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개론] 해피 투게더와 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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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투게더.
1. 해피투게더가 내 마음 속의 영화인 이유
2. 그들의 이야기
3. 나의 이야기1
4. 나의 이야기2- 에필로그
1. 해피투게더가 내 마음의 영화인 이유
영화 ‘해피투게더’와 왕가위 감독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고 헤매던 순간마다 나에게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기회를, 감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었다. 그것이 어쩌면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그저 모든 것이 좋았다. 장면들과 그 장면들 속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쩌면 그렇게 예쁜 색깔로 잡아낼 수 있는지. 어떻게 화면이라는 2차원의 공간 속에 3차원,4차원의 이야기들이 현실보다 멋지게 펼쳐질 수 있는지. 이것은 영화라는 예술의 매력과도 결부될 수 있는 것이리라. 영화감독들은, 자신이 보는 세상을 자신의 연출로 구성하고 관객들은 그가 구성해서 내놓은 세계에 공감하고, 그 세계로 인해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하고, 자신이 모르는 것들에 대해 경험한다. 해피투게더는 개봉 당시 굉장히 시끄러웠던 것이 기억난다. 심의를 보았던 기관에서는 상영불가처분을 내렸고, 동성 애가 우리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기관의 논리는 굉장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얼마 뒤, 여기저기 난자당해 개봉된 해피투게더를 보았다. 볼 수 있는 나이도 아니었지만, 그때도 포스터의 색깔과 제목이 마음이 들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영화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왕가위 감독 자신의 말처럼, 그의 영화는 우편엽서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모든 컷들이, 반복되는 푸른색과 붉은색, 그리고 그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더한 탱고선율까지. 그때의 난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음악을 듣는 데에 미쳐있어서, 스스로에게도 영화까지는 좀 무리야. 하고 생각했었다. 해피투게더를 보고, 왕가위라는 사람은 굉장히 ‘폼’잡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하면 영화를 예쁘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해 연구한 흔적이 역력했다. 예쁘기만 하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영화’를 보았고, 영화를 내가 즐기고 이해하고 싶은 어떤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해피투게더가 내 인생의 영화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2. 그들의 이야기
왕가위 영화에서 나타나는 그의 자의식은 매우 일관되다는 생각이다. 항상 같은 공통항으로 드러나는 왕가위의 지향점은 지금까지 그의 영화를 하나의 텍스트로 읽을 수 있게 하는 단초가 된다.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사랑을 찾고 있고 또 사랑을 잃어 버렸으며 그래서 외롭고 허무하며 고립된 개인들이다. 그들은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며 버스를 타고 음식을 먹지만 그 모든 행위들은 모두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삭이는 행위들이다. 일상의 반복을 통해 상처의 언저리를 매만지려 하지만 그리움이 참을 수 없는 통증과 자책으로 부어오를 때 그들은 애절하게(그야말로 애절하게) 한 마리의 가련한 새처럼 울음을 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는 항상 외롭게 남아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남자/여자의 가슴아픈 눈물이 스크린 위로 배어나온다. 상실의 그림자로 영화의 처음과 끝은 가득 채워진다.
그 상처의 숲으로 들어가는 것은 우리를 자못 음울하게 한다. 왜냐하면 무성한 고독과 버림받은 슬픔의 뿌리에 마음이 걸리는 순간 우리는 거대한 늪 속에 빠져 들고 말기 때문이다. 어두운 숲 속에 함정처럼 파놓은 우물에 빠지는 날, 어느 누구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그 비극의 상처를 안고 죽을 때까지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왕가위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영화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동일성, 즉 실연이라는 사건이 아니라 인물이 고유하게 빚어내는 마음의 현실로서의 실연이다. 각 인물들의 그 정서적 현실이다. 왕가위는 실연이라는 사랑과 열정이 지나간 자리에서 돋아나는 상처의 풍경을 보여주고자 한다. 사랑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찾아오는 사랑 그 절망과 고통과 아픔 속에서만이 비로소 사랑을 어루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왕가위 영화에서 사랑에 빠지고 실연을 당한 주체들은 한결같이 사랑에 잉잉대다가 결국 어떤 곳을 향하여 떠나간다는 것이다. 즉 영화의 인물들은 부박한 삶의 거리를 방황하지만 고통의 중량을 견디게 하는 희망이라는 먼 곳의 불빛을 끝없이 염원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돈을 모아 여기가 아닌 저기의 공간으로 가기를 꿈꾼다. 그곳은 그들에게 시원의 공간일 수도 있고 현실을 이겨내게 하는 비의의 공간이기도 하다. 아비는 베트남으로 가기를 원하고([아비정전]에서) 아미는 캘리포니아를 늘상 꿈꾸며([중경삼림]에서) 아휘와 보영은 이과수 폭포와 홍콩에, 장은 대륙의 남단 끝 등대에 가기를 원한다([부에노스 아이레스 해피 투게더]에서). 그리고 그들은 그곳을 실제로 간다. 사랑은 가장 오래되고, 가장 먼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해피투게더에서 아휘는 삶의 가슴저린 열망으로 쓸쓸해 하던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떠나 홍콩으로 돌아와서 비로소 중얼거린다. "그래,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우리는 만나게 될 거야.
결국 왕가위 영화에서 보게 되는 것은 부침하는 감정의 격정들이 비로소 부재의 빈 자리를 감싸 안으며 열정의 소란스러움을 껴안는 따뜻함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라는 이름의 미래를 신뢰하면서 삶의 균열을 메꾸어 가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사회적 관습으로 문제가 된 해피투게더의 동성애는 그 이전의 왕가위 영화의 문법과 거의 같은 구조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휘와 보영은 그 전의 왕가위 영화에서 아미이거나 아비이거나 서독이다. 이성애자들의 사랑법과 똑같이 그들은 아픈 감정의 편린에 시달리고 질투하고 눈물 흘리고 그리워한다. 그들은 사랑이라는 병에 걸린 사람이면 누구나 체험할 수밖에 없는 격정에 몸을 뒤틀고 연민에 빠지며 동시에 고독에 몸담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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