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평안도 기독교 세력과 친미엘리트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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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평안도 출신의 핵심엘리트들

2. 기독교의 평안도 '세례'

3. 평안도 출신 친미엘리트의 형성

4. 1930∼1945년 평안도와 서울의 차이

5. 해방 이후 평안도 출신 엘리트들의 정치적 동향

본문내용
1. 평안도 출신의 핵심엘리트들

1980년대 이후 민주화의 진전 속에서 '민중'과 '자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가능해짐에 따라 한국 근현대사 연구자들도 민중운동과 미국의 대한정책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민중이나 미국 못지 않게 중요한 한국 사회의 핵심 엘리트들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부진한 편이라 20세기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핵심 엘리트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였는데 한국의 엘리트들을 출신지역별로 분류해보았을 때 평안도 출신 인사들의 비중이 대단히 높았다.
일제 하 항일운동사에 나타난 안창호, 조만식, 이승훈 등에서부터 해방이후 정치, 경제, 군부, 교육, 예술, 종교 등의 전 분야에 걸쳐 누구나 이름만 대도 쉽게 알 수 있는 거물급 인사들 중에 평안도 출신들이 많았다. 게다가 평안도 출신 핵심 엘리트들은 대부분이 기독교와 상당히 긴밀한 관련을 갖고 있었다. 이것은 결국 평안도 출신 핵심 엘리트들은 기독교와 일정한 함수관계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기독교의 평안도 '세례'

1890년을 전후하여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등이 서울은 물론 인천, 원산, 부산 등지에서 본격적인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1898년 한국 장로교의 전체 교인 7,500여명 가운데 평안도와 황해도 곤 '서북지방'의 교인수가 5,950명으로 무려 79.3%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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