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의 역사적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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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istorical Background
1)북촌의 역사적 변화
① 조선시대의 북촌
풍수 지리적 측면에서 볼 때 서울에서의 최상지는 경복궁이고 다음이 창덕궁이니 이 궁궐을 연결하는 선상의 지역, 북악과 응봉을 연결하는 산줄기의 남쪽 기슭에서 현 율곡로 좌우측 일대는 주거입지 즉 양기풍수상(陽氣風水上)의 최길지(最吉地)였으며, 이 지역은 이른바 북고남저(北高南低)로서 겨울에 따뜻하고 배수가 잘 될 뿐 아니라 남쪽은 넓게 트인데다 안산(案山)인 남산의 전망도 좋아 정침(正寢)이나 사랑(斜廊)이 항상 남면(南面)할 수 있는 이점도 지녀 도성도(18세기 후반) 이 일대에 그때마다의 권문세가(權門勢家)들이 모여 -북촌의 물길과 옛길 들었다.
그들은 이곳에 집거함으로써 자기들끼리의 대면을 통한 정보 교환이 가능했으며 그들의 지배를 언제나 합리화하고 장기화하기 위한 유대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물론 그 내부에 있어서는 오히려 분파활동(分派活動)을 활발하게 하는 요인도 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곧 서울에 있어서의 북촌(北村)의 형성이다.
한편 당대의 권문세가가 아닌 하급관리들이라든가 양반의 자손이기는 하나 현직의 고급관인이 아닌 자들은 남산 기슭인 이른바 남촌(南村)에 살았다. 그곳은 음지(陰地)이기는 하나 배수가 잘 되고 지하수가 풍부하여 취수에 편리했다. 고종 원년(1864)에서 동 24년(1887)의 일을 두루 적은『매천야록(梅泉野錄)』권1 상에 서울의 대로인 종각 이북을 북촌이라 부르며 노론(老論)이 살고 있고, 종각 남쪽을 남촌이라 하는데 소론(少論) 이하 삼색(三色)이 섞여서 살았다고 기술하고 있으며, 당시 북촌에는 노론만이 거주하였고 소론과 남인 북인은 설령 고급관인일지라도 남촌에 섞여 살았다고 한다.
인조반정 이후 세력을 잡은 서인들은 노론-소론으로 분당된 뒤, 영-정조 때부터 노론이 세력을 잡게되고 순조-헌종-철종을 거쳐 고종 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150년 간에 걸쳐 집권하였는데, 북촌은 이들 세력의 주 거주지역이었던 것이다.
② 일제시대의 북촌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한국의 주권을 약탈한 일본은 한성부를 경성부(京城府)로 개명하고, 경기도 밑에 두어 그 지위를 격하시켰다. 또한 서울에는 일본인들의 이입으로 인구가 증가하였다. 그러나 북촌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는 소수의 일본인들만이 거주하고 있어서 고전적인 한국인의 주택가로써의 전통을 간직할 수 있었다.
현재 기록으로 남아있는 1917년의 지적명세서나 1921년 경성지도를 보면 북촌 지역의 대형 필지는 여전히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시절의 세력가들의 소유로 되어있다. 가회동 1번지는 박영효와 여흥민씨 민영휘 등의 공동소유로 되어있고, 가회동 31번지, 계동 105번지 등 가회동 일대 역시 여흥민씨 민대식(민영휘의 아들)의 소유로 되어있다. 한편 가회동 26번지 등은 당시 한성은행 대주주였던 재력가 한창수의 소유로 되었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대형 필지와 그 이전까지는 대지로 분류되지 않았던 임야지목의 대지에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오천여평에 이르는 가회동 31번지는 50-80평 내외의 필지로 분할되었고(1930년대), 이천칠백여평의 가회동 26번지(1935년경 건설) 역시 50평 내외의 중소형 필지들로 분할되었다. 1912년 지적도에 임야로 표기되어 있거나 1921년 경성지도에 구릉지로 표현되어있던 현재의 삼청동 35번지 일대와 가회동 1번지(1931년 건설),계동 2번지 일대는 대지로 전환되어 중소규모의 필지들로 정리되었다. 이 필지 위에 정세권(건양사)이나 김종량(경성목재점)등의 주택경영회사에 의하여 집단적으로 한옥주거지가 건설되었다.
당시 이 지역에는 약수터가 있었으며, 길 연변에는 재래식 초가집과 조그마한 기와집들이 서있었다. 또한 가회동 8번지부터 제동에 이르기까지 길 연변에는 개천이 있었는데, 이 개천은 일제말기부터 메워졌고, 이 때부터 북촌 북쪽에도 차차 집이 세워지게 되었다.
③ 광복이후 30여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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