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의 제도 성과 개신교의 제도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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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제도의 문제점이 부각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몇 세기 전부터 있어온 문제인 것이다. 이 문제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계제도에 대한 올바른 정의가 필요할 것이며, 역사적으로 교계제도의 문제점들이 어떻게 나타났는지에 대해서도 고찰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거기서 지금의 문제들까지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계제도에 관하여
원래 이 ‘교계제도’라는 말은 6세기경 디오니시오가 교회질서를 구별하기위해 이 개념을 사용하였다. 그는 교회질서를 성직신분과 평신도의 위계로 나누었다. 그리고 그는 성직자들의 위계질서가 평신도들의 위계질서보다 높은 위계질서라고 보았다. 이러한 개념은 중세를 거치면서 발전, 확대되어 교회의 전문 용어로서 일반화되어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는 교회 내적으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공의회 본질적인 의미를 재발견하고 재해석하기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천상질서의 지상실현, 혹은 교회의 본질적 내용을 대변하는 말로 확대해석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다. “교계 제도”, 한국가톨릭대사전1권, 한국교회사연구소, 1999, 567참조
공동체의 삶을 이루는 은사와 관련하여 제도화되지 않은 직무들이 성서안에서 다양하게 발견된다. 이는 공동체이 구성원들, 믿는이들 누구에게나 한번 혹은 일정 기간동안 부여될 수 있는 영의 은사들(chsrismata)이다. 그리고 초대교회 공동체들은 이러한 일반적이고 자유로운 영의 은사를 통해 생동감과 활력을 지니고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동체 안에서 자유롭고 무분별한 은사를 주장하는 이들이 나타나는 것을 막을 수 없었고, 그에 따른 공동체의 피해 역시 적은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은 자유로운 영의 은사와 작용을 식별하고 감독해야하는 필요성을 요구했다. 이러한 일을 위한 권한과 책임이 사도들에게 주어지게 되었고 그 이후의 시대에는 제도화된 직무(특히 주교직)를 통해 그 권한과 책임을 위임하고 전수하게 되었다. 이런 점이 자유로운 영의 은사와 제도화된 직무의 은사 사이에 상존하는 미묘한 갈등요인을 감지하게 한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두 은사들이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성장을 위해 상호 보완되고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필요와 당위를 절감케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위의 책, 568
잘못 이해된 교계제도
그러나 중세를 거치면서 성서에서 모든 믿는 이들에게 선사된, 생동감 넘치는 영의 현존으로 증언되는 교회직무의 보편성과 역동성은 제도화된 직무은사를 일방적으로 강조하게 되면서 상당부분 교회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대신에 경직되고 제도화된 직무의 절대성과 우월성만이 전면에 부각되는 역작용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러한 중세의 경향 때문에 교회의 직무는 교계적 직무의 서열이나 교회의 구성원들 가운데 신분의 구분을 의미하는 말로서의 ‘hierarchia와 동일시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인식된 교계제도는 더 나아가 천상의 제도를 직접 현존시키는 것이요, 교회가 바로 그 교계제도임을 주장하가도 하였다(Clericalism). 그리하여 이런 교계제도에 관한 이해는 16C초 종교개혁과 함께 커다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트리엔트공의회는 교계제도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기존 입장을 정리하고 또 교회의 입장을 정리하고 또 교회의 제도적 본질을 교의적으로 보충하고 더욱 분명히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정의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개최될때까지 지속되었다. 위의 책, 568
그리하여 이러한 점들이 더욱 강조되고, 성직자들의 특권의식이 나타나자, 급기야 ‘성직주의(clericalismus)’라는 말까지 나타났다. 교황권 옹호론자들은 국가적이거나 지역적인 수준에서 교황·주교·사제들의 의향에 시민정부들이 순명하도록 만들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이러한 생각에 반대하던 반 로마주의자들은 성직주의라는 용어를 ‘성직 권력, 성직 기술, 성직 압제, 땡중, 교회 빈대’등과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하였고, 소외와 불안을 조성할 만한 성직자들의 경향을 가리킬때도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따라서 성직주의라는 용어의 의미가 모호하지만 일상적으로는 그 말이 뜻하는 여러 가지 도덕적인 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비난용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평신도들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고, 여러 국제정세, 교회지도자들의 잘못으로 교회의 위상이 손상되자 깊은 자기성찰을 했지만, 성직자들은 여전히 면책권을 요구하고 특권을 행사하며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으로, 또 평신도들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자신들만의 이익을 증대시키려고 교리를 이용하여 권력이나 재물을 탐하는 자들이 많았다. 또 본당 사목자 가운데는 마치 “일정한 무리들의 두령”인 양 처신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래서 성직자들의 이러한 행태 즉 자신들에게 주어진 특권을 남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할 때의 형태까지도 성직주의라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이렇게 처신하는 성직자들은 평신도들로부터 성직주의에 젖어있다고 비판을 받게 되면 그때마다 흔히 신적 권위에 근거한 성직 제도와 교계제도를 근거로 자기변호를 하였다. “성직주의”, 한국가톨릭대사전7권, 한국교회사연구소, 1999, 4809-4810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한 교계제도의 새로운 이해
이랬던 교계 제도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커다란 전환점이 된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였다 이 공의회는 교계제도 안에 주어진 직무들, 즉 교황·주교·신부·부제직의 본질을 성서적 성찰에 근거하여 봉사직으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그 직무들의 최우선 과제가 교회 공동체의 하나됨과 구원 중재를 위한 복음 선포에 봉사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결국 교계제도는 일치의 상징이요 복음의 정통성을 보전하기 위한 도구(instrumentarium)이다. 공의회는 사도직이 그리스도가 부르신 모든 이들(평신도)에게도 보편적으로 주어진 깃임을 강조하면서, 교회 구성원들의 이원적 신분 구조나 질서를 본질적으로 거부하였다 그리고 평신도들 역시 각자 고유하게 선사된 영의 은사에 따라 사제직, 왕직, 예언자직에 불리웠고, 그 직무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교계 제도”, 한국가톨릭대사전1권, 한국교회사연구소, 1999, 568
아직도 남아있는 성직자 중심주의, 그리고 우리의 과제
하지만 그 성직자 중심주의는 아직도 남아있다. 원칙적으로 성직자 중심의 교회는 극복되었다고 하나, 실천적인 면에서의 평등화는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평신도조차 자신들을 여전히 교회의 변두리층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반모임은 평신도의 모임이지만 본당의비대화와 그로 인한 본당신부의 과중한 성무를 덜어주기 위해 평신도가 협조해야 한다는 식으로 운영되어 그 근본에는 성직자 중심의 사고가 짙게 자리하고 있다. 반모임을 주관하는 그룹은 평신도가 아니고 성직자이며, 이 모임을 교육시키는 자 또한 성직자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강조한 하느님 백성의 교회론이 실천되지 못하여 성직자는 하느님 백성 위의 ‘지휘관’이나 ‘조종자’로 군림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물론 성직자 중심주의의 탈피가 평신도 중심주의로 전개되어서는 안된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중심주의’의 주역만 바꿀뿐 그 구조는 벗어나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되기 때문이다. ‘본당신부도 교회다.’, ‘주교도 교회다.’라는 명제를 약화시키거나 배제시킴이 없이 평신도의 교회성(‘평신도도 교회다.’)을 찾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민, “성직자중심과 남성중심의 교회에 관한 비판적 고찰”「신학전망」110, 1995, 43
앞에서 말한 사도직의 동등성은 공의회 이후 전 영역에 걸쳐 행해지는 시노두스의 요소가 큰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그 대가도 컸다. 항상 지도받고 인도해주기만을 바라던 수동적인 공동체는 이런 근대문화구조의 도전에 익숙치 못하였고, 직무자들도 교회의 공동체 삶과 직무의 영적인 권한을 지난날의 군주귀족주의, 봉건주의, 절대주의가 아니라 현대의 민주주의와 연방제도의 긍정적인 체험을 살린 차원에서 한 데 묶는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들은 여전히 독재적일 때가 많았고, 설사 민주주의식으로 한다 해도 일치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교회는 군주제도일 수 없으며 민주주의도 아니다.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는 공의회 이수 민주주의를 강조한 급진적인 사고가 나오는가 하면, 이를 하는 데서 다시 보수주의로 돌아서 법을 강조하는 군주적 자세를 보이는 데서도 볼 수 있다. 이들은 민주적이고 연방적인 구조형태를 유비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교회를 신비로 보게 하는 데에 방해가 된다고 본다. 마치 교회의 군주적이고 귀족적이고 절대주의적 행위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어쨌든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평등성을 논할 수 없다. 이것이 과제이다. 위의 책, 51~52 참조
하지만 아직도 교계제도는 필요하다. 교계제도가 처음으로 필요했을 때는 잘못된 카리스마를 가려내기 위해 필요했던 것처럼, 지금도 그러한 것들을 가려내기위해 필요하다. 또한 일치의 측면에서도 필요하다. 절대로 하느님을 혼자서는 믿을 수 없다. 혼자 성서를 읽고 하느님을 믿는다 해도 그 성서 안에 하느님을 먼저 믿었던 사람들의 신앙이 녹아들어가 있다. 그러한 것이 교회의 힘이요, 정신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회의 전통을 지키고 가꾸는 데에 성직자들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교계제도의 필요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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