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 1997년 홍콩 반환기의 혼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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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 - 1997년 홍콩 반환기의 혼돈상
1. 90년대 초 홍콩 영화계
1) 영화 산업의 쇠퇴
80년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서 승승장구를 거두던 홍콩영화는 갑작스런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인 매커니즘으로 작용해서 일어난 결과겠지만 크게 몇 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1984년 영국의 수상이었던 마가렛 대처가 영·중 수교협약에 따라 홍콩을 중국에 ‘반환’한다고 약속한 것에서 기인할 것이다.
중국에 반환되기 전 아시아에서 홍콩은 아주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영국의 식민지 지배에 놓여있었음에도 현지인들의 자유가 최대한으로 보장되는, 아시아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가장 적극적으로 보장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특수성이 서구의 자본을 끌어들이는 원인이 되었고 이는 영화시장의 활성화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었다. 이에 비해 중국은 홍콩과 달리 여전히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당국의 검열 또한 까다로웠으므로 중국이 홍콩을 자치구로 인정, ‘일국양제(一國兩制)’를 보장하겠다는 공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재와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의식이 팽배했던 홍콩에 반환은 혼란을 야기 시켰다. 특히 1989년에 일어난 천안문 사태는 중국을 더욱 의심케 했고, 1990년대의 남겨진 7년을 ‘도피냐 잔류냐’를 결단하는 고민의 시대로 보내 했다. 홍콩의 중국반환은 홍콩의 경제 상황에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그 것과 더불어 아시아 전체에 불어 닥친 금융위기는 외국 자본이 급격하게 빠져 나가게 만들었고 영화 산업에 투자되는 자본 또한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90년대 중반부터 급격하게 늘어난 개봉영화 불법복제CD는 홍콩영화 시장의 몰락을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싼 가격에 대량으로 공급된 불법복제CD는 상영관 옆에서도 버젓이 판매되는 판국이었고, 흥행실패는 물론 제작자들의 의욕도 앗아갔다.
한편 배우-감독의 할리우드 진출도 그에 한몫했는데, 90년대 중반 이후 홍콩은 세계 최대의 ‘할리우드 인력 수출 지역’이 되었다. 때문에 이들은 자국 영화 출연 및 제작에 소홀하게 되었고, 홍콩 영화계는 일시적으로 공동현상을 맞이했다. 불법복제시장 확산으로 골머리를 앓던 차에 스타급 배우-감독의 공동화는 더없이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악화된 시장을 회복시킬 티켓파워 스타도, 뛰어난 콘텐츠를 만들어낼 감독도 없었다. 결국 홍콩 영화는 의도적으로 졸속작, 아류작으로 치달은 것이 아니라 그리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고, 홍콩에 남은 몇 안 되는 흥행배우들이 1년에 수십 편씩 출연하며 스타들이 가지고 있는 흥행성에 기댄 영화 혹은 흥행작의 속편이나 졸속으로 제작한 아류작들로 근근이 버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지루한 패턴에 대중들 역시 등을 돌렸고, 해외뿐만 아니라 자국에서 조차 외면 받게 되었다.
2) UFO의 설립
1992년 설립된 UFO(United Filmmakers Organization)는 80년대 TV를 통해 감독수업을 쌓은 중지위, 진가신, 종전, 이지예 등이 중심이 되어 새로운 홍콩영화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영화제작사이다. 서극이 전영공작실을 만들어 자신이 만들고 싶었던 영화를 만들어낸 것처럼 이들도 자신의 영화를 만들 제작사를 직접 차린 것이다.
UFO의 작품은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펼친다. 진가신의 데뷔작 <아비와 아기(1992)>는 범죄 스릴러를 코믹하게 변주한 코미디영화고, <금지옥엽(1994)>은 가수가 되기 위해 남장을 한 소녀의 경쾌한 사랑이야기다. 오랜만에 한국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첨밀밀(1996)>은 ‘뿌리없는’ 홍콩인의 정체성을, 부유하는 연인의 사랑과 함께 펼쳐놓은 수작이다. 이동승의 <열화전차(1996)> 역시 승부에 집착하는 스포츠영화가 아니라 오토바이에 탐닉했던 젊은이 가 사랑과 인생의 의미를 자각하는 진지한 드라마다. 베를린영화제에 출품됐던 <색정남녀(1996)>는 에로영화와 작가영화 사이에서 흔들리다가 작가적 양심을 지키면서 에로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이야기를 자유로운 영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들은 홍콩 누아르도 무협영화도 한물가고 홍콩영화계가 흔들릴 때 사실적인 소재와 낭만적인 인물, 감각적인 연출로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낸 것이다. 특히 많은 반향을 일으킨 멜로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는데, 이는 홍콩반환 직전의 불안한 심리를 어루만져주는 ‘진정제’ 구실을 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3) 영화의 경향
1982년 홍콩의 반환협상이 시작되면서 초미의 관심사가 된 홍콩의 미래에 관한 문제에 대한 고찰과 함께 전통과 현대 사이의 모순, 경제성장에 밀려 수십 년 동안 억눌려왔던 문제들, 즉 동과서의 교차점에 있는 홍콩 고유의 문화적, 민족적 정체성 찾기를 영화를 통해서도 고민하게 된다.
90년대 들어서 사실적인 전기물이 각광 받는데, 흥행은 물론 비평에서도 좋은 평가를 얻은 반문걸의 <파호(1991)>에 이어 <뇌락정구(1993)>, <이락부기안(1993)>이 나온다. 폭력조직의 두목이나 암흑가와 밀착한 경찰 등 홍콩을 떠들썩하게 했던 범죄자들의 전기였다. 그러나 21세기로 근접하면서 홍콩 느와르와 갱영화도 한낱 유희가 돼버린다. 유위강 감독의 < 고혹자(1996)>는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수다쟁이가 주인공이며, 밑바닥에서 최고 권력에 이르는 신분상승을 다룬다.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황당한 설정이 난무한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배우 겸 감독 겸 제작자인 주성치의 인기가 급상승한다. 주성치는 몸으로 하는 액션이 아닌 연기에 의존한 웃음과 기존 영화를 패러디하는 등 위트있는 설정으로 신선함을 가져왔고 코미디 영화계를 평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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