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극 결국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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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연극사 기말 과제>
나의 연극, 결국엔 이야기다
‘연극을 한다는 것’은 그 행위 자체만으로 매순간 고민에 들게 한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무한한 상상력을 연극과 비교한다는 건 이미 수십 년 전에 무의미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런 장르적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연극은 오늘날 전 세계, 가까이는 대학로를 중심으로 여전히 숨쉬고 있다. 조금 다른 형태로, 약간은 변화된 모습으로.
최근에는 뮤지컬 붐이 대세다. 감각적인 카피와 현란한 포스터가 대학로 게시판은 물론 소위 거대 공연장을 잠식하고 있다. 영화 <댄서의 순정>과 각종 인기 소설들이 뮤지컬로 리메이크를 추진 중인 것은 이러한 현상을 대변한다. 춤과 노래 없이는 대중과의 호흡이 불가능한 시대가 도래한 것일까. <아이다> <오페라의 유령> <페임> 등 거대 블록버스터 작품은 물론 대학로 공연의 상당수가 춤과 노래를 필수 아이템처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때론 그것들이 연극의 전부인 것처럼 관객들을 현혹한다. 모두가 신명나게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이 연극의 태생적 운명이라지만, 단순히 웃고 떠드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점이 해결 될 수 있을까. 이것이 불모지 속의 오늘날 연극이 관객과 소통하는 유일한 길일까.
연극이 막연한 취미와 동아리 활동을 넘어 인생의 이정표가 되면서부터 이러한 의문점은 더욱 증폭됐다. 어디까지가 유희이고 놀이여야 하는지 고민하다보면 어느새 작품의 진정성은 사라지고 연극을 위한 수단만이 그려지곤 했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소위 관객에게 ‘먹힐 것 같은’ 이야기를 꾸미려고 의식적으로 펜을 굴린 적도 있었다. 극작을 하는 데 있어 무대를 전제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공연 자체에 잠식당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한동안은 글을 쓸 수 없기도 했다.
관객을 극장에 불러오는 것이 중요할까, 아니면 그들이 극장을 떠난 이후가 중요할까. 상식적으로는 후자의 경우에 손을 들지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연극계의 실상을 들여다본 이들이라면 관객을 객석에 앉히는 것 또한 중요한 목적이 됨을 알 수 있다. 이쯤 되면 공연을 보고 돌아간 관객이 더 많은 관객을 보러 올 수 있지 않느냐 하는 반문이 들고 결국에는 ‘알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식의 해답 없는 결론에 봉착한다.
이 같은 논쟁들은 연극이 지닌 시·공간의 제약성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런 한계성을 극복하는 길은 관객과의 직접적인 ‘소통’에 있다. 내 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배우, 그가 내뱉는 대사, 그리고 그들이 존재하는 무대 공간……. 연극만이 지닌 매력은 말로써 설명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논리정연하게 한 줄의 문장으로 해답을 제시할 수도 없다. 단지, 열권의 이론서보다도 단 한번의 관람이 연극을 우리 일상으로 끌어 들이는 촉발제가 되며, 그 현장의 매력을 체득한 자만이 꾸준한 마니아가 되어준다. 문제는 좋은 작품을 만들어 관객과 호흡해야 한다는 것인데, 나는 그 소통의 방식을 어떻게(how) 표현하느냐 보다 ‘무엇을(what) 표현하느냐 하는 텍스트 자체에서 찾고자 한다. 그리고 그 기본 바탕에는 사실주의 연극이 자리한다.
사실, 사실주의 연극이 존재하지 않고는 다양한 실험들이 불가능함에도 현대 연극에서는 이를 쉽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보다 참신하고 혁신적인 것들을 쫓아가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사실주의는 고루하고 진보적이지 못한 연극 양식처럼 치부되기도 한다. 물론 현실과 똑같은 일상을 무대위로 올려놓는 것이 때론 무의미한 작업처럼 보일 수 있으나, 어차피 현실과 똑같은 연극은 없다. 단지 현실을 무대 위에 올려놓아 현실과는 ‘다른’ 이야기를 할 뿐이다. 관객들은 우리 주변의 일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조금은 낯선 그 스토리에 빠져든다. 배우의 대사와 행동에 울고 웃으며 종국에는 자신의 일상과 반추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위안을 받는다. 이처럼 사실주의만큼 연극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는 장르도 드물다.
이번학기 수업을 통해 다양한 연극적 사조들을 공부하면서 나는 그 끝이 결국엔 사실주의와 맞물려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주의의 반향으로 상징주의가 등장하고, 또 그 대안 책으로 표현주의가 나온 것이 아니듯 모든 연극 양식은 같은 시대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공존한다.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원형처럼 서로 맞물려 마주하고 있다. 그래서 연극사는 언제나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 안에서 고민되어야 한다. 우리가 배운 다양한 사조들은 과거의 흘러가버린 연극사가 아니다. 어느 장르에 대한 대응책이 아닌, ‘대안책’으로 각각을 이해해야 한다. 이 쉽고도 명백한 진리를 깨닫는데 한 학기를 보내야만 했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잡다한 지식과 생각들이 그동안 꽤나 많았던 모양이다.
현대 연극은 이러 다양한 연극 양식을 구미에 맞게 인용한 ‘절충주의’를 띄고 있다. 이제 배우가 관객에게 말을 걸고, 객석으로 뛰쳐나오거나 물을 끼얹는 행위는 전혀 낯선 일이 아니다. 다양한 장르의 공존이 가능할 만큼 관객들의 눈높이는 나날이 성숙해간다. 우리는 매순간 연극의 소멸을 걱정하지만, 공연예술은 꾸준히 일정한 성과물을 낳으며 진보하고 발전해왔다. 인류의 시작과 함께 연극이 존재했듯, 앞으로도 사회가 유지되는 한 그 안에서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현대연극들이 관객의 보다 까다로워진 눈높이 아래 자극받고 발전해 갈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사조들이 충돌하고 공존했듯, 다양한 연극적 실험의 끝에는 결국 텍스트의 중요성으로 귀결된다고 믿는다.
좋은 희곡이 종국엔 좋은 연극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이다. 예컨데, 탄탄한 텍스트에 기초한 연극이 관객과의 소통을 좀 더 쉽고 용이하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러티브, 즉 ‘이야기’를 고민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다양한 현대연극의 변화 속에서 내가 선택한 포지션은 작가다. 배우는 연기를 통해, 연출가는 총체적 그림을 통해, 디자이너는 무대를 통해 세상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외친다. 그리고 나는 글을 빌어 그 목소리를 대신한다. 단지 마음이 이끄는 데로 희곡을 쓴다. 어렵고 난해한 것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사실주의 연극이 편하고 익숙하게 관객의 가슴을 파고들었듯, 나는 이야기 자체가 주는 즐거움으로 관객과 호흡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어디 즈음 분명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지점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의식적으로 관객의 반응을 염두에 둔 경우 작품은 이미 진정성을 벗어나 거추장스런 양식, 즉 스토리는 사라지고 스타일만을 입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의도된 변화들이 오히려 관객을 불편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소통이 뭐 별건가, 공감을 준다는 게 엄청난 작업인가. 내가 가장 쉽고 편하게 할 수 있는 연극이 관객들에게도 즐거운 연극이다. 작품을 올리기 이전엔 치밀한 고민과 계산이 수반되어야겠지만, 그 이면에는 만드는 이 스스로 즐거워야 한다.
예전에 배낭여행 중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쉴러의 <빈헬름 텔> 야외공연을 본 적이 있다. 무대는 실제 산등성이를 깎아내린 곳이었고, 세트는 실재로 사람들이 사는 집이었다. 밤 8시부터 10시, 해가 질 때까지 자연조명 아래 이루어지는 공연에 출연하는 인원은 자그마치 200명. 관광객을 상대로 공연이 열리는 매주 월요일마다 스위스 각지에서 사람들이 의상과 소품을 들고 모이는 것이었다. 무대 안쪽인 산 위에서는 말과 양이 뛰어다니고, 장작불이 이글거린다. 관객들은 담요와 소시지를 들고 삼삼오오 짝을 이뤄 공연을 관람한다. 모든 촬영이 가능하며 공연 중간의 휴식시간에는 무대에 올라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그날 이후, 연극을 즐기는 자와 연극을 하는 자가 나란히 공존하던 그때 그 장면은 내 연극적 좌표처럼 새겨졌다.
왜 연극을 하느냐 하는 물음을 끊임없이 제기할 때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서’라고 대꾸하면서도 어쩐지 핑계처럼 들린다. 솔직히 이야기가 중요하다, 텍스트에 완성도가 있어야 한다, 장황하게 늘어놓으면서도 스스로가 그러고 있는지 반문했을 땐 부끄럽다. 아직 난 즐기고 있지를 못하나보다. 연극을 참으로 고통스럽게 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가. 자꾸 내가 써낸 이야기들은 어딘가에 억눌리고 자유롭지 못하다.
언제쯤 일상의 일부로 연극을 느낄 수 있을까. 몸에 따악 들어맞는 편한 옷처럼, 언제쯤 내 신체의 일부처럼 연극을 대할 수 있을까. 나부터 희곡에서 자유로워지고 진정 연극이란 행위 속에서 ‘놀 줄’ 안다면 텍스트에 대한 고민, 더 나아가 관객과의 근본적인 소통에 대한 고민을 풀 수 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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