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론 남송학파하규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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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동양화론>
남송학파
* 하규
* 마원
<동양화론>
1. 남송학파
남송은 송나라가 금(金)나라에 밀려 남쪽으로 내려가 임안(臨安)을 새로운 도읍으로 정하고 70여 년 동안 유지되었다. 육유는 금나라에 저항한 시인으로, 뜨거운 애국심과 좌절감으로 인한 격정을 시에 담았다. 양만리는 자유롭고 활달한 당대(唐代)의 시풍을 계승하였다.
범성대는 고위관직을 지낸 뒤 석호(石湖)라는 별장에 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객관적으로 묘사하였다. 우무와 소덕조는 시집은 남아 있지 않고 간혹 몇몇 작품이 전하는데, 그다지 뛰어난 점은 없다고 평가받는다. 이들은 모두 초기에는 형식주의적인 강서시파(江西詩派)의 시풍을 따르다가 나중에는 이를 벗어나 개성적인 작품을 남겼다.
한편, 산수화에 뛰어났던 이당·마원·하규·유송년은 당시의 세밀하고 장식적인 화풍에서 벗어나 암시적이고 간략하며 호방한 화풍으로 중국 회화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들로 인하여 원·명시대 때 복고주의가 유행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사물의 형태가 구상과 비구상의 중간 형태에 이름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새로운 표현 형식의 성립은 원·명시대에도 큰 영향을 끼쳐 과거의 양식을 토대로 하여 각각 독자적인 경지를 이루는 복고주의가 유행하는 계기가 되었다. 회화 분야의 남송사대가라는 명칭은 명나라의 당인(唐寅)이 유송년의 《춘산선은도(春産仙隱圖)》에 시제를 붙이면서 ‘이·유·마·하(李劉馬夏)’를 병칭하였고, 그 뒤 도륭(屠隆)이 ‘이당·유송년·마원·하규 네 사람이 남송의 사대가’라고 명명한 데서 비롯되었다.
* 자연과 인간의 조화
고려후기부터 이곽파 화풍과 더불어 마하파 화풍의 산수 인물화가 득세 하였다.
산수 인물화란 자연의 위용을 과시하는 산수화와 더불어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이루는 경지를 표현한 그림이다 <개자원화전>을 보면 고사관월도의 경우 고사는 달을 보고 달은 고사를 바라본다고 하였다. 고사로 대표되는 인간이 달로 상징되는 자연을 ‘눈길’이라는 감각기관을 통하여 관조하는 경지를 그린 것이다 이러한 산수 인물화는 중국의 경우 남송때 성행하였다. 이 시기의 산수 인물화풍은 화원인 마원과 화규에 의하여 주도되어 ‘마하파’라 부른다.
따라서 고려시대에는 남송과의 관계가 이루어진 후기에 이 화풍이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현이 그린 것으로 전하는 <기마도강도> 가 대표적인 고려시대 마하파 화풍의 산수인물화 이다. 이 화풍은 조선 초기인 15세기에도 지속적으로 유행하였는데, 사대부화가인 강희안과 화원인 이상좌가 이 화풍에 능하였다.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는 절벽을 배경으로 바위에 턱을 괴고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 절벽이나 바위처리는 마하파 처럼 그다지 날카롭지는 않으나 거듭 칠한 거친 붓질로 중량감을 느끼게 하여준다. 고려 후기부터 유행한 마하파 화풍이 조선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6세기에는 마하파를 명나라식으로 변용시킨 절파 화풍이 전래되어 기존의 마하파 화풍을 대체하였다.
절파화풍의 초창기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으로는 김시의 <동자견려도>가 있다. 경물의 구성을 앞면과 뒷면으로 나눈다면, 앞면의 전경에는 날카롭게 쓸어 내린 바위가 막아 서있고 왼쪽에는 각이 지게 그리는 타자법의 노송 가지가 뻗쳐 있다. 뒷면 상단의 중경을 보면, 대각선 방향으로 솟구쳐 오른 절벽이 위쪽을 막아주고 있다. 이 절벽은 각이 진 윤곽선, 앞면과 옆면의 흑백대비. 앞면의 무른 붓질로 성글게 친 부벽준 등 16세기에 유행한 절파 황풍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절파 화풍은 이경윤, 함윤덕 등이 즐겨 구사하였는데 , 17세기에는 김명국 등이 거칠고 빠른 필치로 표현된 후기 절파 화풍을 구사하였고,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주춤하게 된다.
2. 하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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