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집권기 문사들의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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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무신집권기 문사들의 동향
- 목차 -
1. 머리말
2. 무인집권기 문사들의 성격
3. 무인집권기 문사들의 활동
4. 이규보의 정치사상과 문학사상
5. 맺음말
<참고문헌>
1. 머리말
무인집권기를 일반적으로 표현하자면 무신들에 의해 국정이 주도된 시기라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최충헌 이후 확립된 최씨집권기 이전까지 여럿의 집권자가 등장한 권력다툼의 시기였다. 무신난이 일어난 원인 중 하나로 문신과 무신의 차별이라는 것을 꼽을 만큼 무신난 이후의 문신들에 대한 지위나 권력은 이전시기에 비해 매우 축소됨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최씨집권기 이후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한 측면에서 다시금 문신들을 우대하게 됨으로써 정치에 이들이 다시 등장하게 된다. 이 시기의 문신들의 모습은 앞서 밝힌바와 같이 이전과는 다른 점을 보여준다. 이를 바탕으로 무인집권기라는 상황 속에서 이들이 어떠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활동적인 측면에서는 어떠했는지를 알아보고 특정 인물의 사례를 들어 이를 구체화 시켜보고자 한다.
2. 무신집권기 문사들의 성격
1) 유교 지식인층으로서의 정치이념
무신 집권기 정치에 참여했던 문신관료들은 정국의 주도세력은 아니었지만, 최충헌의 집권과 그 이후 체제안정을 위한 일정한 정치적 역할을 담당했으며 그 일환으로 무신들의 집권체제 구축에 필요한 명분과 정치이념의 제공자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유교 지식인으로서 그들이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 이념은 ‘민본론’과 ‘천명론’이었다. 이 민본론과 천명론은 명종대에 만들어진 ‘18년 조서’와 최충헌의 ‘봉사10조’에 잘 드러난다.
먼저 명종 18년 3월에 내린 조서 이 조서는 《高麗史》의 여러 志에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는 무인이 집권한 이후 사회적으로 격화되던 농민항쟁과 함께 가까이는 그 전해인 17년 6월 조원정, 석린 등 부인들의 난을 겪은 후에 나온 것이다. 박종기, 1990 앞의 글;김호동, 1994 앞의 글. 그러나 조서의 정치적 배경을 보는 시각에는 두 연구의 차이가 있다. 즉 이의민의 명종 17년 조원정, 석린의 난 이후 최고실권자로 등장하면서 민심수습책으로 제기되었다는 견해(박종기)와 반면에 이의민은 명종 14년부터 이미 실권자이고, 이 조서는 그가 명종과 문신 문극겸등을 내세워 민심에 부응하는 일련의 개혁정치를 시행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는 견해(김호동)가 있다.
당시의 가장 큰 사회적 문제는 권세가의 탐학에 의한 민의 유망과 혼란이 거듭되는 정치 상황 이었으므로 이 조서의 내용은 주로 백성의 수탈과 유리 등에 대한 문제제기와 대책 등으로 이루어져있다. 특히 18년 조서에서는 수조권 분급과 관련된 전조의 탈취, 경인이 향읍에서 농장을 만들어 작폐함과 도문승인이 세운 종사에서 공호양인을 사역시키는 문제 등 민생과 관련된 문제를 제기하고 이와 같은 문제의 근원은 향리나 지방관의 불법적 행위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지적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결방안은 주로 일을 맡고 있는 향리층과 불법행위의 수행자들을 처벌하는 미온적인 것이었다. 토지탈점은 지방관과 향리에 의해 실행되었으나 이들이 중앙정계의 무인집권세력과 사적인 인맥으로 연결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해결책은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
반면 최충헌의 봉사 10조는 명종 18년 조서의 일부 내용을 이어 받았으면서도 주로 이 시기 문란해진 관료체제의 재정비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에 따른 이념의 기반은 유교적 천명론이다. 천명에 대한 해석은 민의 뜻이라는 명분을 통해 주로 군주의 수신에 대한 요구로 나타났다. 한편 천명을 받는 주체는 국왕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군주 자신의 행위가 중요했으며 군주 자신은 신료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행위를 검증받아야 했다. 또한 군왕은 도참에 의존하기 보다는 정통 유교 이념에 입각해 정국을 이끌어야 했으며, 유교 정치이념상 군왕은 공적 존재의 상징이기 때문에 사적 기반을 가지는 것이 지양되었다. 봉사 10조에는 이와 같이 천명론을 바탕으로 왕이 유교 정치에 입각한 정치를 하길 바라는 문신들의 요구가 들어있었다. 그러나 당시 명종과 무신세력 대부분은 도참설에 경도되어 있었고, 유교적 관점에서 군주의 수신과 관련한 임무를 맡는 ‘대간’의 활동을 명종 개인이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이념이 실제 정치에 반영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러한 유교적 이념을 바탕으로 한 조서들은 근본을 파고들지 못하는 부분적인 해결책과 임시적 도감을 기반으로 한 실행 방안, 이를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 현실 등으로 한계를 지닌다. 그러나 이 시기 문신들이 제기한 현실문제는 잔존문신 계열의 견해를 대표한 것으로 유교적 덕목을 지향하는 당시 문인들의 정치적 성격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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