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탑파塔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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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국의 탑파
1) 한국의 탑파(塔婆)
탑파란 범어의 Stupa에서 온 말이다. 원래는 부처의 유골머리카락을 안치하고 공양하기 위하여 대개 절에 세워졌던 건축물이었다. 줄여서 탑이라고도 한다. 탑은 기단부(基壇部)탑신부(塔身部)상륜부(相轎部)로 구성된다. 쓰인 재료에 따라 목탑(木塔)전탑(輾塔:벽돌답동탑(銅塔) 등으로 분류되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석탑(石塔)이 가장 많이 건조되었다. 오늘날에도 전국에서 1,300기가 넘는 옛날의 석탑을 볼 수 있다.
탑의 발상지인 인도나 중국에는 전탑이 많고, 일본에는 목탑이 많은 데 비하여 우리 나라에는 석탑이 많은 것은 두 가지 까닭에서라고 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우리 나라에는 질이 좋은 화강암이 풍부하다는 자연적인 조건 때문이요, 다른 하나는 이 자연적인 조건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일찍부터 돌을 다루는 기술이 발달하였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예로부터 흔히들 인도나 중국을 ‘전탑의 나라’로, 일본을 ‘목탑의 나라’로, 우리 나라를 ‘석탑의 나라’로 일컬어 왔다.
『삼국유사』에 신라 경주에는 한때 ‘절이 별처럼 퍼져 있고 탑이 기러기처럼 늘어서(寺寺星張 塔塔雁行) 장관을 이루었다는 말이 전한다. 석탑은 우선 그 재료면에서 비바람이나 불에 견디는 힘이 강하여 역사적으로 오래된 것들이 많이 전하고, 돌을 다루는 솜씨와 재주가 뛰어나 오늘날에는 귀중한 문화재요, 훌륭한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남한에만도 문화재로 지정된 석탑이 130여 기나 된다.
우리 나라의 탑도 처음엔 목탑이었으리라는 추측이다. 현물은 전하지 않으나, 옛 고구려 땅인 평양부근의 청암리 절터나 신라 경주부근의 절터 및 황룡사 9층목탑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목탑시원설(木塔始原詢은 근거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목탑은 방형 또는 다각의 기단위에 몇 개 층의 누각 형식이었으리라는 짐작이다. 현전하는 우리 나라의 목탑은 17세기에 세워진 속리산 법주사의 5층탑인 팔상전(捌相殿, 국보 271호) 뿐이다.
우리 나라 석탑의 기원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삼국시대 말기 백제에서 시작되었으리라는 견해다. 현존하는 석탑 중 가장 오래된 것도 백제의 석탑이다. 익산의 미륵사지석탑(彌靭寺址石塔)과 부여의 정림사지석탑(定林寺址石塔)이 그것이다.
미륵사지 석탑은 7세기 초반(무왕 때 600-641)에 건조한 것이다. 그 양식은 목탑과 흡사함을 느끼게 하나, 세부까지도 화강암을 가지고 충실하게 구현하였다. 현재는 6층까지만 남아 있으나, 원형은 7층 또는 9층으로 추정되는 동양최대의 웅건한 석탑이다. 현재의 높이만도 14m이다. 1915년 이 탑의 뒷면을 시멘트로 수리하였다.
정림사지 5층석탑은 7세기 중엽에 건조된 것으로 현재는 부여의 현대건물들 사이에 서 있다.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자, 소정방이 스스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 탑의 1층 탑신에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鍮)을 새겨 넣어 평제탑(平濟塔)으로 불리웠다. 그래서 백제 멸망의 비극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이 탑은 우리 나라 석탑양식의 변화상을 보여주고 있는 점에서도 귀중한 존재다. 즉 미륵사지 석탑은 목탑이 지니고 있는 세부 구현을 생략하여 석탑으로서 정돈된 형태의 세련미와 창의적인 조형미를 보여 준다
한편, 백제의 석탑과는 달리 신라의 석탑은 전탑 계열의 양식이 일반적이다. 신라석탑으로 가장 오래 된 것은 선덕여왕 때(632-647)에 완성된 분황사석답(分皇寺石塔)이다. 이 탑이 이루어진 것은 백제의 미륵사지 석탑과 같은 시기로, 화강암이 아닌 안산암(安山巖)을 가지고 작은 장방형 벽돌 모양으로 절단하여 쌓아을린 전탑형의 탑이다. 다만 탑의 초층 4면은 화강암을 사용, 감실(翕室)과 인왕입상(仁王立像)을 배치하였다. 이 탑과 비슷한 시기에 건조된 것으로 보이는 의성탑리의 5층석탑도 석재가 화강암일 뿐 전탑계열의 탑이다.
이로 보아 백제나 신라가 거의 같은 무렵에 석재를 이용한 탑을 만들고 있지만, 양식에는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통일신라 이후의 석탑은 두 양식이 종합된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나라 석탑의 전형을 이룬다. 동해안에 있는 감은사지 쌍답과 현재 경주박물관에 옮겨진 고선사지 3층석탑에서 통일신라기 석탑양식의 표본을 볼 수 있다.
감은사지 쌍탑은 절터의 동서에 세워진 3층석탑으로 고선사지 3층석탑과 비슷하다. 그 전체적인 구조에 있어서 기단부나 탑신부를 막론하고 목탑의 각부를 구현하였다.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이 차례로 그 크기가 작아진 구성이다. 고선사지탑의 1층 탑신의 면석에는 창호(窓戶)의 형식을 조각하였다.
이 두 석탑에 대하여 사람들은 ‘규모가 크고 위풍이 당당하여 신라 통일직후의 굳센 나라 힘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고 감탄하고 있다. 사실 이 두 탑의 형식은 이후 우리 나라 석탑의 표준이 되었다. 그렇다고 이 표준형식에 의해서만 일률적으로 만들어진 것만은 아니다. 여기에 미감과 창의성을 발휘하여 특수 양식의 석탑을 건조하기도 하였다. 불국사의 유명한 3층석탑과 다보탑(多饔塔)에서도 이를 볼 수 있다.
3층석탑은 흔히 석가탑(釋迦塔) 또는 무영탑(無影塔)으로 불리어지는 탑이다. 다보탑과 상대하여 대웅정 앞뜰의 8.2m의 높이로 자리하고 있는 이 석탑은 기단의 웅대함과 탑신의 아름다움이 서로 잘 조화되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8세기 중반 경덕왕 때(742~764)에 건조된 이 탑은 다음과 같은 애달픈 전설이 함께 전하여져 온다. 이 탑의 축조를 맡은 백제의 석공 아사달(阿斯達)의 아내 아사녀(阿斯女)가 남편을 기다리다 못하여 이곳까지 찾아왔다. 그러나 탑이 완성되어 그림자가 영지(影地)에 비치기 전에는 만날 수 없으리라는 사람들의 말에 매일같이 영지의 못가를 맴돌다가 어느 날 지쳐서 물에 빠져 죽었다. 무영탑의 이름을 얻은 것도 이 전설에서 연유한 것이다.
다보탑도 8세게 중엽에 이루어진 석탑이다. 10.4m 높이로 기단과 몇 개의 층으로 이루어지는 탑신의 형식과 다르다. 기단에 둥근 사리탑 모양을 에워싼 사방 계단과 난간을 만들고, 그 위에 8각의 탑신을 얹어 그 층수가 확실하지 않은 특이한 형식을 가진다. 순백의 화강암을 마치 흰 떡 주무르듯 자유자재로 다루어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석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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