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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관 내에 임시로 설치된 실록청(또는 撰修廳일기청)에서 담당하였다.실록청의 총재관(摠裁官)은 재상이 맡았으며, 대제학 등 문필이 뛰어난 인물이 도청(都廳) 및 각방 당상(各房堂上)으로 임명되었다. 시정기(時政記)와 사관(史官)이 개인적으로 작성한 사초(史草), 각사 등록(謄錄), 《승정원일기
13페이지 | 2,000원 | 2013.12.23
춘추관 내에 임시로 실록청을 설치영사(영의정), 지사(좌의정), 동지사(우의정), 사관(6품 이하 문신, 한림) 등 200여명의 편찬위원으로 구성편집과정초조→ 중초→ 정초→3단계를 거쳐 인쇄수정가능편찬된 실록을 때에 따라 수정개수하기도 함→「선조실록」, 「현종실록」, 「경종실록」4) 자료
101페이지 | 4,000원 | 2013.12.13
실록청을 개설하여 전 왕대의 여러 기록을 수집해 편찬한 것이다. 최초의 조선왕조실록은 1409년(태종 9) 태조가 죽은 지 1년 후에 태종이 하륜(河崙)에게 〈태조실록〉의 편찬을 명함으로써 편찬이 시작되었다. 실록을 편찬할 때에는 춘추관 내에 임시로 실록청 혹은 찬수청(纂修廳)을 설치하고 영의정
8페이지 | 5,000원 | 2013.07.31
춘추관에 제출하지 않고 집에 보관해 두었다가 왕이 죽은 후에 실록청에 제출하게 되어 있었다.또한 사초는 국왕도 마음대로 볼 수 없었다. 직필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태조를 제외하고는 사초를 직접 본 왕은 없었다. 세종도 ꡔ태조실록ꡕ은 보았으나 ꡔ태종실록ꡕ은 신하들의 반대로 보지 못하였
13페이지 | 5,000원 | 2013.07.31
춘추관을 중심으로 실록청을 설치해 편년체로 편찬4) 지도 및 지리서 편찬, 윤리, 의례서와 법전의 편찬❶ 지도 : 중앙집권화와 외적 방어를 목적❷ 삼강행실도 : 삼강에 모범이 될 만한 충신, 효자, 열녀의 행실을 담음. 조선은 성리학 국가였으며, 성리학적 이상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사회 전반에
95페이지 | 6,000원 | 2013.02.21
춘추관의 사관으로 있으면서 훈구파 이극돈의 비행과 세조의 찬탈을 사초에 기록한 일로 김일손과 이극돈 사이에도 반목이 생기게 되었다. 유자광,이극돈은 김종직 일파를 증오하여 보복에 착수하였다.1498년 을 편찬하자, 실록청 당상관이 된 이극돈은, 김일손이 사초에 삽입한 김종직의 조
8페이지 | 2,000원 | 2011.07.05
실록청에 들어가서 시정기를 보니 조보와 다를 것이 없었다고 한 것이나 1520년 3월 26일 영사 남곤이 중종에게 의정부의 관리인 사록 한 사람을 승정원에 들여보내어 내용을 알아보도록 제도를 세워 의정부가 온 나라 일을 다 알고 있도록 한 데 대하여 건의한 사실 등으로 미루어 보아 이 시기에는 이미
25페이지 | 2,500원 | 2011.03.10
실록청(實錄廳) : 왕이 죽은 직후, 실록을 편찬하기 위한 임시 관청 춘추관(春秋館) : 조선시대 시정을 기록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 총재관(總裁官) : 실록을 분업하여 편찬 초초 > 중초 > 정초, 실록내용에 대한 객관성을 담보 세초(洗草) : 실록 편찬이 완료되면, 그 전에 만들어진 초고나 수정본 종이
30페이지 | 2,700원 | 2010.11.24
실록청(實錄廳) : 왕이 죽은 직후, 실록을 편찬하기 위한 임시 관청 - 춘추관(春秋館) : 조선시대 시정을 기록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 - 총재관(總裁官) : 실록을 분업하여 편찬 (초초>중초>정초, 실록내용에 대한 객관성을 담보) - 세초(洗草) : 실록 편찬이 완료되면, 그 전에 만들어진 초고나 수정본 종
4페이지 | 800원 | 2010.09.08
실록청(實錄廳) : 왕이 죽은 직후, 실록을 편찬하기 위한 임시 관청 춘추관(春秋館) : 조선시대 시정을 기록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 총재관(總裁官) : 실록을 분업하여 편찬 초초 > 중초 > 정초, 실록내용에 대한 객관성을 담보 세초(洗草) : 실록 편찬이 완료되면, 그 전에 만들어진 초고나 수정본 종이
30페이지 | 2,400원 | 2010.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