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 제주 4.3민주항쟁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06.10.25 / 2019.12.24
  • 12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1,2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하고 싶은 말
거의 한달을 고생하며 만든 귀중한 자료입니다.
잘 쓰세요~
본문내용
Ⅰ. 전개과정

1. 4.3 사건의 발발 원인

남로당 제주도당부 무장봉기와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미군정의 실정, 관공리의 부패와 경찰의 가혹행위, 서청의 만행 등이 원인이다. 특히 결정적으로 1947년 경찰의 발포로 비롯된 3.1사건과 이에 항거한 총파업 사건이 있다. 제민일보 4.3취재반(1994), 「4.3은 말한다 2」, 전예원, p50
이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1) 3.1사건
1947년 남로당은 제 28주년 3.1절이 다가오자 미소공위의 재개투쟁과 결부시켜 기념대회 개최를 결정했다. 그리고 2월 17일에 관공서를 비롯한 사회단체, 교육계, 유교 등 각계각층 인사들이 참석하여 3.1기념 행사 준비 위원회를 결성한다.
한편 미군정은 3.1절이 다가오자 전국 경찰에 비상 경계령을 내렸다. 그리고 2월 23일 충남북 응원경찰 100여명을 증파하는 등 전국적으로 긴장관계가 고조되었다. 또 시위는 절대 불허한다는 방침 등 4가지 사항을 발표함으로써 행사를 허용하지 않았다. 장두환(1999), 「제주4.3연구」, 역사비평사, p76

4가지 사항은 아래와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3만여명이 넘는 많은 도민의 절대적 지지 속에 3.1절 기념대회는 진행되었다. 관덕정의 제주 감찰청 앞에는 응원경찰과 미군들이 있었고, 그 자리에서 발포사건이 발생하였다. 그 발포는 시위행렬이 다 지나간 후에 이루어졌으며 희생된 사람은 구경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6명의 민간인이 경찰의 총격에 의해 사망했고 8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사실이 밝혀지면서 도민들의 분노는 커져갔다. 그리고 미군정과 경찰은 사태를 수습하기보다는 시위 주동자를 검거하는 일에 주력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제주도당은 평화적인 항의의 수단으로서 전 도 총파업을 전개하자는 대정면당의 건의를 받아들인다.
2) 총파업 사건
3월 10일 제주도청의 파업을 시발로 모든 관공서와 은행, 회사, 학교, 교통, 통신기관등 도내 156개 단체 직원들이 파업에 들어갔다. 미군정은 이러한 총파업을 깨뜨리기 위하여 3월 15일 전남북 응원경찰 222명, 3월 18일 경기도 응원경찰 99명을 증파했다. 그리고 3월 15일부터 파업 주모자 검거라는 명목으로 총파업투쟁위원회를 급습했다. 또한 투쟁위 간부들과 민전 간부들을 연행을 시작으로 4월 10일까지 500명을 검속하였다. 검속된 사람들은 미군정 포고령 제 2호 포고령 제2호 위반 : 무허가 집회 및 무허가 시위
위반으로 5월말까지 진행된 재판에 모두 328명이 회부되었다. 이때 실형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목포형무소에 이감되어 징역살이를 하였다. 장두환(1999), 「제주 4.3연구」, 역사비평사, p81
이러한 무차별 검거와 탄압으로 총파업은 3월 19일에 이르러 거의 끝났다. 하지만 미군정과 경찰은 총파업의 원인과 배경은 무시한 채 제주도는 70%가 좌익정당에 동조자이거나 혹은 좌익정당에 가입해 있을 정도의 좌익 본거지로 규정했다. 즉 좌우의 대립으로 상황을 몰고 갔다.

2. 1948년 4월 3일

4월 3일 새벽 1시를 전후에 한라산과 제주지역 89개 오름에서 봉화가 타올랐다. 무장대와 동조자 1천여명은 도내 24개 지서 가운데 11개 지서 11개 지서 : 제 1구(제주)경찰서 관내 화북 · 삼양 · 조천 · 세화 · 외도 · 신엄 · 애월 · 한림지서와 제2구(서귀포) 경찰서 관내 남원 · 성산포· 대정지서 등
를 일제히 공격하였다. 또한 경찰, 서북청년단 숙사와 독립촉성국민회, 대동청년단 등 우익단체 요인의 집을 습격하였다. 제민일보 4.3취재반(1994), 「4.3은 말한다 2」, 전예원, p23

참고문헌
「4.3은 말한다1,2,3,4」 박세길, 돌베개,1998 /
「제주 4.3사건의 쟁점과 진실」 조남현,돌담,1993 /
「새로쓰는 제주사」 이영권, 휴머니스트,2005 /
「 제주민중항쟁1」아라리연구원 편, 소나무,1988 /
4.3학습 자료 - http://www.bille.pe.kr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 위원회 - http://www.jeju43.go.kr
이제는 말할 수 있다- 4.3제주사건 편
레드헌트 - http://www.hanee.pe.kr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제주 4 3사건]제주 4 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의 중요성, 규정, 제주 4 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의 내용, 시민사회, 제주 4 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의 진상규명운동, 향후 제주 4 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의 개선 과제 분석
  • 제주4․3항쟁에 토벌을 위한 출동명령을 거부한 여수순천항쟁을 진압하면서 마침내 국가보안법을 급조하여 적용함으로써 이후 한국사회의 분단구조를 제도화하여 왔다. 그 동안 사건 당시 미 군정과 휘하 미군정 경찰과 국방경비대, 그리고 대한민국 군대와 경찰, 일부 준군사조직(사설민간 임의단체, 서북청년단, 대동청년단 등)의 횡포와 폭력, 집단 살해과 같은 만행을 법률의 정의로 다스리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과 자유민주주의의

  • 제주 4 3사건(제주 4 3항쟁)의 개념, 성격, 제주 4 3사건(제주 4 3항쟁)의 연구, 증언, 제주 4 3사건(제주 4 3항쟁)의 진압, 제주 4 3사건(제주 4 3항쟁)의 미국개입, 제주 4 3사건(제주 4 3항쟁)의 제주도위원회
  • 제주 4 3사건(제주 4 3항쟁)의 개념, 성격, 제주 4 3사건(제주 4 3항쟁)의 연구, 증언, 제주 4 3사건(제주 4 3항쟁)의 진압, 제주 4 3사건(제주 4 3항쟁)의 미국개입, 제주 4 3사건(제주 4 3항쟁)의 제주도위원회 분석Ⅰ. 서론Ⅱ. 제주 4 3사건(제주 4 3항쟁)의 개념Ⅲ. 제주 4 3사건(제주 4 3항쟁)의 성격Ⅳ. 제주 4 3사건(제주 4 3항쟁)의 연구Ⅴ. 제주 4 3사건(제주 4 3항쟁)의 증언Ⅵ. 제주 4 3사건(제주 4 3항쟁)의 진압1. 4월 3일부터 4월 중순까지(진압부대 : 제주비상경

  • 제주 43사건에 대해서
  • 제주출신 교포, 학살당한 희생자의 유족, 미국무성 관리, 문학ㆍ예술인, 정치학ㆍ역사학ㆍ인류학자, 학생ㆍ시민운동가들의 입을 통하여 4ㆍ3 담론은 형성되었다. 또한 한국전쟁 후 피해복구 과정, 4ㆍ19 직후 민주화의 분위기, 5ㆍ16 이후 30년 가까운 폭압적인 군사독재체제, 80년대 후반 이후의 사회민주화 운동의 열기 속에서 4ㆍ3의 진실은 깊은 잠을 자기도 하고 수면 위로 부상하며 요동치기도 하였다.1960년 4ㆍ19혁명은 한국전쟁과 이승만 반공독재체

  • [국가보안법]국가보안법의 이해와 문제점 및 해결방안 제언
  • 민주발전 법률개폐특별위원회구성 등 인권개선의 시늉만 보였을 뿐 시간이 갈수록 인권문제는 제6공화국의 관심사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나아가 5공 청산 기피에 대한 국민적 저항, 민주화와 통일운동을 억압하는 과정에서 악법과 인권억압기구, 그리고 이를 운영하는 수상원과 재판담당자들이 전면적으로 부활하였다. 국가보안법은 이와 같은 제6공화국 인권문제의 핵심이 되었다. 이미 악업의 상징을 낙인찍힌 국가보안법은 6공 초기에는

  • [정치] 대통령의 리더십
  • 민주주의 토착화를 강조하고, 여야 간의 대화정치를 강조한 사실에서 그가 민주적 지도자를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남의 의견을 청취하는 시간보다 자기의 의견을 남에게 말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 형태라든가 행정부와 여권 내에 철저히 배어있는 권위주의적 행정문화 때문에도 민주적인 지도자가 되려는 그의 의도는 빗나가고 말았다.오히려 5ㆍ17광주 민중 항쟁을 무력적으로 진압한 것, 민간방송기관을 강제접수하고 폐지한 점, 인사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 최근 판매 자료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