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중화인민공화국건국초기의 국가건설과 민주제당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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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재해석-
중화인민공화국건국초기의 국가건설과 민주제당파 1949-1957년(高橋祐三)
1. 문제의 소재
건국 당초, 정권에 참가하고 있던 민주제당파(중국에서는 공산당 이외에도 8개의 정당이 있다. 이들을 총칭해서 민주제당파라고 한다)가 1957년의 반우파 투쟁에서 대량으로 실각된 직접적인 계기는 그 전년의 시작된 백화제방백가쟁명운동(이하에서는 쟁명운동이라고 약칭한다)에서의 공산당비판이다. 이 반우파 투쟁은 공산당 외로부터의 비판을 거절하고, 모택동의 죄경화를 표면화한 사건으로서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연구되어 왔지만, 종래의 현대 중국사연구에서는 모택동의 좌경화를 촉진한 직접적인 원인인 쟁명운동의 언론내용이나, 모택동의 쟁명운동에서 반우파 투쟁으로의 전환과정의 분석에 연구가 집중되었다. 그러나 민주제당파 실각의 원인을 쟁명운동에서의 언론으로만 돌려버리는 것은 그들의 정권참여의 의미를 간과해 버리는 것이라 생각된다.
건국 당초, 공산당은 군사적으로는 국가통일을 과제로 했지만, 사회에서의 정권기반이 미확립 되었기 때문에 정치가 재계인 지식인 등 중화민국기의 각계의 유력자를 갖추고 있던 다른 정당과 함께 연합정권을 형성하여 국가운영을 맡도록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있었다. 이런 국가운영이라고 하는 현실적인 요청이 민주제당파의 정권참가를 필요로 한 것에도 불구하고, 쟁명운동이라고 하는 언론상의 문제만으로 민주제당파를 정권으로부터 제외시키는 것이 가능한가? 여기에는 국가운영 전체 중에서의 민주제당파의 위치에 어떠한 변화가 존재했다고 생각된다.
1949년의 건국 때, 공산당은 이전부터 주장해 온대로 민주제당파에게도 정권의 주요 자리를 제공했다. 민주제당파는 정권의 주요 자리의 약 1/3 정도를 차지했다. 당외의 사람을 등용한 이유에 대해서 “급속하게 생산회복하고 발전시키고, (중략) 중국을 위대한 사회주의국가로 쌓아올리기 위해”, “도시부르주아계급과 민족부르주아계급 중에 대표적 인물이나 지식인, 정치그룹과 단결” 모택동, 「중국공산당제7시중앙위원회제2회총회에서의 보고」, 『모택동선집』제4권, 외문출판사, 1968, p. 488.
한 것이었다고 모택동은 설명했다. 그것이 1957년에 일어난 반우파투쟁에서는 전국에서 55만인의 사람들이 우파분자로 탄압되어 민주제당파 멤버에 있어서는 그 9할 이상이 공직에서 박탈되었다. 이유한, 『회억여연구』하, 중공당사자료출판사, 1986년, p. 838.
이 반우파 투쟁에서 민주제당파에 대해 강경한 조치를 취한 요인에는 모택동 자신의 좌경화뿐만 아니라, 건국 이래의 8년 사이에 정국 중에서의 민주제당파가 맡은 정치기능의 저하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추측된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분석의 시점을 기층레벨에서의 민주제당파의 정치기능에 초점을 맞추어 반우파투쟁 이전에 민주제당파의 정치적 무력화가 진행하고 있던 사실을 밝히는 것으로 하고, 이것이 모택동의 민주제당파에 대한 인식과 연동한 과정을 분석하고자 한다. 반우파투쟁이 건국 이래의 여러 정책에 의해 민주제당파가 정치적으로 약체화하고 있던 결과인 것을 논증하는 시도는 지금까지 없었다고 생각된다. 구체적으로는 제2장에서 민주제당파가 특히 경제건설에서 중시된 상황을 설명하고, 제3장에서 민주제당파의 경제계에 대한 영향력이 저하한 구조를 설명한다. 그리고 제4장에서는 경제부흥을 달성한 후, 공산당 내에서도 민주제당파의 직능성과 인맥을 한층 활용하고자 하는 국가지도자 레벨과, 실질적인 권한을 직장에서 잃은 민주제당파를 경시하는 기층레벨과의 사이에서 민주제당파에 대한 인식에 어긋남이 생기고, 최종적으로는 쟁명운동에서의 민주제당파에 의한 당 비판이 계기가 되어 모택동이 민주제당파에 대한 공격을 결단한 것을 논증한다.
2. 민주제당파의 정치기능과 국가건설의 요구
(1) 국가경제의 위기
장기간에 걸친 전쟁이 인민에게 중대한 위해를 가져왔으며, 경제에 중대한 파괴를 가져다 주었다. (중략) 국가의 수입은 부족하고, 지출은 팽대하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거대한 어려움이다. 모택동, 「1950년의 군대의 생산건설활동참가에 관한 지시」, 『모택동사상만세』(상), 삼일서방, 1976, p. 14.
건국 직후의 1949년 12월에 한 모택동의 이 발언이 당시의 신정권이 직면하고 있던 국가과제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신중국의 성립은 그때까지의 전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에 불과하여 정권당인 중국공산당의 눈앞에는 오랜 전쟁으로 피폐한 국가경제를 부흥시키는 것이 새로운 과제로 가로놓여 있었다. 1949년의 인민정부의 재정적자는 국가지출의 2/3를 차지하고, 전국의 공업생산량은 건국 이전의 59% 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陳明顯 주편, 『新中國四十五年硏究』, 北京理工大學出版社, 1994년, p.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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