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후의 게릴라 u 게바라를 읽고서 u 게바라 줄거리 u 게바라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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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후의 게릴라
체 게바라를 읽고서
체 게바라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그의 이름을 모른다 해도 그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확실히 드물다. 왜냐하면 체 게바라의 얼굴은 티셔츠 등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나 얼굴을 아는 사람은 많아도, 그가 진정 바랐던 것이 무엇인지 그 삶의 여정이 어떠했는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나 역시 처음에 이 책을 읽을 때 체 게바라가 어떤 인물인지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했는지 몰랐기 때문에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가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위대한 게릴라 혁명가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워낙 별이 달린 베레모를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이 유명했고 상품화되었기 때문에 얼굴과 이름정도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개인적으로 이 책은 그의 일대기를 읽기 쉽고 한 눈에 알아보기 쉬운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사진이 많아 책에 흥미가 없어도 대략정도의 삶의 여정을 이해 할 수 있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책을 다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깔끔히 이해가 되지 않아 몇 번이고 다시 들추어 보아야 했다. 아마 그런 탓은 사진위주의 마치 지저분한 다큐멘터리를 사진으로 늘여놓은 듯한 느낌에 번역이 그다지 깔끔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 기회 아니고서야 내가 이런 책을 언제 읽어볼까 싶어 끝까지 다 읽어냈다.
선조 때부터 보헤미안 기질이 다분한 아르헨티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체 게바라는 프랑스 문학에 조예가 깊었던 교양 있는 어머니 셀리아 데 라 세르나의 영향을 크게 받아 유년기 때부터 책을 굉장히 많이 읽었다. 그러나 그는 천식으로 인해 몸이 쇠약했던 탓에 방에 박혀 책만 읽었고 시간이 흘러 밖으로 나가 자연을 발견하고는 곧잘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는 했다. 아홉 살 되던 해에 사회적 불평등에 눈을 떴다. 어린 시절부터 사회의 불평등에 대해 눈을 뜨고 엄청난 양의 책을 읽은 그는 단순히 머리 좋은 소년이 아니라 일찍부터 혁명가의 소질을 타고 났던 것 같다. 체는 열일곱 살 무렵 평생을 같이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후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의대에 들어가 졸업한 후, 그는 보다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하게 되는 데 총 두 번의 긴 여행을 하게 된다. 첫 번째 여행에서 체는 알베르토와 같이 포데로사2를 타고 코르도바에서 로사리오를 지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들렀다가 마르델플라타, 미라마르, 네코체아를 거쳐 안데스 산악지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이때의 나이 20살, 지금 현재의 나와 같은 나이이다. 나와 동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긴 여행을 체 게바라는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첫 번째 여행에서 체는 추키카마에 있는 브레이든 컴퍼니의 구리광산을 찾는다. 그곳에서 그들이 목격한 것은 산산조각 난 인생들의 파편이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체를 정치로 이끈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페루 산파블로에 도착하게 된다. 여기는 나환자들이 격리되어 살고 있다. 에르네스토와 알베르토는 의과대학을 다니기 때문에 인디오들의 나병이 전염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며 치료에 적극적으로 돕게 되었다. 그들의 몸뿐만 아니라 닫혀 진 마음까지 치료하게 된다. 이렇게 첫 번째 여행은 마무리가 된다. 어머니의 약속을 지켜 의학박사 학위기를 수여받은 체는 또 다시 두 번째 여행을 떠나게 된다. 첫 번째 여행보다는 두 번째 여행이 체에게 더 중요했다. 이유는 착취의 정치적 조건을 학습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 행동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두 번째 여행에서 체는 그에게 쿠바인들과 연결시켜준 첫 번째 부인 힐다를 만나게 되었고 힐다는 체가 정치학습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멕시코로 신혼여행을 떠나 쿠바 망명객들과 어울리며 그들을 쿠바를 이야기하고 쿠바를 꿈꾸었다. 후에 체는 딸아이에게 네가 살게 될 더 나은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떠난다는 말을 남긴 후 피델의 병사들과 함께 쿠바로 향한다. 시작부터 피델이 체포되는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체 게바라는 의사로써 선생님으로써 민심을 사로잡았고 대장으로써 모든 병사에게 공평하게 대우하고 진심으로 위함으로 병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하여 여러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그러한 전쟁 과정에서 피델의 군대는 더욱 단련되었고 일사불란 해졌다. 보급선이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바티스타의 주구들이 접근조차 못하게 할 만큼 자신감이 생겼다고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체의 베레모에는 별이 없었으나 1957년 7월 21일 추모 록을 서명할 때 계급을 적어 넣는데 피델이 사령관이라고 적어 놓자고 하여 그 이후로는 사령관이 되었다고 한다. 참 단순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 일 이후로 그의 베레모에는 피델의 요청에 따라 셀리아 산체스가 금박 달린 작은 별을 달게 되었다. 결국은 여러 역경들을 이겨내고 여러 번의 작전과 전투를 치른 결과 결국 바티스타는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혁명이 승리 한 것이다. 그의 나이 30세, 그는 승리자가 된 것이다. 그는 혁명을 성공시킨 후 혁명정부를 위해 다각도로 노력했다. 하지만 체 게바라는 피델을 위해 혁명정부에서 물러나게 된다. 체 게바라는 눈앞에 열린 권력의 열매를 따기보다는 고통 받고 있는 민중의 편을 택하여 콩고와 볼리비아로 건너가 다시 게릴라 복을 입고 혁명운동을 주도한다. 이로써, 혁명 후 권력을 분배하여 또 다른 통치자의 권력을 쥐게 된 혁명 지도자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며 그는 위대한 혁명적 순수성을 지켜 간 것이다. 그렇지만 콩고에서의 혁명을 실패하고 볼리비아에서 혁명을 진행하던 중 잡히고 말았다. 결국 그는 아내와 자식에게 아무 것도 남겨주지 않은 채, 쿠바의 권력도 모두 다 돌려준 채, 자신의 초심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볼리비아에서 싸우다 포로가 되어 39살의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의 사망소식은 언론을 흥분시키기에 충분 했고 이데올로기적 사건으로 기억되었다. 훗날 쿠바인들은 그의 유골을 찾아 발굴 작업을 하였고 기적처럼 체와 그의 동료 여섯 명의 유골이 묻힌 구덩이를 찾아냈다. 그의 유골이 산타마리아에 있는 쿠바 땅에 안치되자 체의 묘는 세계인의 새로운 순례지로 떠오르게 되었다.
체 게바라는 정말 힘들고 격정적인 삶을 살았다. 그 사람의 삶은 한편의 드라마 같았다. 누군가를 위해, 혹은 젊은이의 끓는 피로 생애를 사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와 같은 스무 살 때 체 게바라는 첫 번째 여행을 떠났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에너지의 원동력은 무엇이고 여행하는 동안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정말 많은 인류 속에서 영웅으로 산다는 것은 운명일까? 자신의 진로를 포기하고 사람들을 위해 헌신할 만큼 그를 이끌던 것이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 전공은 택했지만 아직 목표가 구체적이지 않은 나는 체가 가진 확고한 신념과 목표가 정말 부럽다. 그는 결코 자신 개인의 이익이 아닌 인류 전체의 행복을 꿈꾸어 왔고 인류애와 절대공의를 위해 신념을 세우고 기꺼이 실천하였다. 이 사실로 보았을 때 체는 마치 예수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신념과 불굴의 용기와 희생정신에서 그 큰 그릇이 진정 드러나며 나의 마음속에도 깊고 큰 감동을 남겨준다. 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존경을 넘어서 추앙받을만한 진정 위대한 위인 중에 위인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큰, 위대한 영혼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체는 사회주의자였지만 어떻게 보면 너무나 세상을 이상적으로 바라본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든다. 체 자신은 도덕적이었기에 도덕적인 자극이 효력이 있었을지는 몰라도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사회주의인 나라, 즉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된 이유 일 것이다. 체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행동하는 이상주의였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들이 원하는 만큼 도덕적이지 못하는 한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이상적인 사회에는 결코 도달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가 높게 평가 받는 이유는 인간의 질병보다 사회의 모순을 치료하고 싶어 전쟁에 나선 모습이나, 정말로 엄격한 남자였지만 다른 누구보다 그 자신에게 먼저 엄격했기에 누구도 그의 엄격함에 대해 무어라 할 수 없었으며 쿠바 혁명을 성공시키고도 다른 곳에서 투쟁했고, 약자를 돕고 강자에게는 결코 굴복하지 않았던 그런 모습들 때문이 아닐까? 비록 그가 사회를 개혁하는 수단으로 사회주의를 택했지만, 사회주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자신의 이상을 그저 말로만 떠벌이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만은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큰 일을 위해 노력한 남자, 현실의 무거움을 알지만 현실을 바꿔놓기 위해 투쟁한 한 남자, 체 게바라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읽기는 힘들었지만 뿌듯하고 잘한 일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이다.
“적의 급습을 받은 동지 하나가 상황이 위급하다며 지고 가던 상자 두 개를 버리고 사탕수수밭 속으로 도망 가버렸다. 하나는 탄약상자였고 또 하나는 구급상자였다. 그런데 총탄에 중상을 입은 지금의 나는 그 두 개의 상자 가운데 하나밖에 옮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과연, 의사로서의 의무와 혁명가로서의 의무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깊은 갈등에 빠졌다. 너는 진정 누구인가? 의사인가? 아니면, 혁명가인가? 지금 내 발 앞에 있는 두 개의 상자가 그것을 묻고 있다. 나는 결국 구급상자 대신 탄약상자를 등에 짊어졌다.” 이 구절은 의사로서의 직업을 버리고 혁명가로써 새로 태어나는 체 게바라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 같다. 위급한 상황에서 대담히 저런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명을 받은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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