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감상문 인간극장 슈퍼맨 닥터 리 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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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되자.
<‘인간극장-슈퍼맨 닥터 리’를 보고...>
친구에게 옛날에 추천을 받았던 이승복씨가 생각이났다. 그래서 kbs 이승복씨가 인간극장에도 나온 그의 일상생활을 보며 장애인으로 의사로 살아가는 모습을 더욱 알고 싶어서 선택하게 되었다. 이승복은 한국에서 부유하게 자랄 수 있는 약사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힘든 미국 이민 생활을 보냈다. 그리고 나이 18살에 사지마비가 되면서 그 삶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대학에 들어가 장애의 몸으로 꿈을 이룬 저자이다.
1970~1980년대에는 한국인이 이민을 가는 경우가 적었고, 그 어려움이 상당히 컸었다. 약사인 아버지도 온갖 노동일을 하면서 자식들을 먹여 키웠다는 것이 마음에 아팠다. 결국에는 이승복 어머니가 당뇨, 합병증까지 겹치면서 몸 한쪽이 마비되는 경우까지 갔다. 글을 읽으면서 나와 비슷한 처지가 많아서 더욱 몰입하며 읽었다. 비록 나는 이민까지의 상황은 아니지만, 어렸을 적 서울에서 태어나 전라도 광주에 전학을 왔다. 엄마는 나를 나은지 얼마 안되서 바로 아빠를 도와 일을 도와드려야 해서 나이 27살에 벌써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로 살고 계신다. 또한 엄마가 아빠와 결혼하고 1년도 안돼서 아빠가 허리수술을 받으셨다. 무려 3번씩이나 말이다. 아빠는 양말을 신을 때도 허리를 숙일 수가 없으셔서 엄마가 양말을 신겨주신다. 가끔 통증이 심해 병원에 가서 마취제도 맞으시면서도 열심히 3남매를 키우시기 위해 일을 하신다. 하지만 나는 감사할 줄 몰랐고 공부가 힘들다며 맨날 투정을 부리며, 대학원을 자퇴하고 싶다고 수도 없이 말하며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다. 하지만 이승복은 한국 체조선수로서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따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고,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독립생활을 하였다. 또한 사지마지가 된 후에도 의사가 되기 위해 부모님께 힘든 내색도 보이지 않고 힘든 과정들을 이겨낸 모습들을 보면서 나의 삶과 목표의식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처음 자신이 몸을 움직일 수 없다고 판정소식을 들었을 때, 부모님에게의 죄송함과 자신에 대한 화로 좌절했다. 입장을 바꿔 ‘내가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서 사지마비 판정을 받았다고 생각했을 때, 난 이와 같이 잘 이겨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평소에 대게 표정이 어둡고 자존감이 낮은 학생이다. ‘나는 못해’, ‘난 speaking 실력이 너무 안 좋아서 선생님이 못될 것 같아, 지금이라도 관둘까?’라는 생각을 수천 번 한다. 하지만 책을 읽고 척추손상으로 2시간도 휠체어에 앉는 것이 힘들고, 기계적 도움 없이 글씨도 쓸 수 없고, 걸을 수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을 뛰어넘고, 남들보다 더욱 더 힘든 과정을 겪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도전의식이 생겼다. 또한 이승복씨가 장애를 딛고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사랑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다. 그는 자신이 받았던 도움들을 이제 똑같이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장애우들을 도우며 살고 있는 모습이 뿌듯하다.
미국에서 2명밖에 없는 사지마비 장애인 의사고, 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존스 홉킨스 병원, 수석 레지던트를 거쳤다. 이 영상에서 그의 손은 닳을 때로 닳아 있었는데 그 이유는 편한 전동휠체어를 타지 않고, 일반 휠체어를 타면서 아주 빠르게 바퀴를 돌리고 돌리면서 병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닳은 장갑과 굳은살을 보면서 그가 감당했던 삶의 무게들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자신의 손과 발이었던 어머니도 중풍으로 왼쪽이 마비되어 오른손으로만 휠체어를 밀 때 뒤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밀어주면서 자신의 휠체어를 모는 것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자신의 몸을 하나 가누기도 힘든데 자신의 어머니를 다시 미국에 오게 하여 생활하고 재활을 할 수 있게끔 하는 모습이,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있는 엄마를 많이 도와주지 못하고 공부가 힘들다고 불평하는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다. 아빠가 허리가 많이 아프셔서 파스 한 장 붙여 달라했을 때도,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해주지 못 한게 후회가 된다. 남들이 두 손으로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그는 매일 매일 노력했고, 밤에 잠을 잘 때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스트레칭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돌보는 환자들을 찾아가서 격려했다. 밑에 글은 3살 암진단을 받고 물리치료와 술을 받다 잘 못되어 전신마비가 된 아이에게 격려하는 말이다.
“너 내가 휠체어에 있는 것 보이지? 나는 체조 선수였어.
예전에 한국 대표로 세계에서 뛰었어.
올림픽을 위해 연습하다가 넘어져서 목이 부러졌어.
그렇다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그러고 싶진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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