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약속 - 역동적인 희망, 종말론적인 희망, 이 땅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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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구약의 약속
예수님은 사역의 초기부터 “때가 찾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를 했다” 그러나 아무도 예수님에게 하나님 나라가 무엇을 의미 하는지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구약의 약속과 유대 묵시문학의 해석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의미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선포한 예언의 핵심에는 희망이 있다. 그것을 묵시문학에서는 변경에서 사용을 했다. 이장의 목적은 신약 메시지의 배경이 되는 예언자적 희망을 분석하는 것이다. 예언자적 희망과 묵시적 메시지 사이에는 무슨 차이점이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구약에서는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이 쓰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온 세상의 왕으로 선포를 하였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왕이신 반면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는 특별한 왕이시다. 하나님의 통치는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현실화 된다. 그러나 이것은 불완전하고 부분적인 것이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세계 위에 충만하게 될 날을 고대하고 희망했다.
역동적인 희망
구약성경의 개념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그것이 신중심적이고 역동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이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어떤 모습일 것이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통치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사건의 모습은 하나님의 신적인 통치의 필연적인 결과물들이다. 하나님 나라의 역동적인 특징은 히브리 단어 말쿠트 라는 단어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이 단어는 왕위, 왕권, 통치, 왕국, 통치권, 지배력의 뜻이 있다. 이 단어가 하나님에게 사용이 되어질 때에는 하늘의 왕으로서 그의 권위와 통치를 언급하는데 사용이 되었다. 왕으로서 하나님의 역동적인 개념은 그의 왕적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그의 백성을 찾아오시는 하나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관식 시편으로 불리 우는 시편을 보면 백성들이 기뻐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하늘의 왕으로 앉아이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심판하고 하나님이 왕이신 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의 통치를 확립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땅위에 초월해 계신 분이지만 하늘에 홀로 계시지 않고 그의 백성을 축복하고 심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찾아오시는 분이시다. 이 찾아오시는 하나님에 대한 사상은 역사와 종말을 연결시키는 구약 가르침의 중심적인 특징 중의 하나이다. 시내 산에서 시작해서 하나님 나라에서 마지막 구속에 이르는 이스라엘 전체 역사는 하나님의 신적인 방문의 빛 안에서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이 되기 위해서 시내 산에 찾아 오셨다. 하나님이 시내 산에 방문을 하실 때 창조물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떨었다. 땅이 떨리고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렸다. 이 시내 산 방문이 그의 세계와 그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 신학에 영향을 미쳤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의 백성 삼기 위해서 애굽에 찾아오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반복해서 찾아오셨다. 그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를 완성을 하고 사악한 자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반드시 오실 것이다. 이스라엘의 희망은 역사 안에 근거를 두고 있고 역사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안에 근거를 두고 있다. 히브리인의 믿음은 역사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역사 안에서 경험되어질 수 있다. 구약성경에서 희망의 근본적인 배경은 역사 안에서 역동적으로 스스로를 들어내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일뿐만 아니라 모든 땅의 왕이시다. 하나님께서 그의 왕적인 목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특별히 찾아오시는 날이 있다. 그 때 하나님은 구원을 이 땅에 가져오고 그의 뜻을 완성할 것이다.
종말론적인 희망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은 종말론적인 희망인데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관점에서 나왔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속하실 것이고 그것이 종말론적인 희망을 가져왔다. 문켈은 히브리 유대 문학에서 전혀 다른 두 가지 형태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하나는 히브리 사상에서 왔고 다른 하나는 히브리 사상 밖에서 왔다는 것이다. 하나는 예언자적 희망이고 다른 하나는 묵시적 희망이다. 예언자적 희망은 역사 안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하나님은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룩하실 것이다. 다윗 같은 왕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온 땅에 평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예언자적 희망은 실현되지 않았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이루지 못했다. 하나님의 통치 대신 악한 국가의 지배 아래서 고생을 했다. 그들은 역사 안에 하나님의 왕국이 실현되는 것에 깊은 회의를 가졌다. 그래서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예언자적 희망은 역사 저편에서 이루어지는 묵시적 희망으로 대치되었다. 이런 변화는 페르시아의 이원론의 영향을 받아서 일어났다. 예언자적 종말론이라는 것은 역사 안에 있고 묵시적 종말론 이라는 것은 역사 밖에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타입의 희망은 이미 초기 예언자들의 시대에 있었다. 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종말론은 역사적인 동시에 초역사적이다. 아모스 시대의 사람들은 역사적인 힘에 의해서 효력을 미치고 역사 안에서 이룩되는 하나님의 왕국을 기대했다. 그 날은 이스라엘이 모든 적들에게 완전한 승리를 거두고 다윗 왕국을 회복하는 때로 이스라엘에게 성공과 축복과 번영의 날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모스는 이것을 거짓된 관점으로 비난을 했다. 여호와의 날은 빛이 아니고 어두움이고 축복의 날이 아니라 분노의 날이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날에 우주적인 재난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땅이 떨 것이다. 스바냐는 여호와의 날에 여호와의 심판에도 불구하고 남은 자들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구원에 참여할 것이라고 보았다.
구약 성경은 종말은 역사적인 동시에 초역사적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역사의 틀 안에서 발생을 하지만 초월적인 역사의 힘에 의해서 발생을 한다. 하나님은 역사 가운데 언제나 활동을 하시는 분이시다. 그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사람과 자연을 사용을 하신다. 그런데 이것으로 궁극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없다. 여호와의 직접적인 찾아오심에 의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룩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직접 찾아오심으로 현 질서를 변형시켜 그것을 완성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룩한다. 현 상태의 끝을 표시하는 커다란 변화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가능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이미 역사의 전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를 명백히 드러내셨다. 그 하나님은 역사의 끝에서 홀로 전능하신 분임을 명백하게 나타내실 것이다. 이것은 마지막 방문이 될 것이다. 이것을 종말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종말은 역사와 엄격한 단절이 있다.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일반적으로 일하시는 방법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찾아오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 이스라엘은 완전한 구속을 경험할 것이다.
이 땅의 희망
구속에 대한 성경의 사상은 언제나 땅을 포함한다. 히브리 사상은 자연과 사람이 근본적으로 연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선지자들은 땅을 사람이 일상적인 일을 수행하는 무대로 생각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하는 무대로 생각을 했다. 땅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 하고 사람의 행복한 삶을 위한 필요를 공급해 주도록 설계가 되었다.
사람은 창조물이고 모든 창조물과 실재적인 결속 안에 있다. 사람과 자연은 그들이 존재하기 위해서 하나님에게 의존해야만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되었고 다른 모든 창조물과 다르게 하나님과의 즐거움의 관계에 서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것은 다른 창조물과 다르게 초월적인 위치에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인간을 위한 구원은 피조물 됨으로부터 구원을 의미하지 않는다. 피조물 됨은 악한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적이고 영구적인 요소이다. 구원은 육체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악하지 않다. 세상은 자신의 진정한 생명을 찾기 위해서 사람이 떠나야 하는 영역이 아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그것을 좋게 보셨다. 이 땅은 인간의 도덕적인 삶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죄로 땅이 오염이 되었다. 사람의 악함 때문에 땅이 황무하게 되었다. 자연의 선함은 죄의 세력에 의해 망가졌다. 땅은 사람으로 인해 저주를 받았다. 가시와 찔레가 나왔다. 자연 안에는 본래적으로 도덕적인 악이 있지 않다.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창조 되었고 궁극적인 목적과 창조의 운명 역시 창조자를 영화롭게 하고 찬양하는 것이다. 선지자들은 오염된 땅의 회복을 고대했다. 이것을 시적으로 표현을 했다. 광야는 풍성할 것이고 사막에 꽃이 필 것이다.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되고 메마른 땅이 변화여 샘이 될 것이다. 땅은 하나님의 최종 구원의 일부분이다. 심판과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방문을 할 때 인간 사회가 흔들릴 뿐만 아니라 세상의 구조가 붕괴될 것이다. 땅은 연기처럼 공허해질 것이고 땅은 옷처럼 헤어질 것이다.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이다. 이런 일은 일상적인 사건을 통해서 올 수 없다. 역사 안에 직접적인 하나님의 찾아오심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역사와 종말
구약 성경의 희망은 역사적인 희망으로 소개 되었다. 하나님의 통치는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의 완성으로 말할 수 있다. 예언자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단순히 미래적인 사건이 아니다. 현재 그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졌다. 예언자들은 단순히 연대기적이고 연속적인 시간에는 관심이 없다. 현재 그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이 뜻에 관심을 가졌다. 그들의 희망은 단순히 미래에 있지 않고 하나님 안에 있다. 물론 하나님은 종말에 하나님의 구속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최종적으로 이 땅을 오실 것이다. 그것은 직접적인 미래의 역사적인 사건인 동시에 종말론적인 사건이다. 예언자들은 직접적이고 역사적인 미래와 궁극적이고 종말론적인 미래 양쪽을 감싸고 있는 한 가지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의 구속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역사적인 미래 안에서 행하시지만 구속의 완성인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궁극적으로 종말론적으로 행하신다.
현재와 미래는 긴장 가운데 서 있다. 종말은 먼저 역사와 관련하여 그 안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종말은 역사적인 시간의 끝에 온다. 또한 종말은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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