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의 남진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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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광개토대왕의 남진정책
1.광개토대왕은 누구인가?
재위기간에 영락(永樂)이라는 연호를 사용했으므로 영락대왕이라 일컬어졌으며, 사후의 시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다. 본명은 담덕(談德)인데, 중국측 기록에는 안(安)으로 전한다. 고국양왕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체격이 크고 뜻이 고상했는데, 386년(고국양왕 3) 태자로 책봉되었다가 부왕의 사후 즉위하였다. 재위기간 동안, 비록 그 구체적인 내용은 《삼국사기》와 〈광개토왕릉비〉의 전하는 바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지만, 시호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고구려의 영토와 세력권을 크게 확장시켰다.
2.광개토대왕의 남진정책
<이유>
1) 원한
- 사면이 적으로 둘러싸인 고구려는 예부터 싸움이 잦았다. 이때 백제의 근초고왕이 황해도지역으로 북진하였다. 경기만을 장악하고 황해중부 해상권을 획득해 일본열도와 한반도 중부이남, 그리고 중국으로 이어지는 광범위한 교역망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백제 중심의 국제질서로 재편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구려와 백제는 정면 충돌을 하였고, 결과는 고구려의 좌절로 일단락 되었다. 특히 그의 할아버지인 고국원왕이 평양까지 치고 올라온 근초고왕이 이끄는 백제군과 싸우다 화살에 맞아 사망하였다. 이같은 시기에 광개토대왕이 등극하였다. 그렇게 백제와의 싸움에서 참패한 고구려에게 백제는 반드시 극복해야하는 적이 라는 사실이 광개토대왕에게 각인된 것이다. 고국원왕의 사망 후 소수림왕은 백제 공격을 시작으로 남진 정책을 계획하게 된다.
2) 통일의지.
- 고구려의 영역확장노력은 광개토대왕 이전에도 활발히 전개되었으나 광개토대왕대에 이르러서는 민족의식이 태동과 함께 세계를 통일하기 위한 정복활동이 열정적이고 왕성하게 된다. 광개토대왕릉비문에서 수시로 언급되는 사방과 사해는 어느 한 나라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나라를 포함한 넓은 공간을 뜻한다. 그러므로 사방과 사해에는 중심국을 설정하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그 중심국은 공간적으로 중앙이라는 의미와 함께 주변 다른 나라에 비해 우월한 가치를 지니며 정치적으로도 상위에 있다는 관념을 내포하고 있고, 여기에서 그 중심국은 당연히 고구려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광개토대왕은 자신의 천하관인 고구려는 세계의 중심국이며 자신은 천하의 주인이라는 너무나 합당한 명분에 의하여 세계통일을 위한 정복전쟁을 수행해 나간 것이며, 그 결과 주위의 여러 사람들을 복속의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3) 실질적 농지확보에 따른 원활한 식량공급
- 고구려는 산지가 많고 날씨가 추워 주식인 벼를 재배하기에 알맞지 않은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농사보다는 수렵과 채집이 발달하였다. 이와는 반대로 백제 지역은 기름진 한강유역을 차지하고 있었고, 우리나라의 최대 곡창지역인 금강이 그들의 중심지였다. 아무래도 고구려인은 백제의 이러한 자연환경을 탐내게 되었고 광개토대왕의 남진정책에 맞물려 백제를 정복하게 되었다.
4)황해 해상권의 확보.
- 고구려 계통의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는 함안, 고령 등지는 가야지역이었다. 그 당시 가야지역은 일본열도로 건너가는 출구이자 교섭 창구였다. 이렇게 가야를 복속 시킨것은 고구려가 일본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대왕 14년에는 백제와 왜의 연합군이 황해도지역 인 대방계를 침입했으나 대왕의 친정군이 수군을 거느리고 궤멸시켰다. 이러한 상황과 동아지중해의 역학관계를 고려할 때 고구려는 이미 일본열도에 진출했을 가능성이 있다. 대왕 18년(실성왕 7년),신라는 대마도를 정벌하려다 중지하였다. 이같은 사실은 당시 고구려군이 신라 영내에 주둔해 있을 가능성으로 보아 공조체제가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이렇듯 광개토대왕은 전통적 육지질서를 기반으로 새롭게 성장하는 해양질 서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동아지중해 내부의 각 국을 연결함으로써 자국 중심의 거대한 망(중핵)을 구성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황해 해상권를 확보함으로써 대륙의 남부와 한반도 북부, 황해중부 이북의 해양에 걸쳐 있는 동아지중해의 중핵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1,600년 가까이 만주벌에 서 있는 광개토대왕비. 글자 하나하나는 21세기를 맞으면서 우왕좌왕하는 후손들에게 해양력의 강화와 국제질서 재편전략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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