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중동과 미국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 있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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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과 미국,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 있는 우리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알카에다의 911테러에 테러와의 전쟁을 세계적으로 선포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아프가니스탄으로, 이라크의 침공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911테러 이후 테러는 줄어들었는가, 적이 누구인지조차 불분명한 이 전쟁에 끝은 어디인가, 궁극적으로 세상은 더 안전해졌는가. 선뜻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은 미국과 이라크분쟁뿐 아니라 바그다드에서 런던등지에서 테러위험들이 세계인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미국과 중동과의 전쟁의 역사는 1960년대에 시작한 월남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 대 공산주의 봉쇄정책의 일환으로 월남전을 택했다. 그 후 쿠웨이트가 원유 과잉 공급해 이라크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후세인은 쿠웨이트를 침공하고 그로 인해 미국과 다국적 연합군은 걸프전을 일으켰다. 911테러이후 미국은 신병인도를 거부한 빈 라덴에 보복적인 행태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2003년에는 알카에다의 축출과 대량살상무기를 근거로 미국과 영국연합군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러나 미국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가 아니라 원유확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오폭으로 인해 수많은 이라크 민간인의 사상이 늘어감에 따라 비난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이번 서양사 수업의 마지막 주제인 ‘미국과 중동’이라는 내용을 통해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온 유럽중심주의 사관의 극복이라는 사한을 마음에 두고 현재 가장큰 이슈를 마지막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우선 우리와 가깝고도 먼 관계인 미국의 일반적인 입장을 먼저 살펴보면, 중점적인 사항을 4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911테러와 석유문제, 그리고 후세인독재와 관련된 미국의 입장, 중동국가들의 인권문제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첫 번째로 석유문제와 관련해서는 OPEC이라는 석유수출기구에 대해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OPEC이란 국제 석유자본에 대한 발언권을 강화하기 위해 결성한 조직으로써 그 결성국가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베네수엘라, 이라크, 이란으로써 세계 5대 석유 생산. 수출국이다. 초기결성 당시에는 원유공시가격의 하락을 저지하고 산유국 간의 정책협조와 이를 위한 정보 수집 및 교환을 목적으로 하는 가격카르텔 성격의 기구였으나, 1973년 제1차 석유위기를 주도하여 석유가격 상승에 성공한 후부터는 원유가의 계속적인 상승을 도모하기 위해 생산량을 조절하는 생산카르텔로 변질되었다. 회원국들은 원유가격 인상과 더불어 석유시장 국유화로 말미암아 수입(收入)이 급속히 증가했다. 거액의 재정자금을 보유하게 된 산유국들은 사회경제개발 사업을 가속화함과 동시에 축적된 외화의 대부분을 국제금융시장에 단기자금으로 공급하여 기존의 국제금융질서를 재정립할 만큼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현재는 11개국이 OPEC에 가입한 상황이다.
이러한 사실과 관련하여 미국은 자신들이 이라크를 쳐서 그 유전을 확보하려 한다는 주장에 반발한다. 자신들이 그동안 OPEC회원국들이 휘두른 횡포에 피해를 본 비 회원국들의 입장을 대변하여 그 횡포를 제한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911테러라는 아주 끔찍한 사건을 지금의 미국과 이라크 상황에 결부시켜볼 수 있다. 테러로 인해 미국이 입은 피해는 수천 명의 인명피해와 수억 원의 경제적 피해만으로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이다. 일단 단순히 생각해봤을 때 이러한 피해정도는 어느 국가라도 처절한 응징을 할 만한 정도라는 것이다. 그리고 후세인독재를 미국이 저지하려는 이유도 사실 그만큼 후세인이 행한 폭력의 수도 엄청난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다. 후세인, 그는 혁명사령평의회 의장, 총리 및 기타 직위를 겸임하면서 대규모 비밀경찰을 창설하여 그의 지배체제에 대한 국내의 반발을 완전히 무마시켰으며, 국민들로 하여금 도처에서 그를 개인 숭배하도록 만들었었다. 그 후 샤트알아랍 수로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기로 한 후세인은 1980년 9월 이란 침공을 개시했으며, 1990년 8월 그의 군대는 인접국가인 쿠웨이트를 기습 공격했다. 후세인은 표면적으로 이라크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쿠웨이트의 방대한 석유 수입을 이용하려 한다고 밝혔으나 그의 쿠웨이트 점령은 전 세계적으로 신속한 대이라크 무역 제재조치를 유발시켰다. 또한 후세인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미국 주도의 대규모 군사력이 증파되고,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을 비난하면서 그러한 불법 점령을 종식시키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국제연합(UN) 결의안이 통과 되었는데도 쿠웨이트에서 그의 군대를 철수시키라는 국제여론을 무시했다. 이러한 그의 행적은 그 내부사정을 잘 알지 못하더라고 일단 겉으로 드러나 부분만 봐도 가히 폭군이라 할 만한 사람임은 틀림없다. 이와 더불어 마지막으로 이라크 무장단체의 협박과 외국인을 이용한 인질행위로 비춰지는 인권문제의 실상을 미국이 전쟁으로써 해결해 보겠다는 식이다. 단지 미국에서 외치는 부분이 전부다 사실이며 이로 인해 전 세계의 석유문제와 인권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그래서 이와 반대로 중동 쪽의 시각에서 이 문제를 다시한번 제기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중동의 입장에서는 같은 내용일지라도 전혀 다른 시나리오가 작성될 수 있다.
2000년 9월 11일 하루 종일 텔레비전 안에서는 우리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았던 장면이 계속 반복하여 방송되고 있었다. 바로 비무장단체인 알카에다가 미국 뉴욕의 상징인 쌍둥이 빌딩을 테러한 사건인 ‘9.11테러’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세계는 중동과 미국의 갈등관계에 이목을 집중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부와 권력을 가진 미국의 체면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로 인해 미국은 대량살상 무기의 존재를 내세워 이라크 침공을 감행했다. 우리나라도 한동안 이라크 파병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거웠다. 하지만 과연 미국은 정말 대량살상무기의 존재가 세계평화를 위협하기 때문에 전쟁을 일으켰을까? 이게 사실이라면 ‘명분 없는 전쟁‘ 이란 말은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중동은 세계 산유량의 70%를 소유하고 있을 만큼 석유자원이 풍부한 나라이다. 미국은 이런 석유자원의 지배권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끊임없이 중동의 갈등을 부채질하는데 큰 몫을 행사하고 있다는 게 세계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더군다나 미국은 팔레스타인이나 시리아와 같은 중동의 몇몇 나라들을 반인권주의가 팽배하고 독재 권력에 의해 피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미국은 중동의 몇 나라를 미국이 이끌어 나가야하는 선도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미국은 군사력을 충분히 이용해서, 외교가 안 먹히면 무력으로 밀어붙여 패권을 확립하려고 한다. 이러한 전략은 중동 뿐 만이 아니라 북한에까지 적용되고 있다. 세계의 대표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미국과 영국이 중동에서는 되려 반민주적인 독재주의를 행사하려고 하는 것이다.
제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일방적으로 강대국들의 편의에 의해 국경이 나눠지게 된 중동은 아직까지도 갈등과 혼란이 뒤섞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친 이스라엘 , 반 팔레스타인 정책으로 중동 분쟁을 더 심화시키고 있다. 특히 레바논 사태에 있어서는 늑장대응 뿐만 아니라 친 이스라엘 편향 정책을 고집해 중동의 화를 키웠다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 이유는 미국이 중동 분쟁의 원인이 헤즈볼라에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이스라엘 편을 들었기 때문이다. 즉각적인 휴전과 평화유지군 파병이 일반적 해법이었지만, 미국은 항구적인 평화, 즉 헤즈볼라의 무력화가 전제되지 않는 한 휴전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평화유지군 파병도 일시적 미봉책이라는 입장이었다. 국제사회가 미국에 발목이 잡혀 아무런 중동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을 때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은 계속해 사망자가 5백명을 넘었고 결국 카나 마을 공습으로 어린이 34명을 비롯해 60명 가까이가 숨지는 사태가 빚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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