음이라고 일컫는데, 이러한 서낭제 탈놀음은 세시의례 연극의 성격을 지닌 향촌형의 탈놀이로 신앙적, 주술적인 면모가 강하다는 특징을 보인다. 그 밖에 함경도를 중심으로 해서에서는 사자놀음이 성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북청사자놀음이다.
산대도감극의 대중화는 1634년(인조 12) 산대극이 공의(公儀)로서 상연되는 일이 폐지되자, 산대도감에서 녹을 받던 연희자들이 해산하여 주로 민간의 도움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되면서, 점차 민중오락을 위한 민속극으로 정착하게 되면서 가능했다.

3. 가면극의 공연방식

1) 상연시기와 시간: 현전하는 탈놀이의 상연시기와 시간은 각 지방에 따라 다르나, 주로 음력 정월 대보름과 4월 8일, 5월 단오, 팔월 추석 등의 명절놀이로서 놀았고, 그 외에 나라의 경사 때나 기우제 행사로도 동원되어 연희되었다. 상연시간은 일반적으로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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