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고] 거문고 A+ 완벽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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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학기에 중간고사 대체 레포트로 작성했던 A+ 보고서입니다.
-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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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 A+ 완벽정리
1. 거문고의 의미와 기원 및 역사
2. 거문고와 풍류
3. 거문고의 연혁
4. 제도
5. 거문고의 재료
6. 줄고르는 법
(1) 정악
(2) 산조
7. 거문고의 연주법
(1) 연주자세
(2) 술대법
(3) 왼손 짚는 법
8. 구음법
9. 한국음악에서 거문고의 비중
10. 관현악에서 축소되고 있는 거문고의 위상
11. 미래의 거문고
-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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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문고의 의미와 기원 및 역사
현금이라고도 하며 가야금, 비파와 함께 우리나라 삼현중의 하나이다. 앞판은 오동나무로 뒷판은 밤나무로, 아쟁이나 대쟁과 같이 상자식으로 짜서 울림통을 만든다. 줄은 명주실을 꼬아 만들며 거문고를 무릎에 두고, 몸쪽으로부터 문현, 유현, 대현, 괘상청, 기괘청, 무현의 차례로 모두 6줄이다. 거문고의 길이는 150cm이고 넓이는 19cm정도이다. 괘 는 단단한 회목으로 만들며, 술대를 사용할 때의 통의 앞면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부드러 운 가죽으로 대모를 붙인다.
거문고의 역사는 삼국사기에 중국 진나라에서 보내온 칠현금을 제2상인 왕산악이 본디 모 양은 유지하되 그 제도를 많이 고쳐서 만들고, 100여 곡을 지어 연주하였더니, 검은 학이 날아들어 춤을 추었기에 현학금이라고 이름이 붙었고, 후에 '학'자를 빼고 '현금'이라 하였다고 한 다. 그러나 1932년 집안현에서 발굴된 고분의 벽화에 4줄로 된 거문고가 그려져 있어 진나라 이전, 그러니까 4.5 세기 이전에 고구려에 이미 거문고가 있었다고 추측한다. 거문고라는 이름도 '현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고구려의 악기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후 거문고는 신라에 전해져서 옥보고가 지라산에 들어가 50년을 공부하고 30곡을 새로이 만들어 속명득에게 전하고, 그는 또 이를 귀금에게, 귀금은 안장과 청장에게, 안장은 그의 아들 극상과 극종에게 전하여 극종은 다시 7곡을 지었는데, 극종 뒤로는 거문고를 업으로 삼는 한 두 사람이 아니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남아 있다. 이처럼 거문고는 삼국통일 이후에 신라지역에 전해졌고, 고려, 조선을 통하여 선비계층의 애호를 받았으며, 풍류방 음악의 대표적인 악기가 되었다. 거문고(玄琴)라는 이름은 본래‘고구려의 현악기’란 뜻으로 보인다. 수십 세기를 내려오며 민족의 정서를 북돋아 온 악기 중에서 우리의 고유한 음악 정신에 한발 더 밀착해 온 악기를 꼽으라면 거문고가 그 첫손에 꼽힌다. 현금이라고도 불리는 거문고는 그 소리가 깊고 장중하여 학문과 덕을 쌓은 선비들 사이에서 숭상되었으며, 모든 악기의 으뜸이라는 ‘백악지장(百樂之丈)’의 호칭을 얻었다. 가야금, 비파와 함께 한국의 삼현(三絃)악기로 꼽히며 우리나라 현악기 중 음폭이 약 3옥타브로 가장 넓다. 거문고는 영산회상(靈山會相, 석가여래가 설법하던 영산회의 불보살(佛菩薩)을 노래한 악곡)과 보허자(步虛子, 궁중에서 쓰이던 관악합주곡) 계통의 변주곡, 가곡 반주 등 지난날 풍류방에서 연주되었던 대부분의 악곡에 편성되며, 민요 반주 등 민속음악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다만 백낙준에 의해 창시된 거문고산조는 거문고가 지닌 특성을 백분 활용하여 출중한 느낌을 만들어 내고 있다. 1980년대 이후 거문고를 사용한 창작 음악들이 많이 작곡되어 새로운 주법도 개발되었고, 개량 문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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