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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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간
세상엔 많은 혈연집단들이 모여 있다. 우리는 혈연관계로 이루어진 집단을 가족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가족이라고 해서 꼭 혈연관계로만 구성되어진건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이런 가족의 형식이 모두가 반드시 불행한 것도 아니다. 순전히 혈연관계로만 이루어진 집단인데도 문제를 안고 있는 가족들이 많다. TV뉴스에서 보면 우리는 종종 정말 같은 피를 나눈 가족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잔인한 사건들을 접할 수 있다. 경제적인 문제라든가로 인하여 부모를 살해한다는 둥, 자식을 버린다는 둥, 동반 자살을 한다는 둥 혀를 차게 만드는 사건들이 발생하게 된다. 바로 몇 일전에도, 재벌집의 하나뿐인 외동딸이 도박으로 자신의 재산을 잃게 되자 부모님의 재산까지 탐하여 사람을 이용해 부모님을 위협해서 돈을 뺏어오라고 시킨 일이 보도 되고 있는 것을 아침뉴스를 통해 보았다. 진정 혈연이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피아간』에서는 이러한 혈연이라는 주제를 놓고 아버지의 임종과 장례에, 그리고 주인공 경은이의 가짜 임신이라는 이야기가 같이 전개 된다. 경은이 결혼 칠 년이 되도록 아기를 갖지 못하고 있었다. ‘결혼 이 주년이 지날 즈음부터 주위에서 받아온 은근하고 노골적인 압력은 모은다면, 작은 기관차쯤 움직일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불임의 이유가 경은의 약한 자궁뿐 아니라 남편의 유전자 결함에도 원인이 있다는 진단이 난 뒤에 남편은 반대하던 입양에 대해서 동의하였다. 하지만 위장용 복대로 임심을 속이고 출산일에 맞추어서 갓난아기를 데려오기로 하였는데 ‘아기를 품고 키워 젖 한번 못 물리고 떠나보낼 생모를 생각하며 울고, 임신기간 동안 늘어나 탄력이 줄어들었을 그녀의 배를 떠올리며 울고, 내 핏줄 아니면 돌아보지 않으려 하는 차가운 세상에 던져질 아기를 생각하며 울고, 끝내 공개입양을 고집하지 못한 채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꾸며대며 유폐하는 자신 때문에 울고, 아버지가 수술한 뒤로는 죽음 앞둔 아버지의 고독을 어림하며 운’ 경은은 그것으로 인해 많이 괴로워한다. 특히, 아이가 자기라는 존재에 눈을 뜨게 되어 말간 눈으로 저의 탄생에 대해 물어볼 것인데 ‘그럴 때마다 경은은 제 가슴에 거짓의 벽돌을 하나씩 더 얹게 될 것이다.’고 한 것은 경은의 괴로움의 무게가 마치 내 가슴속에서 짓누르고 있는 듯했다.
만약 혈연이 아니라면 경은은 이러한 괴로움은 갖지 않아도 될 것이다. 불임도 입양도 문제될 것이 없기에 불임이라는 사실을 힘들게 애써 복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될뿐더러 입양도 자유롭고 떳떳하게 계획할 수 있었음은 물론 자신의 아이에게도 당당한 모습으로서의 어머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핏줄이라는 혈연의식은 경은의 남편 역시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이 이야기의 시작에서부터 남편은 경은의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그래도……. 오래 고생하시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해야지”라는 말로 경은을 위로하려한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당신 아버지였대도 그런 말이 나오겠어?’라며 마음속에 말을 가둔 채 침묵을 지키는데 경은의 아버지가 아닌 남편 자신의 아버지의 임종을 앞둔 상태였다면 위로의 말로 그런 표현은 내뱉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남편이 입양을 동의하면서 아내를 다시없이 배려하는 사람처럼 딸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데 경은의 시부님의 기대를 환기시켜서 ‘딸이면……. 키워서 시집보내면 끝이잖아.’라고 생각하는 남편의 속마음을 드러내었다. 즉, 남편은 자식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피를 이어 받을 피붙이, 다시 말해 혈연중심적인 가족의 구성을 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입양에 동의함은 남편이 원하지만 이루지 못하는 혈연관계의 가족 형식을 대신 해소해줄만한 방안에 불과한 것이라고만 느껴졌다. 만약 아이를 입양을 하여서 키우는 동안 경은의 남편이 얼마만큼 진실 된 사랑으로써 보살펴 줄 수 있을지 의심마저 들었다.
가족의 구성에서 혈연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경은의 남편의 인식처럼 가족이외의 사람들을 배타시하는 이기적인 사회가 될 수도 있는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위에서도 말했듯이 정말 같은 혈연이 맞는지가 의심이 될 정도로 잔인하고 한심한 일들이 현실에 보도되고 있는 마당에 혈연의 의미가 중요하지 많은 않다고 본다. 이 소설에서도 경은의 아버지의 죽음 앞에 경은의 큰오빠와 새어머니의 행동의 크게 상반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병실에 누워 사선을 넘나들고 있는 아버지의 간호 당번이 된 큰오빠는 병실에 소주 냄새를 풍기며 보조침대에 누워서 코를 골며 자는 파렴치한 자식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끊어졌다 이어지는 코고는 소리에 놀라서 깜짝깜짝 깨어나는 아버지가 큰오빠를 바라봤던 ‘눈길이 어찌나 슬프고 그 안에 서린 허망이 어찌나 깊던지’ ‘생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어버지에게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다 내려놓은 이의 눈빛’이었으며 ‘잠든 사이 사신이 나타나면 그냥 따라나설 것처럼 무력해’보인다고 표현한 아버지의 모습에서 너무나도 가슴이 아려왔다. 또한 병원비마저도 고스란히 아버지의 얇은 통장에서 빠져나가도록 했었던 큰오빠는 장례를 도우러 와 준 남자형제의 친구의 고스톱 치는 잔돈을 빌려주는 일에서도 냉정하게 대하는 모습에서도 내게 뉴스에서 보았던 부모님의 돈을 탐한 잔인한 외동딸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여기에서 큰오빠는 여동생들에게 ‘네가 뭔데 나서냐?’라는 아주 떳떳하고도 뻔뻔스런 말을 하는데 혈연이라는 같은 조건에서도 여자에게는 권리가 제한되어있는 문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새어머니는 달랐다. 아버지의 끼니를 십 년 넘게 챙겨준 이도, 노년의 적막함에 말벗이 되어주고 힘 빠진 다리를 주물러준 이도 새어머니인 서령댁이었다. 그런데 장남인 큰오빠는 아버지를 잘 돌보지도 않고, 아들로서의 도리를 다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장남으로서의 권리는 다 누리는 것에 비해서 새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십 년 이상 헌신하고도 정당한 보상을 받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아버지 걱정을 하고 돌보는 일은 딸들이 더 많이 하는데도 집안일에 의견조차 내놓지 못하고 소외된다. 이러한 가족들의 태도를 보면 경은의 가짜 임신은 어쩔 수 없음을 이해할 수가 있다. 서로 같은 혈연관계인데도 남에게 대하는 것 보다 더 못하는 큰오빠의 행동에서 경은의 배가 같은 핏줄을 이어 받은 아이가 아니라 위장용 복대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나올지 뻔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경은이 ‘가뭄에 콩 나듯 들러 속 긁는 소리나 하고 가는 아들보다, 십 년 넘게 온갖 수발 다 들어준 서령댁을 더 남이라 여기는 데’ 대해 분노하였다고 표현하였다. 이것은 분명히 작가가 남보다도 못한 혈연인 큰오빠를, 그리고 혈연가족이 아닌 새어머니를 통해서 혈연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해주려고 함과 동시에 혈연중심적인 가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려 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의 생각은 이 소설 속에 경은이 보게 되는 TV다큐멘터리의 프로그램의 내용을 통해서도 나타내었음을 알 수 있다. 박쥐가 제가 낳은 새끼를 찾아내는 실험을 보고 동물조차 ‘내 새끼와 남의 새끼를 구분하는, 내 핏줄과 남의 핏줄을 구분하는 것, 그게 목숨’인가 하는 생각으로 정녕 그것밖에 안 된다는 것에 대한 탄식과, 사랑과 이기심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의 갈릴레아 호수와 사해. 갈릴레아 호수는 끊임없이 신선한 물을 받아서 내놓아 많은 생명체가 살지만 사해는 물을 받아들이지만 다른 데로 흘러가지 못해 죽은 바다가 되어 생명체가 살지 못하는 곳이라는 해석을 아이에게 빗대어 교훈을 전할 것이라고 한 경은의 모습은 혈연을 중요시 하는 사회의 인식과, 그 문제점의 해답이 사랑이라는 것을 의미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식은 자기 핏줄과 남이라는 경계선이 분명한 요즘, 같은 핏줄에 의하여 연결된 인연이라는 힘에 크게 의존한다. 이러한 씁쓸한 인식이 대체 혈연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한탄을 낳게 만들기도 한다. 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울어 줄 이유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혈연과 관계가 없다고 해서 서로를 향해 울을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눈물마저 아껴버린다면 이 사회는 황량한 사막보다도 더욱 삭막해질 것이다. 어떻게 보면 혈연은 남과 남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 둘이 낳은 자식은 또 다시 혈연에 모여들어서 혈연을 이어간다.
우리는 가족을 진정한 가족이라고 느낄 때는 단순히 같은 집에 산다거나 혈연관계가 아니라 ‘유대감’때문이라고 그렇게 여기지는 않는가 생각을 해보게 된다. 혈연과 법적인 관계에서만 가족의 형태를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록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혈연 가족보다도 애틋하고 진한 정을 나누는 가족의 형태를 봤을 때, 결국엔 이 소설의 혈연이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대답은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런 바람도 없이 조건 없이 아버지를 십 년 넘게 헌신적으로 보살펴 온 새어머니도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오랜 시간을 옆에서 함께 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 또한 남보다도 못한 못난 아들이지만은 아버지에게는 사랑으로서 모든 것이 용서가 됐을 것이라고 생각되며 경은이의 입양에 있어서도 아이에 대한 걱정과 괴로움은 곧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감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혈연이라는 진정한 의미를 찾게 해주고 나의 가족의 사랑을 다시 느낄 수 있으며 갈릴레아의 호수와 같은 여운을 가져다주는 이 소설을 추천하고 싶다. 더구나 가족을 유대감의 집단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특별히 권장을 해주고 싶다. 이 책이 보다 더 많이 사람들에게 읽혀져서 기존의 형식적인 혈연관계의 인식에서 변모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새집 지어야지.’라는 말로 이 소설의 이야기가 마무리 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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