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전쟁 BalkanW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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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전쟁(Balkan Wars)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인 1912년부터 1913년까지 발칸반도에서 일어난 두차례의 전쟁으로 제1차 발칸전쟁은 발칸동맹국(불가리아, 그리스, 몬테네그로, 세르비아)과 오스만 터키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이 전쟁으로 오스만 터키는 유럽지역의 거의 모든 영토를 잃었다. 제2차 발칸전쟁은 오스만제국에서 획득한 마케도니아, 트라키아 지역의 영토 분할 문제를 둘러싸고 발칸 동맹국 간에 일어났다.
1) 발칸문제-당시의 국제정세
프랑스와 독일이 모로코(모로코 사건)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을 즈음 러시아와 오스트리아는 발칸반도에서 다투고 있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다 같이 러시아의 범 슬라브 민족주의를 반대하였다. 독일의 반대동기는 대체로 경제적인 것이었다. 산업화된 독일은 그 경제권을 발트해로부터 페르시아 만에까지 뻗쳤으며, 터키제국의 수탈가능성을 중요시해서 1902년 콘스탄티노플에서 바그다드, 그리고 다시 그곳에서부터 페르시아만의 바스라(Basra)에까지 철도를 부설하려고 하게 되었다(바그다드 철도). 여기에 비해서 오스트리아의 동기는 주로 정치적인 것이었다. 복합민족국가인 오스트리아-헝가리 2원제국은 그 안에 수백만의 슬라브 민족을 포함하고 있었으므로, 만일 러시아가 지원하는 세르비아의 부흥운동이 성공한다면 많은 인구를 상실하게 될 것이었다. 세르비아는 그 인구가 슬라브족이 압도적이었으며 러시아를 ‘큰 형의 나라’로 보고 있었다. 세르비아의 애국자들은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있는 보스니아나 헤르체고비나를 함께 통합한 대(大)세르비아를 세우는 것이 꿈이었다. 이꿈의 실현이 오스트리아 제국의 붕괴를 의미할 것은 명백하였다. 이리하여 주로 자체방위의 목적을 가진 오스트리아 측은 러시아의 범슬라브주의가 더 위험한 정도로까지 성장하기 전에 저지해야 했다.
그리하여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의 의도를 앞질러서 1908년 터키 청년당의 혁명을 계기로 하여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합병해 버리고 말았다. 이 결정은 1908년 보헤미아에서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대표들간에 이루어졌다. 러시아는 이 비밀 협약에서 보스포러스(Bosporus)의 점령을 승인받았다. 그러나 오스트리아는 병합 후에 러시아의 요구를 모르는 체 하였으므로, 그 결과 국제관계의 위기가 초래되었다. 러시아는 오스트리아의 외교적인 속임수에 격분하였으며, 한편 세르비아는 러시아의 세력을 등에 업고 이 지역의 통합을 꿈꾸고 있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의 행동을 비난하며 곧 전투에 임할 태세까지 취하였다. 이로써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범 게르만주의와 세르비아, 러시아의 범 슬라브주의의 대립이 한층 격화되고 있었다. 러시아는 프랑스와 영국에 지원을 호소했으나 두 동맹국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던 반면, 독일은 공공연히 오스트리아를 무력지원할 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선언하였다. 러시아는 일본과의 패전에서 아직 회복되지 않았으므로, 독일-오스트리아의 연합군을 단독으로 맞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러시아의 굴복과 세르비아의 무력 속에 사태는 그 이상 진전하지 않았지만 발칸분쟁의 씨앗은 이미 내포하고 있었다.
2) 발칸동맹(Balkan League)의 형성
터키와 이탈리아간의 트리폴리 전쟁(1911~1912)은 터키의 약체를 또다시 세계에 드러냈을 뿐 아니라, 앞으로의 발칸전쟁을 잉태하고 있었다. 발칸 제국들은 발칸의 터키영토를 때늦기 전에 서로 차지하려고 하였다. 이와 더불어 보스니아의 위기 이래 러시아의 발칸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고, 오스트리아의 발칸 진출을 견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써 러시아는 발칸제국 동맹체제의 형성을 지원하였다. 즉 러시아의 후원하에 발칸에 있는 불가리아와 세르비아는 터키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경우 얻게 될 영토를 분할하기로 비밀조약을 체결하면서 두 나라의 동맹(1912년 3월)은 이루어졌다. 그 해 5월에는 다시 불가리아와 그리스간에 동맹이 이루어졌으며 후에 몬테네그로가 가입함으로써 4개국간의 동맹(발칸동맹-불가리아,세르비아, 그리스, 몬테네그로)이 이루어졌다. 4국간의 동맹에서는 모두가 상호 영토보장을 약속하고 외부세력의 침략에 대해서는 러시아의 판단에 의존하여 러시아의 반대가 없으면 공동으로 군사행동을 취할 것을 약속하였다. 원래 러시아는 이 발칸동맹을 반(反)오스트리아동맹으로 할 의도였으나, 발칸 제국은 그보다는 투르크 제국에 대항하여 발칸반도에 있는 투르크의 영토를 획득하려는 데에 그 목적을 두었다.
3) 제1차 발칸전쟁(1912년 10월~1913년 5월)
1908년 터키에서 일어난 청년터키당의 혁명 결과는 중앙집권적인 정부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불가리아와 세르비아는 마케도니아를 분할하여 점령하고 있었으며 1912년 알바니아와 마케도니아에 반란이 있었다. 8월에는 알바니아에 군비권과 자치권을 허용하게 됨에 따라 이에 대한 열강의 간섭은 시작되었고 여기에 알바니아에 특수이익을 지닌 몬테네그로의 대(對)터키행동이 비롯되었다. 발칸동맹국은 터키가 이탈리아와의 전쟁에서 어려움을 겪자 이를 기회로 터키에 전쟁을 선포했다.
1912년 10월 8일에 알바니아의 자치권 문제를 놓고 몬테네그로가 터키에 선전(宣戰)함으로써 제1차 발칸전쟁은 시작되었다. 터키는 10월 17일에 불가리아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고, 다음 날 그리스가 터키에 선전포고했다. 이에 따라 동맹국들인 불가리아, 세르비아, 그리고 그리스도 가담함으로써 발칸의 4국동맹 대 터키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열강들의 예상과는 달리 터키는 동맹군에게 큰 손실을 입었고, 콘스탄티노플 근처에서 최후의 방어를 전개했다. 세르비아는 10월 26일에 스코페를 획득했고, 그리스는 11월 8일에 테살로니카(살로니카)를 점령하였으며 알바니아는 11월 28일에 독립을 선포했다. 결국 터키는 패전을 거듭하여 불가리아를 통하여 동맹국에게 휴전을 요청하였고, 그 결과 12월 휴전이 성립되었으며 12월 16일부터 런던에서 강화회의가 시작되었다. 런던회담에서 발칸 국가들은 터키가 유럽에 있는 대부분의 영토를 포기할 것과 전쟁 배상금을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강화담판이 진행중이었던 1913년 1월에 다시 청년 터키당의 쿠데타로 인하여 터키의 내각은 경질되고 2월 3일부터 전투는 재개되어 5월 3일까지 계속되었다. 이 동안 그리스는 이오안니나(얀니나)를, 불가리아는 아드리아노플(지금의 터키 에디르네)을 장악했으며, 몬테네그로는 스쿠타리(지금의 알바니아 스흐코데르)를 정복했다.
1913년 5월 20일에 런던에서 두 번째 회담이 개최되어 전쟁은 5월 30일에 조인된 런던 조약으로 끝났다. 이 조약으로 터키는 유럽에 있는 영토를 거의 잃었다. 세르비아는 마케도니아의 광대한 지역을, 불가리아는 아드리아노플과 에게해로 연결된 지역을 차지했고, 알바니아가 탄생했다. 그러나 긴장은 계속되어 제2차 발칸전쟁이 일어났다.
☞ 런던조약(1913년 5월 30일)
제1차 발칸 전쟁을 종결시키기 위해 발칸 제국 동맹과 터키사이에 체결된 조약이다. 이 조약으로 터키는 그리스세르비아불가리아에 트라키아 에게해 연안지역과 크레타섬을 할양하게 되어 콘스탄티노플 주변의 작은 지역을 제외하고는 유럽에 있던 영토를 거의 상실하였다. 이 조약에서 세르비아가 커지는 것을 반대한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의 지원을 받아 알바니아를 창설하여 세르비아가 아드리아해연안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는데 성공하였다. 터키는 유럽의 땅에서 밀려났고 마케도니아는 분할되었으며, 알바니아는 터키의 종주권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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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차대전과 동북아
  • 전쟁이 일어나게 되고 이탈리아가 승리하게 되고, 로잔느 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모로코와는 달리 트리폴리의 상실은 오토만 제국의 분할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이것은 곧 발칸 반도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가디르 사건의 영향으로 이제 국제 분쟁은 평화적인 수단으로 해결 될 수 없다는 의식이 만연하게 되었다. 열강은 다시 군비경쟁에 몰두하게 되었고 동맹국 간에는 군사협력이 증진되었다. 이와 같이 군비증강에 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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