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영화, 퀴어영화, 그리고 멜로영화 후회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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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인디영화, 퀴어영화, 그리고 멜로영화 후회하지 않아
전국을 통틀어 고작 6개의 상영관에서 개봉한 인디영화가 있다. 게다가 이 영화는 퀴어영화이다. 그러나 이 인디영화는 개봉 8일 만에 2만명의 관객을 불러들이는 기록을 수립했다. 혹자는 이 영화의 성공을 ‘괴물’의 흥행에 맞먹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 영화는 바로 , 인디영화, 퀴어영화 그리고 멜로영화로서의 ‘후회하지 않아’ 이다.
샤츠의 멜로영화에 대한 정의에 따르면, 멜로영화는 ‘일반적으로 순수한 개인이나 연인이 결혼, 직업, 핵가족 문제들과 관련된 억압적이고 불평등한 사회 환경에 의해 희생되는 대중적인 연애 이야기’ 이다. 내식대로 편하게 받아들이자면 한마디로 주인공들의 사랑 앞에 장애물이 놓여 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랑은 순탄치 못하고, 아주 간단하고 편하게 정의하자면 결국 멜로영화는 ‘슬픈 사랑이야기’ 정도가 될 것이다 . 개인적으로 샤츠의 정의를 접하기 전까지 억압이라는 문제는 생각하지 못하고 멜로라 함은, 슬픈 사랑이야기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결론이 크게 틀리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정의에 다른 수식을 붙이고 싶지는 않다, 사실은 영화와 장르에 대한 무지 때문에 수식을 붙이는 것 자체가 어렵기도 하다. 다만 샤츠의 정의를 빌어 생각해 봤을 때 ‘왜 슬퍼지는가?’에 대한 해답을 억압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결론까지 함께 얻게 되었다. 그렇다면 ‘후회하지 않아’ 에서는 이러한 멜로영화의 장르로서 특징과, 매력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
우선 ‘후회하지 않아’는 새롭고 익숙하지 않은 소재를,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누구나 한번씩은, 상상해 봤을 법한 줄거리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 익숙한 줄거리와 플롯은 고아원에서 자란 수민이 서울로 상경하면서 시작된다. 그는 공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면서도 밤이면 대리운전을 하며 공부도 하면서 성실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수민은 대리운전을 하러 갔다가 재민을 처음 만나게 된다. 재민은 수민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묘한 감정에 휩싸이고, 수민에게 추파를 던진다. 하지만 그들의 첫 만남은 아쉽게 끝나 버렸다. 그리고 며칠 후 재민과 수민은 공장의 간부와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로 재회하게 된다. 재민은 그런 수민을 복직 시키고 호의를 베풀지만 수민의 자존심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고 재민을 밀어내기만 한다. 직업을 잃고 전전 긍긍 하던 수민은 결국 호스트바에 선수로 취직을 하게 되고, 수민에 대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던 재민은 호스트바에 수민을 찾아간다. 매몰차게 재민을 밀어내기만 하던 수민은 결국 재민의 진심을 받아들이게 되고 둘의 사랑은 점점 깊어간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순탄치 만은 않다. 이미 약혼녀가 있던 재민은 계속되는 수민과의 만남 때문에 자신이 게이인 줄 이미 알고 있던 어머니에게 수민과의 관계를 들키게 되고 현실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런 재민을 보며 수민 또한 마음아파 하고 결국 둘은 서로 엇갈리게 된다. 엇갈린 상황 속에서 재민은 사랑을 선택하고 수민을 찾아 헤매지만 수민은 재민의 진심을 알지 못하고 재민에 대한 복수를 계획한다. 수민은 동료와 함께 재민을 산으로 데려가 묻어버리려고 하지만 결국 자신이 재민에 대한 사랑을 접지 못했음을 다시 한 번 느끼며 그들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산을 내려온다. 그리고 수민은 재민이 자신에게 처음 마음을 줄 때와 같이 차안에서 ‘안녕하세요, 재민씨..’라는 짧은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날이 밝은 후 재민은 눈을 뜨자마자 수민의 성기에 자신의 손을 갖다 대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의 줄거리를 간단한 플롯으로 정리해 보자면 ‘ 사랑 - 갈등 - 해소 ’ 라는 영화뿐만 아니라 연애에 관한 소설, 안방드라마, 순정만화에서까지 두루 찾아볼 수 있는 전형적 구조를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과 함께 내러티브 또한 일반 멜로영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요소들을 적지 않게 아주 충실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후회하지 않아’를 가슴 찡한 멜로 영화로 만들어 주는 요소들을 파악해 보자.
Ⅱ. ‘후회하지 않아’가 갖는 멜로영화의 특성들.
1. 전형적 내러티브. 하지만 특별한 멜로.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줄거리의 추측,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우연히 첫 만남 을 가진 주인공들이, 후에 자신들의 신분적 차이에 부딪혀 좌절하게 되지만 결국 서로에게 끌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신분의 차이뿐만 아니라, 이미 정해진 약혼녀, 그리고 동성애라는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사랑의 방식, 이라는 더 큰 장애물 앞에 놓이게 되고 서로 오해하고 갈등을 겪는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치열한 사랑 끝에 열린 결말을 내놓는다. 재민과 수민 역시 대리운전이라는 우연찮은 상황에서 처음 만남 을 갖는다. 그리고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재민과 수민은 상사와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라는 전혀 조화될 수 없는, 비극적 위치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하지만 둘은 결국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 앞에는 잔인하고 냉혹한 현실의 벽이 놓여있고 그들은 사랑의 상처에 몸부림친다. 평론가들은 ‘후회하지 않아‘를 70년대의 호스티스 영화의 현대적 호스트 영화화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동성애라는 사실만 뺀다면 영화는 낮은 신분의 여성이 억압과 사랑의 상처에 가슴아파하는, 약자로서의 모습으로 사람들의 눈물을 뽑아냈던 호스티스 영화들이나, 90년대 이후에 나타난 수많은 멜로영화들과 크게 다른 특징을 가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특별해 지는 이유는 ‘동성애’ 라는 코드에 있다. 왜 하필 감독은 ‘동성애’라는 흔치않은, 자극적인 소재를 가지고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조금은 전형적인 스토리로 영화를 전개시켰을까? 멜로영화라는 것이 슬픈 사랑이야기라는 제한적인 특징을 갖기 때문에(로맨틱 코메디와 같이 사랑 이야기 속에서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것이 눈물을 뽑아내거나 가슴속에 여운을 남길 수 있는 요소보다 비교적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 날 수 있지 않을까.) 그 내러티브적 특성을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이 사실 자체가 감독이 전하고자 했던 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많이 나아 졌다고는 하지만 지금까지도 동성애는 반사회적이고 거부감을 일으키는 요소로서 받아 들여 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 보았던 익숙한 줄거리 속에 인정받지 못한 사랑의 이야기를 녹여냄으로서 동성애를 다른 수식어를 붙이거나 미화함 없이 ‘하나의 사랑으로서 전형적 멜로영화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정리해보자면 영화는 퀴어영화로서 특별한 소재를 다루었지만 이야기의 기본 토대는 그리 특별하지 않다. 영화는 신분의 차이, 가족의 반대, 사회적 편견을 넘어서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고전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멜로영화의 구조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게다가 인물들 또한 멜로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른 여타의 인물들처럼 각기 최소한의 전형성을 띄고 있음을 찾을 수 있다. 우선 재민의 경우를 살펴보자. 재민은 소위 재벌2세로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그에게도 약점이 있었고, 그의 약점은 수민이라는 ‘남자’로 나타나는 동시에 수민으로부터 치유된다. 재민은 모든 걸 다 가졌기 때문에 같은 남자들끼리의 사랑이라고 해도 좀 더 남성적인 역할을 맡았다. 수민에게 먼저 다가가고, 매달리고, 구애하는 것은 재민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재민은 ‘가진 남자’로서 이기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자신을 밀어내는 수민에게 끈질기게 구애하고 결국에는 그의 마음을 얻어 냈지만 결혼을 앞둔 자신에게 매달리는 수민을 잠시나마 냉정하게 대하는 모습에서 가진 것을 잃는다는 사실에 두려워하는, 그래서 잠시나마 사랑을 외면하려 하는 인간으로서, 또 남자로서 가지는 이기적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재민의 모습은 호스티스 영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남성형과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수민도 역시 멜로영화에서 갖는 여자주인공들의 전형적 모습을 가지고 있다. 불우한 어린 시절, 또는 풍요롭지 못한 환경을 지내면서 갖은 고생을 하지만, 열심히 생활하고 성실하고 착한 마음씨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갑자기 다가온 사랑에 당황하고 재민보다 좀 더 현실적인 눈으로 관계를 바라본다 하지만 결국 수민역시 사랑을 거부하지 못하고 재민에게 자신의 마음을 모두 내주고 만다. 후에 재민의 결혼사실에 처음에 밀어내던 모습과는 달리 ‘우리사이’는 무엇이냐고 재민을 다그치며 매달리는 모습이 안타깝게 그려지고,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아닌 오해에 상처받고 복수심을 불태우는 모습에 퀴어영화이지만 보면서 이성영화였다면 재민이 ‘남자’, 수민이 ‘여자’ 였겠구나 하는 추측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주인공을 제외 하고 나면 다른 인물들의 멜로적 특성은 더욱더 쉽게 찾을 수 있다. 재민의 부모님과 재민의 약혼녀는 영화속에서 갈등을 자아내는 필수적 인물들이고 수민을 사랑하는 가람은 순애보 적인 주인공의 조력자 역할을 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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