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링컨의 리더십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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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링컨의 리더십 비교!!!!
우리는 드라마 같은 대선을 통해 노무현이라는 인물을 대통령자리에 앉혔다. 그 노무현이라는 한 사람을 볼 때마다 나는 마치 외인구단의 리더라도 보는 것 같다. ‘훌륭한 대통령’이 될지 여느 대통령과 같은 ‘역시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지는 지금 판단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지금 판단하는 것도 우습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특이한 이제껏 볼 수 없었던 대통령인 것은 분명하다.
그는 공식석상에서 종종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은 ‘김 구?‘링 컨’ 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저서인 ‘노무현이 만난 링컨’에서 자신이 존경할 만할 인물을 동서고금을 막론해 인류가 부정할 수 없는 정의의 개념을 내세워 승리하고, 바른 역사를 이루어낸 사람, 앞으로 천년이 지나도 부정하기 힘든 ‘정의’라는 주제를 가지고 역사를 일군 사람...그로 인하여 인류에게 ‘정의가 승리한다’는 희망을 제시한 사람이라고 말하였다. 이 모두를 성공한 사람이 링컨이며 그는 훌륭한 역사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링컨에게 얻었다고 한다.
노무현과 링컨은 생애에서부터 사회적, 정치적 경험에 이르기까지 여러 부분에서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링컨은 1809년 미국 켄터기주의 한 시골에서 가난한 개척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노무현은 역시 1946년 경남 김해의 시골 농가에서 태어났다. 두 사람 모두 풍족함과는 거리가 먼 유년시절을 보냈다.
링컨은 정규교육은 고사하고 학교라고는 13살 때 근처의 마을에 연 학교에서 3개월간 성경에 대해 읽고 쓰기를 배운 정도가 고작이었다고 한다. 이 보단 낫지만 노무현 대통령도 상고를 졸업하였다. 물론 이 시절 상고를 다녔다는 것이 평균이상의 학력이라고 하지만 요즘 눈에 보이고 티비에 나온다고 하는 정치인들의 학력을 생각해 볼 때 결코 훌륭한 학력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밖에도 링컨과 노무현은 시련이 많았다는 점 역시 유사하다. 노무현은 1992년 총선 낙선, 1995년 부산시장 낙선, 2000년 총선 낙선 쉬운 길, 탄탄대로를 포기한 그는 거듭 낙선을 했다. 그 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하고 극적인 승리를 거두고 대선 후보가 되었어도 당 안 밖에서 불거져 나오는 후보 교체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나온 정몽준의지지 철회 등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그야말로 우여곡절,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링컨 역시 22살 때 처음 일리노이 주의원에 도전했으나 패배했고, 35살에 연방 하원의원데 도전할 때는 공천조차 받지 못했으며, 2년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1846년 연방하원의원에 선출 되었지만 그 후, 대통령 당선되는 1860년 까지 11년간 그의 정치 도전은 모두 실패 하였다. 이 뿐 아니라 그는 첫사랑을 사별하였으며, 이로 인해 우울증에도 시달렸다. 둘째, 셋째 아들을 모두 잃었으며 남북전쟁으로 인해 처남과 동서가 죽었다. 자신과 같은..어쩌면 자신보다도 더 안 좋았던 환경과 고된 시련을 이겨내고 가장 존경받는 미 대통령이 된 링컨을 보면서 노무현 자신은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노무현은 저서 ‘노무현이 만난 링컨’에서 ‘젊은 시절 읽었던 석가모니의 생에서 느꼈던 것 처럼 와락 기쁨이 다가왔다, 보통 사람들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라고 말하였다. 링컨의 생애는 노무현의 생애와 오버렙 된다. 어쩌면 그가 존경할 만한 인물의 기준인 ‘정의가 승리한다는 희망을 제시한 위인들’ 중 가장 자신과 같은 처지의 인물을 고른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노무현과 링컨의 리더십을 비교해 보자.
노무현이 링컨을 존경하여 그의 리더십을 실천하려고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노무현과 링컨의 리더십은 상당 부분 비슷한 것 같다.
첫째, 수평적 민주적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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