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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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전쟁
1. 전쟁이란?
전쟁이란 실질적인 의미로는 정치집단, 특히 주권국가 사이에서 군사력 행사를 중심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벌어지는 대규모의 전면적 투쟁상태입니다. 프로이센의 전략가 K. 클라우제비츠가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해서 수행되는 정치(정책)의 연장에 불과하다>라고 규정하였듯이 전쟁은 고도의 정치적 현상이며, 이런 점에서 전쟁과 다른 투쟁형태, 예를들어 외교, 경제적 압력, 선전, 간섭, 무력에 의한 위협, 소규모 무력행사 등과의 차이는 상대적이지만 전쟁이 보다 전면적이고 포괄적인 투쟁관계라는 점에서 구별됩니다. 한편 전쟁을 형식적법적인 의미로 정의하면, 당사국에 의한 전쟁개시의 의사표시로부터 합의 또는 일방적 정복에 의한 전쟁 종결까지 계속되는 특수한 국제법적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의 전쟁은 실질적인 무력행사가 없거나 무력행사를 전면적으로 종결한 뒤에도 여전히 존재할 수 있습니다. 실질적 의미의 전쟁과 형식적 의미에서의 전쟁은 지금까지는 대체로 일치되어 왔으나, 최근에는 형식적 의미의 전쟁개념은 점차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2. 한국의 전쟁
고조선시대 이래 한민족은 외부세력으로부터 부단한 침략을 받아 왔고 그 때마다 침략세력과 치열한 전쟁을 치르며 민족의 동질성과 영토를 유지지속시켜 왔습니다.
(1) 통일신라까지의 전쟁
BC 109년 고조선의 세력 확장이 한(漢)나라의 영토확장 정책을 방해하자 한나라는 군사 5만을 이끌고 고조선을 침공하였습니다. 고조선은 이에 대응, 선전하였으나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화전 양파가 대립하는 내분으로 멸망하였습니다. 삼국시대에는 중국 수(隋)나라의 양제(煬帝)가 고구려 원정을 결의하고 612년 고구려를 쳐들어왔는데 을지문덕장군은 수나라군대에 맞서 지금의 청천강인 살수(薩水)에서 이른바 <살수대첩>을 통해 결정적인 타격을 입혀 격퇴하였습니다. 그 뒤 수양제는 613, 614년, 617년 3차례나 침입하였으나 거듭 패하여 이 전쟁은 수나라가 멸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수나라의 뒤를 이은 당(唐)나라도 고구려 침공 기미를 보이자 고구려는 백제와 동맹하여 당나라의 위협을 견제하는 한편, 신라를 압박하였는데 이에 대응하여 신라는 적극적인 친당정책을 전개, 양국의 동맹을 견제하였습니다. 644년 당나라 태종이 10여 만의 대군을 이끌고 수륙 양면으로 고구려를 침공해 왔으나 고구려군은 이를 막아내었고 신라는 삼국통일을 위하여, 영토확장에 목적이 있는 당나라와 연합하고 660년(무열왕 7)과 668년(문무왕 8)에 각각 백제와 고구려를 정복하여 삼국을 통일하였습니다. 그러나 당나라가 한반도에 도독부(都督府)를 설치하여 영토확장 야욕을 드러내자 여러 차례에 걸친 당과의 전쟁을 통해 677년 한반도의 완전한 주권을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2) 고려시대의 전쟁
후삼국간의 대립경쟁을 거쳐 재차 한반도를 통일한 고려는 거란의 3차례에 걸친 침략행위를 각각 화의(和議;서희의 외교 담판), 강화, 강공(강감찬의 구주 대첩)으로 물리쳤습니다. 1104년(숙종 9) 만주의 여진족이 세력을 강화하여 함흥평야를 지배하기 위해 고려를 침입했었고, 고려는 1107년(예종 2) 윤관을 도원수로 삼아 17만의 병력을 파견, 여진의 점령지역에서 여진군을 토벌하고 9성을 쌓았습니다(여진정벌). 1231~57년 몽고는 7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해왔으나 항몽세력의 핵심인 삼별초(三別抄)의 항쟁을 비롯한 40년간의 항쟁을 통해 한민족의 끈질긴 저항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3) 조선시대의 전쟁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대륙 진출을 구실로 1592년 15만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공하여, 20일만에 서울을 함락하고 계속 북진, 평양함경도까지 진출하였는데 관군이 왜군을 막지 못하자 국내 각 지방에서는 의병이 일어났고, 이순신을 중심으로 한 조선 수군의 제해권 장악 및 관군의 재정비, 명나라 군대의 진주와 전염병의 유행 등으로 왜군은 격퇴되었습니다. 1597년 14만 명의 대병력을 동원하여 일본이 재침공해왔지만, 관군의 대비와 수군의 우세로 쉽게 물리쳤습니다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조선은 전국이 전장화되고 왜군의 약탈과 살육으로 인하여 심한 타격을 받았고, 명나라는 병력 파견으로 인한 국력의 소모와 재정의 문란으로 청나라에 멸망당했으며, 일본에서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정권을 장악하는 등 전쟁 참여 국가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1636년 중국에서 국호를 청으로 고치고 황제를 칭하는 태종이 원정군 10만을 편성, 지휘하여 조선을 침입함으로써 병자호란이 시작되었는데 청군은 조선국왕 인조가 피신한 남한산성을 포위하고 조선의 국왕이 성문 밖에 나와 항복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인조는 부득이 성문을 열고 삼전도(三田渡)에서 항복하였는데 이것은 한국 역사상 큰 치욕이었습니다. 1866년 프랑스 함대가 흥선대원군의 가톨릭 탄압에 대한 항의로 강화에 상륙한 병인양요와 71년 미국이 통상을 요구하며 공격해 온 신미양요 등 서양 국가들과의 전쟁도 있었습니다.
(4) 항일독립운동
메이지유신 이래 자본주의적 발전을 가속화하여 제국주의 단계로 접어든 일제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리를 기반으로 한반도 침략하려했습니다. 1907년 한일신협약을 강요한 일본이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 해산시키자 해산된 군인들은 각지의 의병과 합류하여 일제에 무력항쟁을 계속하였었는데, 일제의 극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항일의병운동은 계속되었고, 범국민적인 항거로 19년 31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항일무력투쟁은 만주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그 가운데에 <청산리전투>는 독립군의 혁혁한 승리를 안겨준 전투였습니다.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 일제의 세력이 만주에까지 미치게 되자 독립군은 근거지를 잃고 상해임시정부에 가담, 40년 한국광복군을 정식으로 창설하였는데, 광복군은 국제정세의 변화에 대처, 미국과 제휴하여 본국 상륙작전을 준비하였으나, 일본의 항복으로 상륙작전은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5) 대한민국 수립 후의 전쟁
1945년 광복은 이루었지만, 또다시 외세에 의해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되었습니다. 북한에 성립된 김일성정권은 스탈린의 비호 아래 50년 6월 25일 조국해방전쟁이란 구실로 남한을 침공하였습니다. 국방군은 빈약한 무기로 맞서 싸웠으나 병력과 장비의 열세로 7월 말에는 낙동강전선까지 후퇴하였었는데, 9월 15일 유엔군 및 한국해병대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여 서울을 재탈환하고, 평양원산청진신의주 부근까지 북진하였습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중화인민공화국은 약 30만의 군대를 편성, 개입함으로써 전쟁의 성격은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간의 국제적 체제대립투쟁이라는 성격을 띠게 되었고, 그로 인해 냉전체제는 더욱 강화지속되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선은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가운데 소련의 요청에 따라 51년 휴전회담이 개시되고 53년 정전협정이 조인되었고, 625로 인한 인명피해는 막대하여 유엔군과 한국군이 18만 명, 북한군이 52만 명, 중공군이 90만 명, 한국의 민간인 99만 명이 사상당한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65년, 월남의 지원요청에 따라 전투부대를 파견함으로써 한국은 베트남전쟁에 직접 개입하게 되었다. 7년 5개월 동안 파월된 한국군 부대는 총병력 4만 8000명이며, 그 중 4800여 명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한국은 월남파병을 통해 자본주의세계의 집단안보체제에 동참함으로써 미군의 계속 주둔, 한국방위보장의 확보 등 국방력이 강화되었고, 제12차 경제개발 5 개년계획의 추진 등 한국경제 부상의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90년 8월에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촉발된 걸프사태가 전쟁으로 확대되자 한국도 걸프군비지원 및 주변국 경제지원분담금으로 2억 2000만 달러와 항공기선박 등을 다국적군에게 제공하였고 또한 군 의료진도 파견하였습니다.
3.결론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금 냉전체제인 국가로써 언제 어느 때에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라크 전쟁이 보여주듯 전쟁으로 인한 인명피해나 재산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합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며 하루 빨리 평화적으로 남북이 통일되는 것이 전쟁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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