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통신사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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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조선통신사’는 조선시대 일본으로 보낸 외교 사절단으로 여기서 ‘통신’이란, 두 나라가 서로 신의를 통하여 교류한다는 의미이다.
1401(태종 4) 조선과 일본 사이에 교린관계가 성립, 조선이 명나라로부터 책봉을 받고 이듬해 일본의 아시카가 정권도 책봉을 받아 조선·중국·일본 간에 사대교린의 외교 체제가 성립되었다. 이에 조선 국왕과 막부 장군은 각기 양국의 최고 통치권자로서 외교적인 현안을 해결하기 위하여 사절을 각각 파견하였다. 이때 조선국왕이 막부장군에게 파견하는 사절을 통신사, 막부장군이 조선국왕에게 파견하는 사절을 일본국왕사(日本國王使)라고 하였다.
통신사는 정사, 부사, 종사관의 3사를 비롯해 의원 역관 화원 군관 서기 등으로 구성되어 그 인원은 매년 다르나 대략 300~500명 정도였다.
조선에서 일본에 파견한 사절의 명칭은 보빙사, 회례사, 회례관, 통신관, 경차관 등 다양하였다. ‘통신사’의 명칭을 쓴 것은 1429년 (세종 11) 박서생을 정사로 한 사절단이 일본에 파견되어 임무를 수행하고 귀국하였는데, 이것이 실제로 시행된 최초의 통신사라 할 수 있다.
1607년 조선정부는 포로 송환의 목적을 띄고 “회답 겸 쇄환사”라는 이름으로 여우길을 정사로 하는 사절단을 보내게 된다. 이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을 친구의 나라 즉, 교린국으로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파견했기 때문이다. 이 “쇄환사”는 그 후 1617년, 1624년 2회 더 계속 되다가 1636년 제4회 째부터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파견된다. 포로 쇄환사로 시작한 후기 조선통신사는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파견되었다
통신사의 파견은 18세기에 들어와 점차 형식적인 의례가 되었다. 일본이 경제적 문화적으로 성장하면서 외교 상대로서의 조선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1811년의 사행은 일본 본토에 들어가지 않고 쓰시마 섬에서 국서를 교환하고 돌아오는 등 결국 1811년을 마지막으로 통신사는 없어졌다.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끄는 흑선이 온 것이 그로부터 50년 후다. 조선통신사 교류가 유일한 대외 접촉이었던 쇄국일본은 조선을 통한 대륙문화 흡수에서 영미 등 해양문화를 빠르게 흡수하면서 문화선진국 조선을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 파견 목적
1952년에서 1958까지 2차에 걸쳐 일어난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통신사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조선 전기의 경우 주로 왜구 침략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조선은 이미 고려 말에서부터 왜구의 침략으로 심한 고통을 겪었다. 왜구는 대마도 등 일본 근해의 해적들로서 이미 고종 때부터 우리 연해에 출몰하였는데, 특히 충정왕 때부터는 거의 매년 전국 각지에 침투하였고 심지어 강화도까지 약탈을 당하여 개경에 계엄령이 내리기까지 하였다. 이로 인해 중앙정부의 재정이 곤란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연해의 농민들이 약탈을 당하여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일본 전기의 막부정권이 전국을 확실히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선은 왜구 침략을 막기를 위해 막부와 다이묘, 대상인들에게도 통신사를 보내어 중층적다원적 외교관계를 펼쳤다.
일본은 조선의 선진 문물, 글이나 그림 특히 불교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국왕사를 보냈다. 일본의 선종이 크게 부흥하자 조선의 대장경과 범종들을 구하여 가져갔으며 구리를 가져와서 쌀 콩목면면포 등으로 바꾸기도 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의 경우는 임진왜란 이후 강화교섭, 일본 국정의 탐색, 막부장군의 습직 축하가 주임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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