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에서 발견한 ‘관계 맺기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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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에서 발견한 ‘관계 맺기 방식’
<삼국지>라고 하면 난 항상 아버지와 오빠가 즐겨 읽던 고전전쟁무협소설로 단정 짓곤 했다. 그러한 종류의 이야기는 내게는 의미 없고 텅 빈 것이었다. 언제나 나의 관심은 ‘사람’이었고 응당 문학작품 속에서는 인간을 더 세세하고 민감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삼국지, 수호지 같은 스케일이 큰 역사 고전 전쟁 소설들은 내 관점에서 ‘문학’이 아니었다. 남성들의 지배욕과 영웅 심리를 자극하는 ‘그들의 유희’로 여겨졌다.
그랬기 때문에 10권이나 되는 삼국지를 모두 읽는 것은 나에게 무엇보다 쉽지 않는 숙제였다. 오로지 ‘내 전공에 책임을 지자’는 일념으로 오빠의 책꽂이에 꽂혀 있는 이문열 삼국지 심드렁하게 한 권 한 권을 빼서 읽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매우 뜻밖에도 이 ‘부담스러운 과제’를 하면서 나는 인간에 대한 지평이 좀 더 뚜렷해지고 선명해짐을 느꼈다. 매우 독특하고도 전형적인 캐릭터들의 묘사에서 나는 -이전의 여성적인 혹은 현대적인 문학작품에서와는 또 다른 양상으로 - ‘나’를 발견하기도 했고 잘 알지 못했던 남자들의 세계를 염탐하는 듯한 스릴마저 느낄 수 있었다. 그중 내가 특히 집중했던 부분은 관계에 대처하는 인물들의 자세였다. 그중 유비와 동탁이 나의 흥미를 끌었다.
우선, 유비에 대한 나의 감탄은 10권 전권을 읽는 내내 지속되었는데- 물론 삼국지가 유비의 입장에서 쓰여 졌다는 사실도 한 몫 했겠지만-이러한 인간상에서 난 나에게 없는 리더의 면모를 본 까닭이다. 유비는 뛰어난 재능을 갖춘 자가 아니다. 문에서도 무에서도 그는 완벽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나 그는 리더였다. 그의 주위에 언제나 훌륭한 조력자들이 있었던 까닭이었다. 문(文)에는 손건, 미축, 관용이 있고 무(武)에는 관우 장비 조운과 같은 탁월한 인재들이 그를 보좌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이러한 쟁쟁한 인물들을 끄는 유비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난 이 질문을 함과 동시에 답을 알 수 있었다. 유비와 같은 사람이 내 주위에도 몇 있기 때문이다. 내 능력을 옳은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게 이끌어주는 사람, 방향을 제시해주는 스승님이나 믿음이 가는 친구가 그들이다. 내 주위의 이러한 인물들과 유비는 공통적으로 언제나 낮은 자리에서 재능 있는 자들을 섬기고 존중하는 자세로 임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방향을 제시해주는 리더의 역할을 서슴지 않는다. 유비의 이러한 면모는 제갈공명의 등장과 함께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삼가초려의 일화는 당연하거니와, 공명을 얻은 위에도 유비는 모든 일을 공명에게 맡기고 자신은 무위, 무책으로 일관한다. 즉, 제갈공명의 장식품의 역할을 자처했다는 것이다. 오직 그는 인(仁 )을 베풀고 덕(德)을 쌓는 데에 힘썼다. 그는 공명의 지혜와 지식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을 비우는 데에 전혀 인색하지 않았다.
난 요즘 우리 대학생들의 모습과 유비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펙’에 열정을 쏟는 요즘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유능하다. 학점, 영어, 교외활동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삼국지 식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낮에는 무(武 )에 힘쓰고 밤에는 책을 읽으며 문(文)을 갈고 닦는 겪이다. 누구보다 나 자신이 이런 삶을 최선에 두고 힘쓰던 학생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 채우는데에 급급해서 다른 사람의 재능과 가치를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되어있진 않을 걸까? 유비처럼 타인의 능력을 받아들이고 섬기기 위해서는 내 안에 여유와 빈 공간을 조금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빈 공간에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존경하는 마음, 덕을 채워야 한다는 것을.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고, 내가 갖지 못한 능력을 지닌 어떤 이의 도움으로 직면한 문제를 더 탁월하게 해결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고 하니 말이다. 유비의 소리 없지만, 영향력있는 활약을 보며 얼마 전에 보았던 문구가 생각이 났다. “모든 사람이 천재가 되거나 하버드에 갈 수는 없지만 누구나 정직하고 바른 사람이 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난 내가 제갈공명처럼 모든 방면에 타고난 천재성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유비와 같은 성품은 지금부터 노력할 가치가 있고 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동탁은 또 다른 방면으로 나를 흥미롭게 한 인물이었다.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펼친 동탁의 탁월한 전략들은 나를 매우 흥분시켰지만 유비와 대조되는 그의 탐욕스런 ‘관계 맺기 방식’은 인간의 삶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였다. 내가 미래에 목표로 하고 있는 분야가 ‘전략적 크리에이티브’(다른 말로 마케팅, 광고, 홍보 분야)와 관련된 분야라서 그런지 삼국지에 등장한 동탁의 전략은 나의 감탄을 자아내었다. 첫 부분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불과 삼천인 병력을 더 많아 보이게 하기 위해 동탁은 백마사에서 낙양성으로 매일 매일 병사들로 하여금 왔다갔다 하게끔 한 것이었다. 낮에 낙양성으로 당당하게 들어갔다가 밤에는 비밀리에 백마사로 되돌아가게 하고 다시 해가 뜨면 낙양성으로 행진하게 하는 일을 십일간이나 지속했다고 한다. 그래서 성 사람들로 하여금 성안에 동탁군으로 가득차있는 것 처럼 느끼게 하였다. 이는 오늘 날 언어로 표현하자면 아주 창의적인 광고 기법으로 ‘병력이 많은 동탁군’이라는 굉장한 브랜드 이미지를 수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동탁의 부하 이숙이 용맹한 여포를 동탁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설득하는 장면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숙은 여포를 설득하며 이렇게 말한다.
“자네의 재주는 하늘을 뒤흔들고 바다를 가라앉힐 만한데 누가 존경하여 흠모하지 않겠나? 마음만 먹으면 주머니 속의 물건 꺼내듯 부귀와 공명을 누릴 수 있을 것인데 그게 무슨 말인가? 별로 내키지 않으면서 남의 밑에 있다니?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 깃들이고 현명한 신하는 그 주인을 골라 섬기는 법일세. 때가 와도 일찍 알아보지 못하면 후회해도 이미 늦을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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