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정지용의 `카페,프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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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시인 정지용

1) 정지용의 생애
2) 정지용의 시 세계
3) 모더니즘
4) 정지용의 시사적 의의

(2) 카페․프란스 통합 분석

(3) 외연과 내포

1)외연과 내포의 정의
2)시속에서의 외연과 내포

(4)카페 프란스의 외연과 내포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정지용은 형태 주의적 기법을 최초로 시도한 이미지스트이자 모더니스트 시인이었다. 그의 시를 보면 일상에서 흔하게 사용되지 않는 고어나 방언을 시어로 폭넓게 활용하여 대상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묘사적 이미지즘은 오히려 그 대상에 대한 의미를 증폭시킴으로써 표현된 것보다 내면적인 의미를 강하게 드러낸다. 때문에 정지용의 시들은 대부분 내포적인 의미를 지닌다. 특히 청각, 시각, 촉각 ,공감각 등의 감각적이고 회화적인 표현에 있어서 정지용은 뛰어난 언어사용기법을 보여준다. 때문에 그는 현대시학사에 있어서 뛰어난 시인으로 손꼽힌다. 특히 정지용은 영문학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서구적인 문학이론을 기초로 하기보다는 오히려 개인적인 체험과 감상을 바탕으로 시를 비롯한 산문, 시론 등을 집필하였다. 정지용은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은 읽어 보았을 작품이 많이 있는데, 대표적인 시집으로 「지용시선」과,「백록담」이 있으며 여기에는 유명한 시 「유리창」,「향수」등이 수록되어 있다.
정지용의 시들 중 특히 「카페 ․ 프란스」는 형태주의 적 특성이 강하면서도 언어적 표현이 독특하기 때문에, 의미론이나 언어론에 있어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또한 정지용의 최초의 모더니즘시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문학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카페 ․ 프란스」를 구조적으로 분석함과 동시에 의미론적인 분석을 하려한다. 관련된 선행연구가 많이 이루어져왔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분석적, 탐색적 연구를 진행할 것이다. 우리는 정지용의 생애와 시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 및 분석을 진행한 뒤, 선행연구탐색을 기본으로 하여,「카페 ․ 프란스」가 지니는 외연적 의미 및 내포적 의미를 파악할 것이다. 그리고 정지용 시인이 이 시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주제와 그 상징성을 알아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시인 정지용

1) 정지용의 생애
정지용은 1902년 5월15일(음력) 충북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옥천공립보통학교(현 죽향초)를 졸업하고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재학 중 선배인 홍사용, 박종화, 김영랑, 후배인 이태준을 만나 글쓰기의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동인지《요람》을 10여호 까지 펴낸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 교내문제로 야기된 휘문사태의 주동으로 이선근과 함께 무기정학을 받아 수업을 받지 못했다. 이 해 12월《요람》창간호에 그의 첫 발표작이자 하나뿐인 소설<3인>을 싣는다. 1922년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첫 시<풍랑몽>을 썼으며 이듬해 휘문학교의 교비생으로 일본 교토의 도시샤대학 영문과에 입학한다. 재학기간동안 시 <석류> <바다> 등을 썼으며 1926년 《학조》창간호에 <카페 ․프란스>등 9편의 시를, 그리고 《신민》《문예시대》에 <홍춘> <산엣색시 들녘사내> 등을 발표 시인으로 등단한다. 1929년 도시샤대학을 졸업하고 고국에 돌아와 모교의 영어교사로 부임한다. 정지용을 기다리던 박용철, 김영랑과 함께 동인지《시문학)》을 창간, 순수시운동의 물길을 튼다. 1933년 《가톨릭청년》창간부터 편집고문을 맡아 신앙시를 발표하고, 이태준, 이무영, 김기림 등과 함께 반 카프적 입장에서 순수문학의 옹호를 취지로 한 『9인회』를 만든다.
그의 첫 시집 《정지용 시집》(1935)에 수록된 <향수>등은 일찍이 우리민족이 체험하지 못한 모국어의 눈부신 개척을 이뤘거니와 조국광복의 불빛이 보이지 않을 때 빼앗긴 조국을 '고향'의 이미지로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로 각인시키고 일깨웠던 것이다.
정지용은 일제강점기에 높은 문학성과를 거둔 《문장》의 시 추천심사위원으로 참여하여 뒷날 『청록파』라는 한국시사의 한 유파를 형성한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을 발굴하였으며 이밖에도 이한직, 박남수, 김종한 등 역량 있는 시인들을 시단에 내놓는데 기여했다. 이 가운데《문장》(1940년 9월호) 의 추천평에서,「박목월 군, 북에는 김소월이 있었거니 남에는 박목월이가 날만하다. 소월의 톡톡 불거지는 삭주 구성조(龜城調)는 지금 읽어도 좋더니 목월이 못지 아니 아기자기 섬세한 맛이 좋다」고 북의 소월과 남의 목월을 비교하기도 했다.
1941년에 펴낸 두 번째 시집《백록담》에서 정지용은, 백록담으로 상징되는 조국의 자연에 대한 깊은 탐험을 내면의 언어로 형상화시키는 높은 경지를 보여준다. 「물도 마르기 전에 어미를 여읜 어린 송아지는 움매―움매 ―울었다. 말을 보고도 등산객을 보고도 매여 달렸다. 우리 새끼들도 모색(毛色)이 다른 어미에게 맡길 것을 나는 울었다」는 대목에서 시인은 다음 세대가 이민족에게 말과 글을 배우게 되는 불행에 대해 통곡을 터뜨리고 있다.
1946년 이화여전 교수를 사임하고 경향신문 주간직을 맡아, 이 해 《지용시선》을 펴낸다. 그리고 다음 해 경향신문을 나와 다시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복직했다가 1년 만에 그만두고 녹번리 초당에서 시작에 전념한다. 1948년에 37편의 시, 수필, 기행문이 수록된 《문학독본》을 출판한다. 이태준이 북으로 넘어가자 그는 "소설가 이태준 군 조국의 서울로 돌아 오라"는 글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6·25전쟁이 일어나고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한 그는 정치보위부에 체포,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납북된다.

2) 정지용의 시 세계
정지용의 시는 그가 탐구하고자 한 대상에 따라 몇 가지로 구분된다. 바다를 다룬 시, 산을 다룬 시, 고향을 다룬 시, 동심을 다룬 시, 가톨릭의 신앙심을 다룬 시, 문명을 다룬 시가 그것이다. 한 시인이 어떤 대상을 집중적으로 다룬다는 것은 그 대상이 그에게 남다르게 작용하였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어떤 대상이든 그것이 시인의 삶 속에 오래 깃들며 숙성된 것이 아니라면, 그 진가를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결국 시인의 삶의 긴 여정 속에서 어떤 대상은 그와 동거하며 그 존재의 은밀한 부분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지용의 시 가운데서는 바다를 전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다룬 것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는 이 땅에서 바다가 없는 대표적인 내륙지역, 충청북도 옥천에서 출생하여 그곳에서 유․ 소년기를 보낸 시인이다. 따라서 그가 바다를 경험하였다면 그것은 유학생 신분으로 일본을 오가는 선상에서 겪은 체험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서구와 근대문명의 표상으로 당시의 지식인들에게 새로운 세계로 파고든 관념적이거나 상상적인 체험이 주를 이룰 것이다. 이렇게 바다를 바라보거나 건너가면서 보고 상상한 세계는 몇몇 신선한 비유로 감각적인 재미를 얼마간 맛보게 하는 데까지는 나아갔으나 그 이상까지 발전하지는 못하였다. 즉 그에게 있어서 바다는 그가 성장하여 만난 새로운 풍경이었을 뿐, 그의 삶 속에서 들어와 그와 함께 깊이 몸을 섞은, 이른바 체화된 대상이 아니었다.
다음으로 산을 다룬 정지용의 시를 보기로 한다. 산을 다룬 시로는 「백록담」「비로봉
참고문헌
정효구, 『한국 현대시와 편인의 사상』, 푸른 사상, 525-526
김은숙, 「정지용시의 모더니즘 특질 연구」,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79
장도준, 「정지용 시 연구」, 태학사, 232
손병희,「정지용의 시<카페-프란스>분석」
배호남,「정지용 시연구」, Gho Hwang Non Jib, Kyung Hee Graduate School Vol, 29, 2001
울산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부, 「정지용의 초기 자유시 형태와 형식적 가능성에 대하여」, 울산어문논집 제15집 (2001.11.30), pp.185~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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