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사] 조선후기 남종화법의 유입과 발전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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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조선후기 남종화풍의 유행과 시대상황
3.남종화법의 발전양상
1) 초기-윤두서
2) 중기-심사정, 강세황
3) 후기-장승업, 허련
4. 맺음말
본문내용

3. 남종화법의 발전
1) 초기-윤두서

· 공재 윤두서 (恭齋 尹斗緖 1668~1715)

공재 윤두서는 1668년 태어난 조선 후기의 선비로서 1693년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조선시대 역사에서 가장 당쟁이 치열했던 숙종 때의 문인으로서 남인계열의 윤선도가 그의 증조부이다. 노론이 집권한 조선 후기 내내 당쟁의 여파로 여러 역모의 누명을 쓰곤 하였고, 자신의 집안에 닥친 여러 위기와 맞물려 당시의 세태에 큰 염증을 느껴 벼슬을 포기한 후 46세에 해남으로 낙향하여 살다가 48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윤두서는 우리에게 <자화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자 조선 후기 예술사의 새로운 시대를 연 인물이다. 당대의 사람들도 공재를 새로운 시대를 연 인물로 평가했고, 추사 김정희는 공재를 선구자적인 위치에서 옛 그림을 배우려고 하면 마땅히 공재재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내옥, 『인물로 보는 한국미술사 - 한국의 미술가』, (주) 사회평론, 2006, p.95
고 말했을 정도로 공재가 조선 후기 화단에 일으킨 변화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공재는 자신의 화풍에 남종화법을 수용함으로써 조선 후기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주역이기 때문이다.
한편 조선 후기인 1700년대 초에는 바깥의 대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사생정신이 광범위하게 대두된다. 이러한 경향은 앞 시대 회화의 특징인 지나친 관념성에 대한 반성으로 나타났는데, 조선 전기의 곽희파화풍과 절파화풍을 수용했던 화가들의 그림은 바깥의 대상을 과장하거나 거칠게 묘사함으로써 사실성이 결여되고 기묘한 경치만을 그려 기이함과 거짓으로 꾸며졌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러한 반성을 바탕으로 예전에는 소외되었던 호박, 가지 등 작은 물건과 일상 하층민들의 다양한 삶이 그림에 등장하고 회화 대상의 폭이 문인에서 상인, 농부, 공인, 하인, 어린이, 여인네 등으로 확대된다. 이러한 예술적 변화를 시도한 사람이 바로 공재라고 할 수 있다. 공재는 그림 그리기에 앞서 대상을 면밀히 관찰하고 털끝만큼도 그 참모습에 의심이 없다고 생각되어야 비로소 붓을 들었으며, 그려진 그림이 터럭 하나라도 참모습과 다르면 즉시 찢어 버렸다고 한다. 위의 책, p99.
이러한 공재의 사생정신은 그가 <자화상>에 그린 그의 수염과 날카로운 눈매, 또 눈의 주름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정물화로서 평가받는 그림인 <채과도>를 통해서도 그가 추구하던 새로운 사상을 엿 볼 수 있겠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당대에는 절파풍의 유행으로 필치가 거칠어서 정교하거나 치밀하지 못하다는 문제점을 느끼게 된다. 당시 중국에서는 문인화가 절파풍이 훼손한 중국 산수화의 극본정신을 회복한다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있었는데 이러한 흐름에 따라 조선에서도 절파를 비판하고 문인화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이를 수용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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