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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이탈리아(이태리)의 역사

Ⅲ. 이탈리아(이태리)의 기본정보
1. 공식국명
2. 면적
3. 인구
4. 언어

Ⅳ. 이탈리아(이태리)의 미래주의

Ⅴ. 이탈리아(이태리)의 르네상스

Ⅵ. 이탈리아(이태리)의 언론매체

Ⅶ. 이탈리아(이태리)의 건축
1. 근대 합리주의의 배경
2. 합리주의의 역사적 개념
3. 건축에서의 합리주의
4. 합리주의 건축적 해석

Ⅷ. 이탈리아(이태리)의 산니콜라우스축제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모든 항해자는 자신만의 축복의 섬을 꿈꾼다. Georg Forster는 그의 오타하이티를 발견했고, 계략에 능한 오디세우스는 마찬가지로 유혹하는 미녀들로 무장한 여러 섬들을 경험했다. 괴테가 1787년 3월 나폴리에서 시칠리아로 옮겨가 팔레르모에서 즉시 오디세이의 판본을 구하였을 때, 그 역시 오디세우스를 떠올리게 되었다. 시칠리아 오렌지 숲 속에서 내내 그는 나우시카의 비극을 구상하였다. 한 시칠리아 섬의 딸이 독일인 오디세우스를 기대했는지에 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는데, 『이탈리아 기행』이 개인적인 일 일지라도, 이것은 예컨대 Brydone의 이탈리아 안내서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성적인 호기심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숨겨진 에로틱한 것은 아름다운 밀라노 여인의 이야기처럼 매우 억제되어 나타난다.
“시칠리아가 없는 이탈리아는 영혼에 어떤 형상도 남기지 않는다. 여기에 비로소 모든 것에 대한 열쇠가 있다”라고 4월 13일 팔레르모에서 기록한 글에 나타나 있다. 또 괴테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바이마르와 팔레르모 사이에서 나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진정한 축복의 섬에 대한 이미지는 독자의 눈앞에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나폴리로 돌아오는 여행길에서 배 멀미에 시달리는 새로운 오디세우스에게 “자연의 폭력성과 시대의 음흉한 술책에 대항하는, 그리고 그들 자신의 적대적 분열이 가져온 분노에 대항하려는 인간들의 헛된 노력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여겨질 정도이다. 따라서 자연과 역사, 그리고 인간 행동의 넓은 영역 속에서 더 이상 언급할 만한 것이 남지 않는다. 후에 괴테가 젊은 Felix Mendelssohn을 이탈리아 여행 중 시칠리아에서 지나쳤다는 말을 듣고 그것을 탓하는데, 그래서 혹시 ‘절박하지 않은 그리움’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계속해서 말한다.(1831년 6월 28일 Zelter에게 쓴 편지에 나타나 있다.) “내가 시칠리아에서 끈 마지막 편지나 뒤이어 나폴리에서 쓴 편지에서 이 신격화한 섬이 나에게 얼마나 불쾌한 인상을 남겼는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시칠리아에 대한 불만은 『이탈리아 기행』에서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팔레르모 거리들의 더러움, Plagonien 왕자의 그로테스크한 궁전, 핑계를 대고 Cagliostros의 어머니와 누이를 몰래 방문한 것, 혹은 마지막으로 누구나 결국 너무도 피하고 싶어 하는 메시나 총독의 전제적인 관심이 바로 그것이다. 게다가 고대의 흔적을 주의 깊게 관찰했음에도 불구하고 Johann Gottfried Seume의 여행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마침내 그리스 근처에 왔다는 감격은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괴테는 기독교 건축예술에 관한 중요한 증언을 무시하였거나 최소한 그의 글에서는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음에 틀림없다. 그것에 대해 그는 계속하여 비난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괴테는 실제로 무엇을 관찰하였는가? 위대한 법칙과 연관성, 그리고 세계창조를 추구한 그에게 그만의 관찰을 위한 어떠한 법칙이 있었을까?
『이탈리아 기행』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과 같은 시칠리아에 대한 괴테의 보고는(원본은 그가 없애버렸다.) 바로 이탈리아에서 대체로 그의 현실관찰에 대한 본보기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괴테는 그의 여행기를 개작할 때 수집함으로서의 매일의 일기가 필연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우연한 성격을 전적으로 고수하였기 때문이다. 지리학, 광물학, 기상학, 식물학에 관한 내용이 이 편지들의 전반부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모든 영역에 관한 괴테의 자연과학적 관심은 여기에서 마치 호두 껍데기 속에서처럼 압축되어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장소”라고 말하고 있는 팔레르모의 식물원에서 그는 심지어 ‘원형식물’을 발견한다. “세계정원이 열렸다.” 그가 본 모든 것은 그의 삶의 모델을 위한 원료이다. 하지만 이러한 원료는 각기 이후의 효용이나 가치에 대
참고문헌
김종법(2012), 천의 얼굴을 가진 이탈리아, 학민사
노매드(2009), 이탈리아 내비게이션, 그리고책
안그라픽스 편집부(2010), DISCOVER 이탈리아, 안그라픽스
알레산드로 팔라시 저, 이현철 역(2005), 이탈리아, 휘슬러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저, 박찬기 역(2004), 이탈리아 기행 1, 민음사
윤경민(2008), ENJOY 이탈리아, 넥서스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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